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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토리 Mar 22. 2024

이웃집 시오리상

시오리상이 이사를 갔습니다.


시오리상은 윗집(정확히는 위의 옆집)에 사는 나와 동갑내기 여성입니다.

작년 여름, 친구가 놀러 왔을 때 우연히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쳤었는데 친구와 내가 나누는 한국어에 먼저 다가와 반갑게 인사해 준, 삿포로에 와서 처음 알게 된 일본인이지요.

우연한 첫 만남에 너무나도 적극적으로 대시해 줘서 나는 그때 그녀와 금방 친구가 될 줄 알았었습니다.


시오리상은 자기 집 호수를 알려주며 지금은 급한 일이 있어 나가야 되니 우체통에 연락처를 남겨달라고 했었지요.

나는 문구점에서 산 예쁜 편지지에 간단한 내 소개와 함께 좋은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적어 우체통에 넣었었습니다.

그러나 답장은 없었고 나는 왠지 바람이라도 맞은 듯한 씁쓸한 마음이 들었었네요. 이런 게 일본인의 本音(혼네, 본심), 建前(타테마에,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인가 싶었습니다.

그 후 두 달인가 지났는데 우리 집 우체통에 시오리상의 편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늦은 답장을 미안해하며 아파서 그동안 다른 곳에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그 후 종종 동네 마트에서 마주치기도 했고, 시오리상이 나에게 라인 아이디를 물어봐 서로 친구추가까지 했지만 그 이상의 진전은 없었습니다.


실제로 마주쳤을 때는 너무너무 살가운데 더 이상은 따로 주고받는 감정이 없는 관계랄까…

한국인의 정서라면, 어쩌면 중년 한국아줌마의 오지랖일 수도 있지만 집에 초대도 하고 찾아가기도 하고 서로 음식도 나눠주고 낯선 타국생활에 힘든 점은 없는지 살필 만도 한데…

어쩌면 내가 먼저 더 적극적으로 다가갔더라면 좀 더 가까워졌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한국아줌마의 마음가짐으로 다가가는 게 혹시나 일본인에게 실례일 지도 모른다고 지레 짐작하고 다가와주기만 기다렸던 나의 비겁한 변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오십 년 먹은 내 눈치로 봐서는 더 이상 다가오는 것은 곤란해~ 하는 느낌이 들었지요.

아무튼 창문으로 내다보면 바로 올려다보이는 집에 사는 동갑내기 한국아줌마와 일본아줌마는 서로 커튼으로 안이 들여다 보이지 않게 막아놓은 집 창문처럼 그렇게 지냈습니다.

마주 보고 있지만 들여다볼 수는 없는 관계로…


그리고 어제(3월 17일), 시오리상이 이사 갔네요.

물론 내게 이사감을 알리거나 한 건 아닙니다.

외출했다 돌아오니 시오리상의 집이었던 501호 우체통이 테이프로 막혀있더군요. 이것은 이 집이 빈 집이라는 뜻입니다.

내가 낮에 집을 비운 사이에 이사를 간 모양입니다.

왠지… 조금… 아쉽고 섭섭합니다.

그래도 오며 가며 반갑게 인사하던 유일한 동네 일본인이었는데… 라인으로라도 작별인사 해주지…

혹시나 우리 집 우체통에 편지라도 있을까 열어봤지만 역시나 그럴리는 없더라구요.

멀리 이사 가지 않아서 또 마트에서나마 마주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어디서든 건강하시구려, 시오리상~~

나는 아마 당신을 오래 기억할 것 같아요. 나의 유일했던 일본인 이웃친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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