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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쓰는 이작가 Nov 18. 2018

작가사주도 아니면서

그놈에운명!운명!!

원래 사주를 믿거나 하는 건 아니다.


종종 작가들을 대상으로 소재계발이나 취재 차원의 워크숍이 열린다. 명사 초청 강연 쯤으로,  프로파일러가 하는 범죄학 강의가 제일 인기고, 나머지는 그때그때 사회적 이슈에 따라 달라진다. 사주는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완전히 무관심한 사람은 없다. 알아두면 좋지.  


유명한 사람이라고 했다. 한 번에 십만원 쯤 받는 사람. "나는 그냥 사주나 보는 사람인데....."라며, 짐짓 무성의한 투로 허허실실하는 식으로 자신감을 드러내는 타입이랄까. 흥미진진한 강의계획서도 주최측에서 작성한 것 같았다. 그래도 뭐가 있겠지......정말 아무 것도 없었다. 도무지 계획 없는 두 시간의 강의를 마치고 사람들을 지쳐있었다. 쉬는 시간에 일부러 의자 미는 소리를 내고 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허허실실 태연한 척 하던 강사 역시, 아무래도 안 되겠다싶었는지, 남은 4주 동안 아예 여기 온 사람들의 사주를 봐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겠다고 했다. 태어난 음력연월과 시간을 보내면 랜덤으로 사주풀이를 해주겠다 이거였다.



강의는 대성황이었다. 매주 누구는 울고 누구는 웃었다. 화를 내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면 강사는 허허실실 웃으며 당신 사주가 그런 걸 어쩌냐며 그래도 기분이 풀릴 만한 기가막힌 해석을 곁들여 "감사합니다." 소리를 들었다. 과연 용한 분이이로구만....점점 더 기대가 됐다. 작가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다 보니, 과연- 거의 모두의 사주에 '수풀림'이라던가 하는 공통의 한자들이 있었다. 거짓말도 잘 하고, 말을 퍼뜨리는 사주라면서, 사기꾼 기질이라고 해도 다들 좋아했다. 어쨌거나 '본투더롸이러'니까. 주어진 운명을 따르는 삶의 끝에는 창대한 성공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누구지? 이건 작가 사주가 아닌데-"


그것은 나의 운명이었다. 방금 전 까지는 작가였다가 알고보니 영화사 옆 회계 사무실에 들른 면접자였단 걸 알게 된 것 같은, 황망한 기분이었다. 운명의 삶을 살고 있는 작가들이 측은지심하면서도 안도감에 찬 표정으로 힐끔힐끔 나를 봤다. 작가사주지만 성공은 못 할 거란 소리에 화를 참지 못하던 작가 조차 나를 딱하게 여겼다. 쯔즛- 작가도 아니었다니.....



사주풀이는 길지 않았다. 원래는 작가였으면 물어보고 싶었던 질문들을 여럿 준비했기 때문에 다른 질문 할 게 없었다. 작가 아니면 뭐냐고 대들지도 못 했다. 아니면 뭐다, 이런 상상 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예전부터 흔하게 다들 나를 "이작가, 이작가" 불러왔으니까. 그래도 용한 사람이라고 하니까 뭐라도 물어보긴 해야 할 것 같았다.


"저 쌍꺼풀 해도 되나요?"


저딴 질문이나 하고, 역시- 작가가 아니었구만.....상황은 자연스럽게 다음 운명의 작가로 넘어갔다. 성형수술은 하라 그랬다. 하면 잘될거라고 그랬다.



사주를 믿지 않는다고 해놓고 그 날 같이 듣던 PD와 떡볶이를 먹으면 강사 욕을 한참 했다. 그리고 집에 와서 한참을 생각했다. 작가사주가 아니라서  고작 이만큼 밖에 못 됐나.....작가사주가 아니어서  돈을 이만큼 밖에 못 벌었나. 작가사주가 아니라서 상도 못 탔나. 작가 사주가 아니라서 흥행을 못 했나. 작가 사주가 아니라서, 작가로 태어나지 못해서, 작가가 될 운명도 아닌데 작가가 되가지구 참.....에이 몰라몰라!! 사주 같은 거 안 믿는데 뭐! 아씨...근데 존나 유명한 사람이라 그랬는데.....그 날 이후로 계속 생각했다. 그럼 나는 가짠가.


작가가 아닌 것으로  밝혀진 마당에 나머지 수업은 안 가려고 했는데, 안 나가면 지는 기분이라 꾸역꾸역 나갔다. 뒷자리에 팔짱을 끼고 앉아 운명의 작가들을 보고 있는데, 비죽비죽 웃음이 났다. 아무리 봐도 거기 강의실에 모인 작가들 중에서 나는, 내가 제일 나았다. 내가 제일 뭐가 많았다. 아직 해 볼만 하다 싶었다. 그러고 나니까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오지게 정신승리 했다. 뭐 어때-



여전히 운명을 찾지 못한 채, 작가 생활을 하고 있다. 생활이라는 말을 붙이니 가벼운 기분이 들어서 좋다. 왕좌의 검을 지니고 태어난 운명의 장수들 사이에서 아디다스 추리닝 입은 마샬아츠 선수 쯤 된 셈 치자. 그 생각을 하면 더 좋다. 마샬아츠 존나 멋있으니까. 쌍꺼풀은 하지 않았다. 했으면 잘 됐을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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