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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가다의 작은섬 Apr 08. 2023

나에게 평범한 하루란

안전함이자 틀이다.(2023.4.6. 목)




선생님에게 <평범한 하루>란 어떤 일상인가요?

새벽에 일어나 두 시간 정도 책도 읽고 일기를 씁니다. 그리고 가족이 일어나기 앞서 아침을 준비하고 함께 식사를 해요. 남편이 먼저 회사에 가고, 잠시 후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집니다. 보통 글을 쓰거나 공부나 학교 과제를 합니다. 오후 2시쯤 가족이 먹을 저녁을 준비하고 저도 늦은 점심을 먹고 학교에 갑니다. 수업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와 바로 씻고 자요.


선생님께서 지금 말씀하신 일상이 선생님에게 아주 평범한 일상인가요?

네. 특별하지 않으면 이 루틴대로 하루를 보냅니다.


루틴? 선생님에게 이 루틴이 아주 중요하군요.

네. 저에게는 이런 일상의 루틴이 아주 중요합니다.


왜 그렇죠? 왜 이 루틴이 선생님에게 중요하죠?

안전함. 루틴대로 하루를 보냈다는 것은 아무 일 없이 안전하게 하루를 보냈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루틴대로 보내지 못하는 날이 있나요?

있죠. 실예로 어제 아빠가 전화를 하셔서 제게 소리소리치셨죠. 엄마와 작은 다툼이 있었는데 그 화를 참지 못하고 저에게 전화를 하신 거죠. 저는 아빠 전화를 받고 마음이 상해서 그 뒤 제 루틴대로 일상을 보내지 못했습니다. 그리니 제게 루틴은 내가 오늘 하루 아무 일 없이 안전하게 하루를 보냈다는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아. 선생님에게는 하루를 예측하는 게 중요하군요.  예측하지 못하는 일이 불안한가요?

네. 예측가능성. 명료함. 중요합니다. 제가 예측하지 않는 일이 발생한다는 것이 저를 불안하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저는 안전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https://brunch.co.kr/@islefree/44


교수님은 질문했고

나는 대답했다. 안전. 빅터프랭클의 로고세러피를 만나고 일 년쯤 지났을 어느 날, <아. 나는 이제 안전하다.> 것을 알아차렸다. 이제 나를 지킬 수 있음에. 내 삶을 책임질 수 있음에. 나는 충만한 안전감을 느꼈다. 


지키고 싶었다.

나의 안전함을. 그 방법이 나는 루틴이었다. 또 다른 불안에 제 스스로 갇힌 줄도 모르고. 알아차림. 내 안의 거인이 어떻게 나고 자랐는지 그 원인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그 원인을 알아야 <그것 보아라. 이제 너를 해칠 수 있는 불안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설사 불안이 오더라도 내가 너를 지켜줄 수 있다. 너는 안전하다.>라고 말하며 거인을 다독일 수 있기 때문이다.


훈습

정신분석심리치료 단계 중에 훈습이 있다. 내 안의 거인이 무엇으로 불안해했는지 알았으면 거인이 틀 밖으로 나와 세상과 어우러질 수 있도록 조금씩 행동으로 실천해야 하는 단계를 말한다. 세상에서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든 있는 그대로 거인을 수용하고 격려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도리어

가둬버렸다. 안전한 장소를 발견했다. 틀 밖은 위험해 그 속에 그대로 있어라. 내가 지켜줄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몸부림치는 너를 억눌렀다. 매슬로우는 욕구 5단계 이론을 말하면서 안전의 욕구를 이야기했다. 안전해야 나와 너를 사랑할 용기도. 나를 실현하고 싶은 희망도 생기는 것인데. 나는 오히려 그 단계에 나를 가둬버렸다.


나가자.

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던 나는 준비되었다. 내가 그런 것처럼. 서로 어깨를 기대며 나가보자. 조금씩 틀 밖으로.


틀 밖으로

나갔다. 오늘. 예측하지 못한 만남. 예측할 수 없는 대화였지만 즐거웠다. 루틴 밖에서 거인과 나는 신나게 놀았다. 저만치 떨어진 틀을 보며 우리는 잠시 불안하기도 했지만 우리는 서로를 안았다. 마음속 이야기도 살포시 해보고 콕 찧어 된장인지 고추장인지 맛보며 살포시 웃어도 보았다.


오늘은

예상밖의 행동을 많이 해본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기 바쁜 걸음을 멈추고 빵집에 들어왔다. 집도착 시간은 몇 분 늦어지겠지만 허기진 배는 채웠다. <컥컥> 아고 앉은 것까진 좋았는데 <나 오늘 엄마랑 잘 거야. 빨리 와> 귓가에 맴도는 테레사 목소리에 사래가 들고 말았다. ㅋㅋ웃음이 난다. 그래도 이게 어디냐.


되었다. 

오늘은 이만하면 되었다. 길게. 그리고 천천히 가자. 봄비가 내린다. 가랑비에 옷 젖듯 천천히 내게 스며들자. 자기 초월 별거 있나. 오늘 내가 한 모든 행동이 나를 초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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