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심야영화를 본 소감
어젯밤이라고 해야 할까? 오늘 새벽이라고 해야 할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심야상영을 보러 갔다. (늘 그랬듯이 심심한 내 친구 한관봉 씨가 함께 했다) 작년에는 <곡비> 같은 영화도 있었고, 그전 해에도 나쁘지 않은 기억이 있었기에, 올해도 두근거리며 커피를 사전에 왕창 마셨다.
<이블 데드 라이즈>(리 크로닌, 2023)가 첫 번째 영화였는데, 이 영화는 그저 그랬다.
오프닝은 신선했지만, 스토리와 설정이 너무 구태의연했다. 결국 얼마나 더 피를 쏟느냐, 그리고 잔인하게 죽이느냐에 초점을 맞춘 것처럼 보였다. 놀랍게도 샘 레이미가 executive producer로 참여했는데, 자신의 시리즈보다 별로인 영화의 탄생 과정을 어떻게 지켜봤을까 싶다.
(하지만 두 번째, 세 번째 영화를 보면서 그래도 <이블 데드 라이즈>가 그나마 나은 영화였구나, 깨닫게 된다.)
두 번째 영화는 <지옥의 난교>(노르베르트 파펜비흘러, 2023)였다. 보통 이렇게 직설적인 제목을 뽑는 경우, 일본영화라면 좀 낫고, 중남미나 동유럽 영화면 굉장히 별로인 경우가 많다. 완성도가 별로여서 제목만 그럴싸하게 짓는 경우도 있다. (순전히 내 경험이다. 10년 전 즈음, 부천에서 봤던 <진격의 냉장고>처럼...) 이 영화는 가장 안 좋은 쪽이었다.
무성영화에 가까운 슬랩스틱 연기를 기본으로 하는 <지옥의 난교>는 갖가지 잔인하고 노골적인 성애, 폭력을 보여주는데도 불구하고 굉장히 지루했다! (그래서 한숨 자려고 노력했지만, 잠도 오지 않았다) 뭐랄까, 감독님이 열심히 만든 건 알겠는데, 센스 없는 열심과 근본 없는 과시가 한데 어우러진 느낌이었다. 만약 불쾌함을 주고 싶었다면 성공! (난 웬만하면 공포영화를 즐기는 편인데, 이 영화는 너무 힘들었다. 차라리 10분짜리 단편이었다면 나았을 듯.)
이렇게 끔찍한 영화 다음에 나오는 영화는 웬만하면 재밌기 마련이다. 앞차가 워낙 사고를 많이 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 번째 영화인 <디비니티: 영생의 성수>(에디 알카자르, 2023) 또한 매우 별로였다.
소재와 설정은 전혀 흥미진진하지 않았고, 스토리와 캐릭터는 어이가 없었다. 게다가 복고풍의 미술 덕분에 영화 내내 70년대 영화를 보는 줄 알았다. 왜 옛날 느낌으로 만들었을까? 알 수가 없다. 중간에 나오는 애니메이션-처음에는 일부러 18 프레임으로 촬영한 줄 알았는데, 크레디트를 보니까 애니메이션 스태프가 있었다-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왜 그 장면을 굳이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만들었는지 짐작하기 어렵다. 무려 이 영화의 프로듀서는 스티븐 소더버그였다!!! 그런데 영화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다만 이 영화는 어떤 면에서는 <지옥의 난교>와 비슷한 분위기가 있었다. (그래서 같은 섹션으로 묶었는지도 모르지만, 관객의 입장에서는 영 별로였습니다.)
내가 처음 부천에 간 건, 1997년이다. 바로 1회. <죽음과 나침반>(알렉스 콕스, 1992)을 봤고, 소주와 곰장어를 먹다가 취하고는 뒤늦게 GV에 들어와 횡설수설하던 알렉스 콕스 감독님을 지켜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크라잉 넛 같은 밴드가 참여했던 씨네 락 나이트 같은 섹션도 즐기곤 했다. 그리고 이후에는 주로 심야영화를 보러 가게 되었다. HBO의 <마스터즈 오브 호러> 같은 작품을 바로 부천 심야에서 봤다. 이렇게 수많은 괴상한 영화를 관람했다. 개중에는 어이없고 재미없는 영화도 (당연히) 있었다. 종종 영화 속에서 몇백 명이 죽는지 세어보기도 했다. (이런 거, 영화니까 재밌다.)
어제 심야상영을 보면서, 특히 두 번째와 세 번째 영화를 보면서, 처음으로 프로그래머에게 (속으로) 욕을 했다. 이게 뭔가요? 영화들, 저는 이상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