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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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산 시집의 페이지를 넘기다 문득 익숙한 냄새가 났다 새 책 냄새는 아닌
띄엄띄엄 새겨진 글자는 숨을 내뱉었고 나는 그 숨결을 받아 소리 내며 호흡했다 그러자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종이에 새겨진 검정 잉크 그리고 잉크에 달라붙은 당신의 냄새
다 읽기도 전에 같은 시집을 사 당신에게 선물했다 다행히 당신도 기뻐했다 그러다 제목을 보곤 잠시 생각하더니 멋쩍은 표정을 짓고는 “이 책 집에 있는 것 같아” 하고 말했다
웃음이 나왔다 허탈한 마음이 아니었다 다행이었다 잃어버린 적도 없었겠지만 나의 생각대로 책의 주인은 당신이었다 당신도 신기하다고 말하며 웃었다 다행이었다 당신이었다
처음 만나 학교 앞 맥줏집에서 하루키는 좋지만 소설마다 똑같은 주인공이 이성에게 인기가 많은 건 의문이라 말하던, 작은 동네 책방에 가면서 새롭게 알게 된 인디 가수의 음악을 들려주던, 아담한 일식당 긴 테이블 끝 나란히 앉아 나무 수저로 덮밥을 떠먹으며 맛있다 이야기 나누던
모두 당신이었다 다행이었다 당신이었다
책 선물은 다음으로 기약했다 대신 우리는 돌려 받은 책값에 삼 년 전 겨울부터 모은 시간을 보태어 우연을 샀고 서로 나눠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