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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섬 Sep 10. 2019

또 다른 '나'의 시작

지금 여기 앉은 나는 내가 아닌 또 다른 나,

그런 마음으로 이 책상에 앉기 시작했다.

거의 창고로 쓰이던 방을 정리하고는 

쓰지 않는 식탁을 옮겨 이 방에 두었더니 책상이 되었다. 

그리고는 이렇게 으슥한 밤이 되면 

졸린 몸을 이끌고 잠시라도 앉아보기 시작했다.

뭐 특별한 걸 하는 건 아니고, 

평소 나와는 다른 나와 만나고 싶어서라고 해두자.

그러니까 지금의 나는 '쓰는 사람'인 나, 


영화 '패터슨'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알지 않을까.

작은 마을에서 버스기사로 일하며 틈틈이 시를 쓰는 패터슨.

일상을 똑같이 살아가는 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조금은 다른 이가 된다. 

그 장면은 무척이나 인상 깊게 남아있었는데

얼마 전 보았던 'SBS스페셜-시요일'에서도 비슷한 걸 느꼈다. 

여러 사람들에게 일주일 동안 시 한 편을 작성해주세요, 란 요청을 하고,

그 시가 완성되는 시간까지 지켜보는 내용이었는데,

그중 목수로 일한다는 밝은 청년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시를 읽어본 적 없던 청년이 그런 요청을 받고 틈틈이 고민하기 시작한다.

일이 끝나 집에 돌아가면 책상을 펴놓고 한 줄 한 줄 글자들을 써보기 시작하는데,

그때 그는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일상을 보내는 자신이 있고, 그 사이사이 시를 쓰는 자신이 탄생했다고 할까.

두 개의 세계를 사는 인간은 그러니까, 뭔가 멋지구나. 

흥미로웠던 건 가족에 대한 애정을 시로 쓰려했던 청년이 

고민하고 끄적이던 시간을 거치는 동안 자신을 계속 들여다보다가

어느 순간 아버지에 대해 쓰게 되던 일이었다. 

미워하던 아버지를 나이가 들면서 이제는 조금은 이해하게 되던 순간의 전환.

그게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라는 걸 깨닫는 자신과의 만남. 

쓴다는 행위가 주는 건 그런 걸까. 


이제 시작하는 거라 그런가,

앉자마자 졸리고, 평소의 나가 끊임없이 중얼거린다. 

니가 이럴 때가 아니야, 지금 봐야 할 자료들과 공부해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내일을 생각해봐, 아아, 마음이 무거워지지 않아?

그 말에 내일을 생각해버리니 앉은 지 5분도 안 지났는데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기 시작한다.

으흠. 시간은 왜 이렇게 빨리 지나가버리는 건지.

10분 만이라도 이쪽의 내게 시간을 줄 수 있을 텐데, 

평소의 나는 질투심이 무척이나 강한가 보다.  

일단은 5분만이라도 앉은 채 또 다른 나에게 시간을 내어주고,

내일은 6분이라도 내어줘 볼까.

또 다른 나는 아직 무채색의 인간이라서 

지금 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그냥 가만히만 앉아있다. 

으흠. 이 녀석은 과연 어떤 이상한 녀석으로 커가려나.

그때까지는 매일 조금씩 시간을 내어주는 일을 반복해볼 것, 

습관이 들 때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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