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주 1일과 39주 1일. 수술이 가능한 후보지가 교수님 일정에 맞추어 두 날로 정해졌다. 출산예정일이 가까워질수록 임신소양증이 번져 피부가 가려웠고, 손가락 뼈가 구부러지지 않았고, 열거하기엔 너무 많은 신체적 정서적 불편함이 있었다. 자연스레 일찍 낳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으나, 하루라도 더 품어 충분한 발달을 주고 싶다는 생각에 39주를 선택했다. 내가 감내하는 일주일의 불편이 아이에게는 평생의 차이를 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나의 선택은 그랬다. 하지만 뱃속의 아기와 합의된 사항은 아니었다. 아이는 독립적 개체로써 지구에 도착할 날을 스스로 정하겠다 했다. 지난날의 고민이 무색했다.
38주 5일. 왈칵 피가 쏟아졌다. 구정 당일, 늦은 저녁이었다. 분만실이 다급해졌다. 맞는 항생제가 없어 네 번째 항생제 테스트를 하던 중, 간호사가 말했다. 교수님 곧 도착하실 거예요. 갑자기 벌어진 일에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나는 감당할 수 없는 기분이 들어 흐엉 울어버렸다. 남편과 인사를 했고, 수술대에 누워 천장 조명이 사라졌다 나타나는 것을 넋을 놓고 보았다. 무서우시죠, 하며 손을 잡아주는 간호사의 손을 동아줄 붙잡듯 부여잡고, 하라는 것들을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을 하지 않고, 수술실에 울려 퍼지는 나의 심박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오후 11시 21분.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응냥응냥 하는 것이 분명한 아기 울음소리였다. 나, 애를 낳은 건가? 정말 내가 아기를 낳은 건가? 갓 태어난 아기는 무조건 못생겼다고 했다. 잘 익은 고구마 같다고 했다. 마음의 준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수분 후, 눈앞에 오만 인상을 쓰는 동그란 얼굴이 나타났다. 나의 아기. 피와 양수로 축축한 아기를 보며 나는 조그맣게 말했다.
아..... 예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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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실감이 나질 않는다. 몸속이 고요하다. 내 뱃속에서 온종일 꼬물락 거리며 딸꾹질을 해대던 존재가 사라졌다. 그 존재는 저어기 신생아실에서 열심히 세상에 적응 중이란다. 나에게 신생아실은 머나먼 미지의 세계다. 통나무처럼 누워 발가락을 열심히 꼼지락거리는 것이 현재의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나는 남편이 찍어온 영상 속의 아기를 본다. 남편과 아기의 첫 만남. 남편은 탯줄을 자르지 못했고 아기는 투명한 케이스 안에 들어있었다. 하지만 아기는 우렁차게 울었고 남편의 목소리를 듣고 한쪽 눈을 반쯤 떴다. 전염병이 돌아 모든 접촉이 까다로워진 세상의 출산은 영화와는 꽤나 다른 모습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격스러웠다. 딸과 아버지가 서로를 눈에 담은 첫 순간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기에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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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모유수유를 하시겠느냐고 간호사가 물었다. 아기를 낳기 직전이었나, 직후였나. 모유수유는 아기에게 달린 일이라는 이야기를 누누이 들었기에, 어차피 결정은 아기가 하는 것. 적어도 초유는 먹이고 그 이후는 아기에게 맡기자 생각했다. 고민 없이 네, 대답했다.
출산 12시간 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나는 핸드폰을 수시로 들여다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몸도 정신도 있어야 할 곳에 제대로 붙어있질 않았다. 그 번호가 병원 신생아실 번호라는 사실은 출산 36시간 후, 같은 번호로 다시 온 전화를 받은 후에야 알았다. 몸에는 수액과 무통, 페인부스터까지 세 개의 링거가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이 상태로 모유수유를 할 수 있을까. 걷기도 힘든 상태인데 앉아서 아기를 안을 수 있을까 걱정하며 찾아간 수유실.
예상은 빗나가질 않았다. 으악 소리가 절로 났다. 앉는 과정의 힘겨움은 물론 수유쿠션에 링거줄이 깔려 정신이 날아다니고 엄청나게 빠는 힘이 좋은 아기 덕분에 유두는 너덜너덜 헐었다. 아기가 젖을 깊게 물면 고통이 덜 하다는 이야기를 신생아실 선생님에게 언뜻 들었지만 그게 어떤 의미인지도 잘 모르는 나는 그냥 아기가 물면 무는 대로 어우 신기해라, 이 작은 걸 내가 낳았다니, 내가 낳은 인간이 내 젖을 먹고 있다니, 하고 넋을 놓고 있다가 결국은 고통에 시달리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모성애가 이런 것인지. 아니면 알 수 없는 집념인지. 쓰라림을 견디지 못하고 유두에 보호크림을 잔뜩 올려둔 채 커튼을 치고 병실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지. 아기도 저렇게 노력하는데. 젖을 먹는 아기 이마에 송골송골 맺히던 땀에 부응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문득 엄마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출산 전이었다.
'엄마, 나는 아기 안 좋아하잖아. 내 애도 안 예쁘면 어떻게 해?'
엄마가 코웃음 치며 말했다.
'응, 낳아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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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하루에 서너 번씩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밥을 먹고 혈압을 재고 진통제와 자궁수축제를 먹고 걷고 걷고 걷다가 자는 날들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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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남편이 면허를 땄다. 출산 2주 전에.
차를 샀다. 출산 1주 전에.
차가 도착한 날, 출장 점검을 마친 후 시동을 걸어본 것이 전부였다. 주차장인데 헤드라이트가 켜져 있어서 저것 좀 꺼보라고 했더니 와이퍼를 켜고 워셔액을 뿌렸다. 아기는 예정일보다 3일 일찍 나왔다. 남편의 첫 운전은 병원과 집의 왕복이었다. 아내가 응급으로 아이를 낳은 후 재빠르게 챙겨둔 짐을 가져오는 일이 첫 미션이었다. 아이는 자정이 거의 다 되어 나왔고 남편은 새벽 1시에 인생 처음으로 본인 차 액셀을 밟았다. 다행히 3km 거리였다.
출산 5일 후 퇴원일. 태어난 지 5일 된 아기를 데리고 16km 떨어진 조리원에 가야 했다. 나는 남편을 믿어볼까 했지만 남편이 본인 스스로를 믿지 못했다. 우리는 현명한 선택을 하기로 했다. 대리 기사님을 불렀다. 아기는 조리원으로 가는 내내 곤히 잤다. 마음이 아주 편안했다. 기사님의 훌륭한 운전 실력과 잘 자는 아기. 우리는 무탈하게 조리원에 도착했다. 무탈하지 않은 건 내 몸 상태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