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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연 Jul 31. 2024

내 아기의 엄마 이야기 3

출산 9일-13일

9일-2


아기의 탯줄이 떨어졌다. 신생아실에서 '제대 탈락을 축하합니다'라는 예쁜 봉투에 담긴 탯줄을 방으로 가져다주셨다. 까맣고 작고 꼬불꼬불한 탯줄. 아기는 이제 온전히 독립적인 개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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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모자동실 시간에 아기가 쉬를 했다. 기저귀 가는 법을 제대로 배우고 싶어서 신생아실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더니 이런저런 노하우를 알려주셨다. 여자 아기는 뒤로 많이 싸기 때문에 뒤쪽을 더 길게 해 주는 게 좋고, 교체하는 중간에도 쉬를 할 수 있으니 기존 기저귀는 아래에 그냥 둔 채로 갈아주는 게 좋고, 쉬는 물로 닦지 않고 그냥 갈아줘도 되고 등등. 휴, 이제 겨우 쉬 기저귀 가는 것 하나를 배웠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것들을 배워야 할지. 아직은 아기가 바스러질 것 같아 기저귀 하나 가는 것에도 심장이 두근거린다.


+


처음으로 직수만으로 4시간 텀이 만들어졌다. 모유만 먹으면 평균 텀이 2시간이라 여전히 분유를 보충하고 있지만 조금씩 보충 없이 잠자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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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나는 tv가 없다. tv를 열심히  기억은 만화 주제곡을 따라 부르던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서 끝났다. 너무 재밌다고 난리가 났던 예능이나 드라마도 챙겨본 것들이 손에 꼽는다. 영화도 딱히 좋아하질 않는 걸로 보아 그냥 영상을 딱히 즐기지는 않는 성향인 듯하다.


조리원 방안에 있는 tv가 고장났다. 주말에 방문한 남편이 켜보고서야 알았다. 딱히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남편이 오기 전까지는 고장이 난 줄도 몰랐다. 남편은 tv를 고치기 위해 뭔가를 뚝딱거리기 시작했다. '아, 그냥 안 고쳐도 돼. 어차피 안 봐.' 말해도 열심히 뚝딱뚝딱. '건드리지 말고 차라리 조리원 사람을 부르자.' 말해도 '이거 정말 간단한 거야.' 하며 손을 놓지 않았다. 결국 나는 화를 냈다. 괜히 망가트리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하지만 남편은 기어코 tv를 고쳤고 내가 좋아할 만한 프로그램을 틀어놓고 리모컨 조작법까지 알려준 후 돌아갔다. 나 좋으라고 이러는 건 알지만, 싫다는 건 정말 안 했으면 좋겠어, 생각하며 투덜투덜 tv를 켜놓고 아기 젖을 먹이기 시작했다.


아기는 젖을 20분씩 40분 동안 먹는다. 그마저 더 먹고 놓지 않으려는 것을 스탑워치로 시간을 재서 바꿔주기에 그 정도다. 40분은 정말 긴 시간이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허리를 세우고 앉아 고개를 숙인 채 아기가 젖꼭지를 깊게 잘 물고 있는지 확인하며 보내기에는 엄-청나게 긴 시간이다. 자세가 잘 잡힌 날에는 핸드폰이라도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날에는 아기의 코가 가슴에 박혀 콧구멍 부분의 가슴을 눌러줘야 하기에 손이 없다.


그런데 눈앞에 영상이 있다.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앞만 보고 있는데 시간이 잘 가는 매직! 나오고 있는 건 인테리어와 관련된 예능 프로그램이었는데, 집중해서 열심히 보지 않아도 적막이 채워지며 약간의 분주함마저 느껴졌다. 늘 목의 결림을 고요히 견디며 보내던 40분의 수유 시간이 이번에는 후다닥 지나갔다. 아, 이래서 다들 tv를........... 태어나서 처음으로 집에 tv가 있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유가 끝나고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tv 고쳐줬는데 승질내서 미안. 수유할 때 켜놓으니까 좋더라구.' 남편은 '에휴, 나는 고치고 욕만 먹고 에휴' 하면서 답장이 왔지만 자신의 노고가 유용한 결과물을 가져왔다는 사실에 내심 뿌듯한 듯했다.


그런데 내가 tv를 멀리한 이십여 년의 시간 동안 리모컨 조작법이 왜 이리도 복잡해진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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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밤 10시에 아기가 젖을 먹으러 왔다. 한쪽 25분씩 50분을 먹이고 기저귀도 갈아주고 트림도 시키고 안아주고 오만가지를 다 했는데도 울음을 멈추지 않아 결국 신생아실로 미해결 복귀시켰다. 뭐였을까. 50분을 먹였는데도 젖이 모자랐나. 목과 등이 너무 결리고 집으로 돌아가서 보낼 상황들이 염려스럽다. 너무나도 피로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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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모유수유 교육을 받았다. 기본적인 것들은 물론, 책에서 얻을 수 없는 팁들을 알게 되어 아주 유익했다. 기억에 남는 이야기들 몇 가지 기록. 1) 아기가 앞에서 먹고 힝얼거리는 5분까지 기다려주어야 한다. 아기는 눈이 보이기 때문에 냄새로 이게 엄마 젖이 맞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2) 유륜에서 엄마 냄새가 나기 때문에 유륜은 바디워시를 자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3) 모유수유는 턱관절을 일찍 사용하게 해서 뇌발달에 영향을 많이 준다. 4) 100일까지는 부모와의 신뢰관계를 쌓아야 하는 시기니, 손탄다는 말에 신경 쓰지 말고 많이 안아주고 아기가 찾을 엄마아빠가 옆에 있다는 것을 바로바로 알려주는 것이 좋다. 5) 이것저것을 했는데도 울고 보채는 것은 대부분 잠투정이다. 잠투정을 시작하면 아기를 꼭 안고 다독여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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