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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쓰는 이작가 Dec 26. 2018

명작의 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할,


작업했던 어떤 영화에는 7가지 버전의 결말을 썼다. 버전이라기엔 거창하고, 아무튼 해피엔딩이란 결론 하나만 두고서, 다시 만난 두 사람에서 끝날 것이냐, 마주 보고 끝날 것이냐, 이 말을 할 것이냐, 저 말을 할 것이냐....등등. 그러다가 결국엔 뜨겁게 키스하는 것으로 마무리 됐다. (투자사가 원하는 바로 그것)

사실 로맨틱 코미디의 결론이야, 해피엔딩이라는 명쾌한 끝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라서, 어떻게 하면 더 벅찰 것인가를 두고 이런저런 변주를 하는 것이지만, 어떤 드라마에서는 주인공의 심정 마냥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될 때가 있다. 특히 '비극' 앞에서, 작가는 망설이게 된다.



'기분 좋게 잊혀질 것인가, 가슴 아프게 영원할 것인가.'



가끔 틀림없이 주인공이 죽거나, 마음은 안 좋지만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을 향해 달려가는 영화들을 본다. '아...죽지마....제발 눈을 뜨라구....'마음의 소리를 외치지만 저러다 진짜로 눈 뜨면 섭섭할 것 같은 결말에서 화면은 어두워지고.....주춤주춤 가방을 집어들고 엉덩이를 일으키려는데, 난데없이-


'그리고 몇 년 후'


주인공은 살고, 작가는 욕 먹는다. 비극을 원하는 작가가 대중영화의 미덕을 주장하는 투자사의 뜻을 따랐을 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저 영화를 보는 작가의 기분을 상상하게 된다. 아쉬울까? 후회될까? 잊었다면 다행이겠지만.




'타인의 삶'이란 영화에서, 당시 동독의 베를린에서 예술가로 살던 주인공은 자신을 내내 감시하던 남자의 존재를 통일 후 알게 된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결정적 비밀을 감춘 덕에 자신이 살아있음을 알고, 그를 찾는다. 주인공은 우편배달부로 살고 있는 남자를 본다. 느리게 달리는 차 안에서 남자를 쫓는데.....


내려서 악수라도 할 줄 알았어...


나는 이 영화를 내내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이 영화를 떠올릴 때마다 마치 내 앞에 빈 한글창(참고로 이 영화는 독일 영화다.)이 열린 것 처럼 심각한 갈등에 저릿저릿 해 진다. 아....내릴 것인가, 말 것인가....내릴 것인가....그냥....아씨...내려 말어!!!! 다시 말하지만, 기분 좋게 잊혀질 것인가, 가슴 아프게 영원할 것인가.



내 영화의 해피엔딩은 극장 밖에서 햄버거를 먹는 동안 잊혀질테지만, 그래도 모든 작가는 나름의 비극을 꿈꾼다고 생각한다. 나에게도 비극으로 남겨 명작이 될 어떤 영화가 있다. 아직 시작 조차하지 않는 이 영화의 결말을 요새도 자주 고민한다. (정작 영화 줄거리는 잘 생각이 안 난다. 안 풀려, 안 풀려....) 떠나보낼 것인가, 찾으러 달려갈 것인가, 돌아올 것인가, 돌아올 것을 암시할 것인가......그러니까 나는 관객이 될 것인가, 작가가 될 것인가.


나는 두 가지를 모두 원한다. 행복한 관객이면서 동시에 보통의 작가가 되는 것. 나는 그게 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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