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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가다의 작은섬 Feb 04. 2023

절대적인 믿음, 초의미 2편「죽음의 수용소에서」

믿는 자에게 의미가 있나니! (2023.1.30. 월)

https://brunch.co.kr/@islefree/243




나라는 사람이 ‘존재자체만으로도 가치 있다’는 믿음과 ‘내 삶은 가치 있다’는 믿음이 삶에 살아가는데 무척 중요한 신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일까요? 저는 빅터프랭클이 말한 초의미를 많이 분들이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초의미와 고통의 상관관계

지금까지 살면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해 좌절하기도 했지만 삶 곳곳에 살아 숨 쉬는 고통 때문에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기도 했습니다.


삶의 의미는 주어진 상황은 각 개인이 살아 숨 쉬는 그 사람만의 세상, 바로 지금-여기입니다. 나만의 세상에서 오로지 나만이 발견하고 실현시켜야 하고, 나만이 실현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내 삶의 의미’라고 빅터프랭클은 말합니다.


그럼 고통에서 의미를 찾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고통과 초의미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요?


<삶의 의미를 찾는 방법 밑에 브런치글 참고>

https://brunch.co.kr/@islefree/173


     


『내가 특정 제품을 특정 방식으로 포장하는 기계를 하나 만든다고 해보자. 그러면 이런 기계를 만드는 데 내가 어느 정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그 지능은 해당 제품을 내가 직접 포장할 때 필요한 정도보다 더 높은 지능이어야 한다.』

(빅터 프랭클의 영혼을 치유하는 의사 81p)


『인간과 동물의 본질적인 차이는 인간은 지능이 높다 보니 자신의 지혜보다 본질적으로 뛰어난 지혜, 즉 초인적인 지혜가 있고, 이 지혜가 인간에겐 이성을, 동물에겐 본능을 심어 주었음을 깨달을 수 있다는 데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인간의 지혜와 동물의 지혜로운 본능을 창조하고, 각자에게 맞는 세계를 마련해 준 지혜를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빅터  프랭클의 영혼을 치유하는 의사 81p)


내 삶 속 고통과 초의미

첫째, 22살.  대학에 가고 싶다고 말했을 때 허락해주지 않은 부모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27살. 뒤늦게 대학에 입학했지만 정말 간절히 열정적으로 공부했습니다. 22살이 아닌 27살의 나였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그래서 일까요? 22살의 나에게 대학 진학을 허락하지 않은 부모님이 더 이상 원망스럽지 않습니다.


둘째, 4년 전 아네스와 갈등으로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던 삶에서 내 쳐졌을 때, 내 삶이 의미가 없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시련으로 우린 서로의 삶을 분리하고 각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역할을 상실한 것이 아니라 아네스와의 관계에서 진정한 내 역할을 찾았기에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셋째, 작년 3월 브런치 작가가 되고 3번의 고비가 있었습니다. 구독자와 조회수에 초점을 두다 보니 글쓰기가 싫어지고 모든 행위가 무의미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알게 되었습니다. 글을 쓴 첫날부터 지금까지 제 글을 읽으며 응원해 주시는 선생님이 계시다는 것을 말입니다.


조회수보다 구독보다 ‘단 한 사람’이라도 제 글을 읽어주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알았습니다. 그리고 나의 생각과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도 알았습니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나에게 감사합니다. 그래서 일까요? 더 이상 저는 구독과 조회수로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초의미, 고통으로 부터의 안식

막연하게 신의 영역 또는 추상적으로 생각했던 초의미를 선생님들의 사유를 듣고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빅터프랭클의 말처럼 원숭이는 자신이 당하는 고통의 의미를 아무리 생각하려고 해도 그저 고통스럽다는 것 말고 다른 의미를 생각할 수 없지만, 인간은 자신의 고통에 대해 의미를 발견하거나 차원을 넘어 의미를 창조할 수 있는 지혜가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인간은 높은 지능으로 삶의 전체적인 의미나 고통의 의미를 발견하고 창조할 수 있는 초인적인 지혜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초인적인 지혜를 사용하여 내 삶과 함께 하는 고통에서 의미를 발견(창조)하고 그 고통을 새로운 시각으로 봄으로써 오랫동안 나를 괴롭히던 고통으로부터 안식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즉 내가 고통에서 의미를 발견(창조)한 순간부터 고통은 고통이기를 멈추기 때문입니다.



『신이 가능성의 오르간 앞에 앉아 즉흥적으로 세계를 작곡한다. 우리 가련한 인간들은 늘 그중 인간의 소리와 비슷한 소리를 내는 오르간 음전 하나만을 듣는다. 그것만으로도 아름다운데, 전체는 얼마나 근사할 것인가! “ - 슐라이히 - 』

(빅터프랭클의 영혼을 치유하는 의사 82p)


내가 모를 뿐 우리 안의 초의미

자정에 퇴근해서 몇 시간 자지도 못하고 이 추운 날 출근하는 요셉과 자정에 퇴근하는 요셉이 올 때까지 기다리며 따뜻한 밥을 차려주는 나도 마냥 힘들지만은 않습니다.


열심히 공부했는데 제 마음같이 점수가 나오지 않는 수학공부지만 오늘도 수학책을 펼치고 책상에 앉은 아네스와 연일 계속되는 한파로 친구와 놀지 못해 속상하지만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이해한다고 말하는 테레사, 이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초의미(고차원적 지혜)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내 안의 초의미를 발견한 작은 에피소드

주말에 몸이 아팠습니다. ‘잠이 보약이다.’ 싶어 계속 잤어요. 그리고 꿈을 꿨습니다. 꿈속에서 두 자아가 만나 수많은 대화를 했습니다.


자아 1 : ‘네가 지금 이렇게 자도 되니? 이렇게 시간을 낭비해도 되냐고?’
자아 2 : ‘아니야. 난 시간을 낭비하는 게 아니야. 몸이 아파서 그래. 지금 쉬어야 또 일을 하지’


아파서 쉬는 건데도 시간을 허투루 쓰는 것 같아 고통스러워요. 잠에서 깨어 멍하니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았습니다.


‘아. 나는 시간을 정말 아끼는 사람이구나. 1분 1초도 허투루 쓰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이구나. 나 참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구나.’



『믿음 안에서 초인간적 차원으로 나아가는 것은 사랑을 통해 이루어진다.』

(빅터 프랭클의 영혼을 치유하는 의사 82p)


『강아지가 수의사를 통해 가해진 아픔을 견디면서도 신뢰 가득한 눈빛으로 주인을 바라보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자신이 당하는 아픔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강아지는 주인을 신뢰하고 사랑하기에 믿고 견디는 것이다.』

(빅터 프랭클의 영혼을 치유하는 의사 82p)


『초의미에 대한 믿음은 창조적이며, 믿음은 강하게 만든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헛되게 보이지 않으며, ‘예정되지 않은 일이 없다’』

(빅터 프랭클의 영혼을 치유하는 의사 83p)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내 삶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내 삶은 의미가 있다는 절대적인 믿음’


잔인한 고통 속에서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통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고통보다 더 한 고통을 줄 수도 있습니다. 빅터프랭클은 아무도 그 사람에게 고통을 이겨내고 영웅이 되라고 강요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고통에는 반드시 의미가 있다.’


이 한마디가 저에게는 큰 위로였습니다. 그리고 지난날 오래도록 나를 괴롭혀오던 고통에서 안식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빅터프랭클이 말하는 초의미가 아닐까 감히 유추해 봅니다.


잔인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삶에서도 내 삶은 가치 있다는 믿음,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이지만 반드시 의미가 있다는 믿음,
나는 존재자체로도 가치 있는 사람이다는 믿음,
이 세상 누구보다도 나를 사랑한다는 믿음,



누군가... 이 글을 읽는 누군가의 삶에 고통이 지나가는 중이라면 말해주고 싶습니다. 지금 겪는 고통에서 의미를 발견했든 못했든 확실한 것은 지금 겪고 고통에는 반드시 의미가 있다고 말입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지만 가지가 나무의 뜻을 알 수 없듯이 내가 모르는 차원 넘어서.. 반드시 의미가 있을 거예요. 내가 지금 찾지 못하는 것뿐.. 그래요. 그 고통을 살아가는 것 자체만으로도 내 삶은 충분의 의미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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