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 살의 유학일기 - 여름편 #8
남편이 여름휴가를 왔다가 떠나던 날 저녁, 어학교에 같이 입학한 박군에게서 연락이 왔다.
셰어하우스에서 같이 살고 있는 친구들과 술 한잔 할 건데 같이 가겠느냐고.
공항에서 남편을 보내고 허전한 마음에 질질 짜고 있었는데 마침 반가운 초대라 후다닥 나갔다.
박군은 부산 출신 25살 청년이다. 나와는 반이 달라서 학원에서 조차 자주 마주치지 못하는데 그래도 동기라고 나를 챙겨주는 고마운 친구다.
홍콩에서 온 뻬루, 프랑스에서 온 레미, 독일에서 온 시나, 한국에서 온 박군과 S양, A군, 그리고 나.
다들 20대 중후반의 친구들이었는데 나와 박군은 유학생 비자로, 다른 친구들은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일본에 들어왔다.
모두 일본에 온 지 한두 달 정도 된 초짜들이어서 일본어 수준도 다들 비슷했다.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과 일본어로 더듬더듬 이야기하는 약간 어색하지만 재미난 모임이었다.
모임이 파할 무렵 S양이 화장실에 간다며 자리를 비웠는데 한참이 지나도 돌아오지를 않았다.
걱정되어 찾으러 가려는데 S양이 돌아왔다.
“화장실에 가는데 아르바이트 모집 공고가 붙어있더라고요. 그래서 지원하고 싶다고 했더니 사장이 나와서 면접 보고 왔어요. 내일부터 나와보래요. “
“에? 아직 일본어 잘 못하는데 괜찮겠어요?”
“배우면서 하면 되죠. 못하면 짤리겠죠. 머.”
세상에… S양은 일본 온 지 딱 한 달 되었단다. 일단 아무 어학원에 수강신청을 하고 한 달을 다녔는데 배우는 것도 없고 재미도 없어서 한 달 만에 때려치웠단다.
프랑스 친구 레미도 편의점에서 야간 알바를 시작한 지 일주일 되었단다.
홍콩 친구 뻬루는 내일 후라노 근교 시골로 알바를 하러 가느라 한 달간 삿포로를 떠난다고 한다.
나와 같은 유학생인 박군은 알바대신 자전거를 타고 홋카이도 일주여행을 준비한다고 한다.
일본어 실력은 다들 고만고만하다.
오히려 읽고 쓰는 건 그나마 내가 제일 나아서 메뉴판을 보고 읽어주는 중이었다.
‘나만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네?’
충격이었다.
아무리 유학생과 워홀러의 마음가짐의 차이가 있다 해도, 그 친구들이 나보다 훨씬 젊은 자식 또래의 나이라 해도 그 친구들의 도전과 용기는 놀라웠다.
나도 나름 저지르고 보는 성격이긴 한데 살아오면서 꽤 물러졌는가 보다.
일본 온 지 한 달이 넘도록 나는 뭘 하고 있었지?
늘 심심하고 외롭다고 징징대면서도 왜 계속 혼자 있었던 거지?
새로 살 살림을 구비하느라, 어학원에 적응하느라, 막둥이가 놀러 와서, 남편이 놀러 와서…
한 달 동안 이러저러한 핑계로 귀한 시간을 흘려버리고 있었다.
나도 알바를 해보자!!!
“하지 마, 하지 마. 그냥 놀아. 놀 궁리만 하기도 바쁜데 무슨 알바야. 20년 넘게 해서 징글징글할 텐데 멀 돈까지 벌려고 해. 그냥 놀아.”
어학교에서 중개해 주는 알바는 식당 서빙이나 주방 보조, 호텔 청소 밖에 없더라고 말하니 남편은 결사 반대했다.
사실 나도 식당보조나 호텔 청소는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언어가 딸리는 내가 할 수 있는 알바가 뭐가 있으려나…
인터넷을 뒤져서 다양한 알바 경험들을 알아본 뒤 편의점에서 알바를 시작해 보기로 했다.
일단 ‘타운워크’라는 구인구직앱을 깔았다.
지역, 시간 등등 나에게 맞는 옵션들을 설정하고 일자리를 찾았다.
꽤 많은 편의점에서 알바를 모집하고 있었다.
어? 여기 바로 우리 집 앞인데?
학교 가는 길에 있는 세븐일레븐 편의점에서 알바를 모집 중이었다!
내가 학교를 오고 갈 때마다 커피나 물, 도시락을 사던 곳인데!
매일매일 들러서 알바들이 다 내 얼굴 아는데…
손님이 알바가 되면 서로 민망하지 않을까…?
아, 몰라!!
일단 저지르자.
気軽に応募してください
(가벼운 마음으로 응모해 주세요)
고민은 붙고 하자고. 아니면 말지 뭐!
‘못하면 짤리겠죠!’
S양의 멋진 말을 기억하자.
여기에는 의지할 사람도 없지만 아는 사람도 없다.
해외리조트에 놀러 가서 감히 국내에서는 상상도 못 하는 과감한 비키니를 입고 해변을 활보하는 마음으로 해보는 거다.
편의점 알바 떨어졌다고 나라망신 시키는 것도 아니고 겁날게 뭐 있냐고!!
참… 취직도 아니고 아르바이트 하나 해보겠다는데 이게 무슨 호들갑인지…
20년간 전업주부로만 살아서인지 새로운 일을 하는 것에 겁이 나긴 한다.
새로운 일 자체가 겁난다기보다 도전했다 실패해서 스스로에게 실망할 일이 무서운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까지 잘 왔잖아?
내가 스스로에게서 자유로워지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응모하시겠습니까?
はい 하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