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원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아기 몸상태를 확인하고 신생아실에 아기를 보낸 후 짐을 풀고 밥을 먹었다. 식사를 마치자 마사지실에서 전화가 왔다. '산모님 머리 감겨줄게 지금 오세요' 샴푸의자에 앉아 머리에 물이 닿는 걸 느끼는데 희열이 느껴졌다. 5일 만이었다. 방으로 돌아가 곧장 샤워도 했다.
머리를 말리고 있는데 아기가 방으로 왔다. '모자동실 시간이에요. 이제부터 2시간 동안 같이 계시면 되고요. 젖 달라고 하면 젖 주시고 기저귀는 아기침대 밑에 있고, 도움 필요하면 전화하세요.' 말을 마친 신생아실 선생님이 아기를 두고 떠났다. 아기가 돌아간 후에는 가슴마사지를 시작했다. 가슴을 부드럽게 풀어 모유가 잘 나오게 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가슴을 완전히 쥐어짜는 일이었다. 죽을 것 같아서 '으악 너무 아파요! 수면마취 해주세요!'라고 비명을 질렀더니 선생님이 배를 잡고 웃었다. 나의 비명과 선생님의 웃음소리가 겹쳐 울렸다. '아기가 병원에서 열심히 먹었는지 유구가 아주 많이 뚫려있어요' 하며 신나게 가슴을 짜던 마사지 선생님은, 최종 보스를 끝내 때려잡은 사람처럼 후련한 발걸음으로 돌아갔다.
꽉 짜진 빨래가 되어 침대에 널브러져 있는데 간식이 도착했다. 치즈 샌드위치와 사과주스였다. 겨우 일어나 한 입을 베어 물었는데 너무 맛있어서 눈물이 났다. 분명히 조리원에 오면 조캉스가 펼쳐질 거라고 했는데 왜 이렇게 바쁘고 (아프고) 힘든지 알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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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아기의 출생신고를 했다. 남편이 받아온 아기의 주민등록초본에는 주민등록번호 13자리가 떡하니 적혀있었다. 감회가 새롭다. 내가 낳은 아기가 정식으로 대한민국 국민이 되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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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한쪽에 15분씩 양쪽 30분 젖을 먹였다. 아직 모유양이 충분하지 않아 신생아실에서 분유를 40ml 보충했다고 했다. 모유의 양을 가늠하지 못해 답답한 마음에 유축을 해보았더니 10ml가 간신히 젖병에 담겼다. 바닥에 얇게 깔린 샛노랑 초유. 가슴마사지를 받을 때 수유가 수월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어 단순하게 '나는 모유수유가 수월할 건가 보다' 생각했다. 안일했다.언제쯤 분유를 보충하지 않고 모유만으로 배가 차게 될지. 언제쯤 헐지 않은 멀쩡한 유두로 젖을 먹이게 될지. 까마득 먼일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특히 두 번째는 정말로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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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첫날이어서가 아니었다. 조리원은 그냥 바쁘다.
모든 것은 예상대로다. 편안한 침대와 맛있는 밥과 간식, 2시간씩 공들여 받는 마사지. 변수는 모유수유다. 모유수유에 별 생각이 없었던 나는 왜인지 미친 듯이 모유수유를 열심히 하고 있고, 모유수유를 하는 엄마에게 조캉스는 없다는 사실을 이미 출발선을 지나버린 후에 깨달았다. 하지만 2주를 푹 쉬어보겠다고 뜻있는 모유수유를 그만두는 것은 그것대로 애매하다. 여기서 조금 덜 쉬고 직수를 해내면, 집에서 보내는 날들이 훨씬 수월할 것이다 생각하며 아쉬운 마음을 고쳐먹는다. '조리원 생활은 조캉스가 아니라 조듀케이션이다. 수유하는 법과 기저귀 가는 법, 딸꾹질 대처법, 목욕시키는 법 등을 배워나가는 곳이다. 그런데 밥도 주고 청소와 빨래도 해준다.' 모유수유를 하는 엄마들은 조리원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고 들어와야 한다. 그래야 실망이 없다.
그래도 잠만은 포기할 수 없어 밤 12시부터 7시까지는 모유수유를 내려놓았다. 새벽까지 젖을 먹이면 완모는 훨씬 수월하게 되겠지만 그전에 내가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다행히 나는 젖양이 아주 적지도 아주 많지도 않아서 젖몸살 없이 취침시간을 잘 확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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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라운지에서 진행하는 모유수유교육을 들었다. 테이블 위에는 다과가 한가득 놓여있었다. 교육이 끝난 후 실장님이 말했다. '산모님들끼리 서로서로 대화하면서 다과 좀 드시고 놀다 들어가세요.' 아, 조리원 동기들 만들라고 판을 깔아주는구나.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비슷한 시기에 출산한 친구도 거의 없고 육아를 도와줄 형제자매도 없어서 조리원 동기가 꼭 있었으면 했다. 실장님이 사라지자마자 절반의 산모가 벌떡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나머지 절반은 서먹하게 앉아있었다. 나는 멀리 있는 산모들을 가까이 모여 앉으라고 한 뒤 번호를 찍으라고 핸드폰을 돌렸다. 엄청난 외향형 인간은 아니지만 낯가림은 없다. 무엇보다 서먹한 건 못 참는다. 목적이 있는 사람들이 모였으니 목적부터 이루어야지. 그렇게 단톡방이 만들어졌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앞에 놓인 멜론을 잔뜩 먹었다. 좋은 사람들인 것 같아 배도 부르고 마음도 불렀다. 밖에서도 만나 어울리는 진짜 친구들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씨앗은 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