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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도르 Mar 16. 2022

왜겠어요

SF 소설을 읽었다. 문목하 작가의 <돌이킬 수 있는>.

지평선이 보이지 않을 만큼 거대한 싱크홀로 사라져 버린 사람들.

재난을 경험한 이들이 간직한 고통과 이를 대하는 각자의 방식.

복잡하게 얽힌 관계 속, 그 누구도 사랑을 말하고 있지 않지만

결국 사랑으로부터 움직이고 사랑을 향해 움직이는 이들의 이야기.



이야기 속의 인물들은 상대를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기나긴 시간 자신을 희생한다.

그리고 그 모든 이유는 여준이 뱉은 "왜겠어요." 이 한마디로 설명된다.

사랑, 너무 당연한 이유이면서도 당연하지 않은 이유.

많은 것을 행하게 만들면서도 그만큼 많은 것을 포기하게 만드는 그 이유.

그것은 우릴 어떻게든, 어떤 방향으로든 움직이게 만든다.

그러니 이는 단순히 어떤 감정이 아니라 의지를 가진 상태이다.


우리는 자신을 희생할 정도의 사랑이 가진 압도적인 힘에 놀라기도 하지만

거대한 맹목성에 숨이 막힐 때도 있다.

행위자에게 있어 당연한 것을 관찰자는 오히려 의미 부여하며 숭고하게 바라보기 때문일까.

그래서 반사적으로 이런 생각을 할 때도 있다.

'대단한 건 알겠어, 한데 그 마음이 얼마나 중요하기에. 난 못해.'

아마도 이는 그러한 것이 아직 자신의 마음에 없었으며 현재도 없기 때문에 확신하거나

혹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추측하기에 가능한 부정이다.


의지의 크기를 가늠하며 그만한 사랑을 내가 갖고 있는지 혹은 가질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쉽게 포기하게 만든다. 하지만 오히려 반대로 생각하면 쉬워진다.

누군가를 지켜주고자 하는 의지의 반대편에는

그를 잃을까 하는 두려움이 동시에 공존하고 있다.

의지가 없는 귀신일까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언제나 발끝을 확인하면

두려움의 그림자가 불투명한 의지에 의해 희미하게라도 존재하고 있다.


상실이 두려워지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그 마음은 사랑일 것이고

사랑이 있다면 미약하게나마 의지가 있는 것이다.

지금 당장 거대한 의지가 없는 것 같다 생각할지라도

그림자가 짙어질 때, 우리는 더욱 뚜렷해진 그것의 존재 또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 사랑이라는 이유로 움직일 의지가 없다 생각될 지라도

우리는 언제든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 존재이다.


숨을 쉬는 것은 무의식 중에 이루어지지만 그 행위에는 사실 생존에 대한 의지가 담겨있다.

하지만 평소 살고자 숨을 쉰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이처럼 우리는 자연스럽게 많은 대상을 사랑하고 있기에

사랑하고자 하는 의지, 그 대상을 위하는 의지의 존재를 잊고 있는 것이 아닐까.


왜겠어요.

모든 것을 설명하면서도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는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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