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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람 Jul 11. 2022

서울, 서울, 서울! 그 특별함

  여덟 살 때 전에 살던 곳보다 더 큰 도시로 이사를 했다. 좁은 골목에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던 주택가에서 살다가 새로 지은 아파트에서 살게 된 것이다. 어린 나는 내가 엄청 큰 도시로 이사 온 줄 알았다. 새 집 수전에서 물을 트는데 세상에! 물이 '암바사'처럼 흰색으로 나오는 게 아닌가! 버스도 오십몇 번까지 있고, '시내'도 있었다. 그 '시내'에는 중앙시장이라는 상설시장에 무려 영화관까지 있었다. 무엇보다 아파트 단지 안에는 구름사다리, 그네, 뺑뺑이가 있는 번듯한 놀이터가 두 개나 있었다. 신축 아파트들이 우후죽순 들어서던 동네라 학교가 채 지어지지 않아 교실마다 아이들이 바글거렸다. 내가 아는 모든 친구들이 다 아파트에 살았고, 새 아파트를 따라 학군이 움직이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 교육열도 상당한 동네였다.


  나는 도시에 산다는 기분을 만끽하며 자랐다. 시내버스를 타고 영화를 보러 갔고, '모닝글로리'에서 편지지, 책받침, 스티커를 샀다. 매일 오후 학원이 끝나면 어느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지 고민하다가 한 군데를 정하고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다녔다. 기분이 좋은 날에는 엉덩이를 흔들며 룰라 춤을 추기도 했고, 전축이 있는 친구 집에 삼삼오오 모여 신승훈을 들으며 감수성을 키워나갔다. 나는 도시의 국민학생으로서 아파트에 살며 도시인으로 거듭났다.




 열한 살 때 외갓집 식구들이랑 다 함께 제주도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난생처음 비행기를 타는 것도 설렜지만 여행 내내 세 살 터울의 친척 언니와 붙어 다닐 수 있다는 게 더 좋았다. 김포에 모여서 다 함께 제주도행 비행기를 타기로 했는데 나는 무조건 언니 옆에 앉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언니는 나보다 몸집은 작았지만 똑순이여서 언니가 말하는 것이라면 무조건 믿고 따랐다. 언니의 서울 말투가 세련돼보였다. 며칠 언니랑 붙어 지내면서 언니의 말투를 따라 하기도 했다. 그랬니? 있니?


  하지만 며칠 동안 언니는 나에게 질문을 할 때 꼭 이 말을 썼다.

"시골에도 있니?"

"시골에서는 어떻게 하니?"


  아니 왜 자꾸 내가 사는 곳을 시골이라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를 않았다. 어쩐지 자존심이 상했다. "언니, OO시도 도시야." 모깃소리로 말했지만 언니에게는 서울이 세상의 전부인 것만 같았다. 집에 돌아와 지도에서 새삼 '서울특별시'를 한 번 더 찾아보았다. 참 멀었다. 내 고향은 서울과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 있었다. 왜 서울은 '특별시'인 걸까? 서울은 그렇게 특별한 걸까? 다른 곳은 '직할시'인데 왜 서울만 '특별시'일까? 왜 다른 지명은 촌스러운 한자인데 '서울'만 예쁜 우리말인 걸까? 서울에 대한 질문은 꼬리를 물었고, 서울의 '특별함'은 궁금함을 넘어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TV 속 주인공들은 모두 서울에서 살았다. 드라마 속 부잣집에는 일하는 아주머니가 있었고, 그 아주머니는 집 전화가 울리면 "네, 평창동입니다." 하며 받았다. 주인공들은 남산에서 데이트를 했고, 무슨 일이 생기면 꼭 한강을 뛰어다녔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재밌는 일과 중요한 일은 모두 서울에서만 일어나는 것 같았다. 우리 집에는 SBS 대신 지역 방송이 나왔고, 평일에 하는 SBS 만화는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었다. (사실 이것도 뒤늦게 알았다. 그런 만화를 SBS에서 해줬는지)




  그리고 드디어! 제주도 모임 이후 처음으로 서울에 놀러 가게 되었다. 중학생이었던 친척 언니는 나를 데리고 건대 입구부터 동국대 캠퍼스까지(한남동) 데리고 다녔다. 언니랑 단 둘이 지하철을 갈아타다니. 노란색 표가 기계 건너편에서 안 나올까 봐. 출입구의 회전하는 봉이 내 앞에서 덜컥 멈춰버릴까 봐 들어갔다 나올 때마다 침을 꿀꺽 삼켰다. 신기한 것은 도착지에 도착하면 노란 표가 기계에 들어가서 다시 안 나오는 것이었다.  


  서울에는 없는 게 없었다. 우리 도시에는 롯데리아 밖에 없었는데, 서울에는 맥도날드도 있고, KFC도 있었다. 언니는 맥도날드가 서울에는 아주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시골에도 이거 있어?"가 또다시 시작되었다. 언니는 많은 질문 끝에 "시골에 피자헛 있어?" 하고 물어보았다. 피자헛! 있다! 우리 시에 롯데리아 말고 피자헛이 있다!


"응! 언니 피자헛 있어!" 거기까지만 하고 말았어야 했는데

"피자헛도 있고, 피자터치도 있어!" 했다.


  언니는 "피자터치가 뭐야? 처음 들어보는데 시골에만 있는 건가?" 했다. 아, 피자터치 이야기는 왜 꺼냈을까. 피자터치가 정말 유명한 가게인 줄 알았는데 우리 시에만 있는 거였나 보다. 저녁에는 막내 외삼촌이 나를 데리러 왔고, '코코스'라는 패밀리 레스토랑에 데리고 가주셨다. 세상에 무슨 이런 맛이 있나 싶은 맛있는 저녁을 먹고 다시 성수동에 사는 둘째 이모 집으로 돌아갔다. 이모집에 9시 뉴스가 틀어져있었는데 중간에 지역 뉴스로 안 바뀌는 것이었다. '아, 서울은 방송국이 서울에 있으니까 뉴스가 안 바뀌는구나.'싶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서울은 대단한 곳이었다.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었달까. 내가 보기에 언니네 한남동 집도 둘째 이모의 성수동 집도 낡은 주택이라 우리집보다 훨씬 안 좋아 보였다. 그래도 역시 마음 깊은 곳에서는 나도 지하철이 있고, 맥도날드도 많고, 지역 뉴스로 바뀌지 않는 서울에 살고 싶었다.




  이날의 서울 나들이가 떠오른 이유는 얼마 전까지 열심히 시청했던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때문이다. 남자 주인공 염창희가 여자 친구랑 헤어진 이야기를 전하며 “넌 그냥 딱 촌스러운 인간이고, 난 그 말이 상처가 될 수 있는 경계선 상의 인간이고. 걔가 경기도를 보고 뭐라는 줄 아냐? 경기도는 계란 흰자 같대. 서울을 감싸고 있는 계란 흰자.”라고 하는 부분이 나온다. 드라마 초반 몇 화까지도 '아, 이 드라마는 1300만 경기도민의 애환을 담은 드라마구나.' 하면서 봤다. 그리고 문득 우스운 생각을 했다. '경기도가 계란 흰자면 내가 사는 곳은 뭘까?' 달걀 껍데기, 아니 달걀이라는 우주 그 밖에 있는 걸까?


  여전히 세상의 중요하고, 재밌는 일은 모두 서울에서 일어나는 것 같다. 연예인들이 뛰어다니는 여의도 공원도, 드라마 주인공들이 밤에 데이트하는 오색 찬란한 한강 다리도, 보고 싶은 전시회와 공연도, 아이와 함께 가고 싶은 박물관도 모두 서울에 있다. 여전히 나에게 서울은 특별한 곳이다. 서울 사람들은 내가 사는 곳으로 여행을 오고, 나는 서울로 여행을 간다. 그러면서 서로 같은 생각할 것이다.



'와, 이런 곳에서도 다 사람이 사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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