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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가다의 작은섬 Apr 09. 2022

하얀색 방호복! 그리고 모멸감

아가다네 코로나 상륙기





나는 보육교사, 요셉은 사회복지사! 그런데 코로나에 확진되었다. 코로나에 확진되고 1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하다.


요셉은 경기도에 있는 센터에서 최초로 코로나에 확진된 사회복지사였고, 나는 우리 지역에서 제일 큰, (원아 200명, 교사 40명) 어린이집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일 년 전만 해도 코로나에 확진되면 개인의 잘못으로 확진된 것처럼 보도되는 경우도 많았었고, 사회적 낙인이 큰 때인지라 마음고생도 많이 했다.


『분노하며 원한을 품는 건, 나를 죽이는 거예요. 분노하는 마음을 그대로 방치하면 육체의 질병으로 옮겨가기 쉽습니다. 마음을 상처로 인한 스트레스가 폐렴의 원인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어요.』

(마음아, 넌 누구니 77p 박상미)


2021년 3월 31일 분한 마음 가슴에 품다.

2021년 3월 31일 친정 오빠의 전화 한 통은 나를 분노하게 했다. 분한 마음 어떻게 달랠 길이 없어 금요일이 되자마자 맥주 다섯 캔과 안주거리를 사들고 나만의 장소, 베란다에 앉았다.



그렇게 울고 웃으며 나를 달래던 시간... 그리고 나니 몸에 탈이 나고 말았다. 일하는 곳이 사회적으로 코로나에 더 민감한 곳이라 바로 PCR 검사를 진행하였고, 다행히 별 탈이 없음에 안도했다.


친정 가족들이 야속한 마음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지고 마음의 정리가 되지 않는 나날들이 계속되었다. 나는 그렇게 내 마음에 독을 품었다.


지금 미루어 짐작해 보면 마음에 품은 독이 신체 면역력을 약화시켰던 게 아닌가 생각해 본다.


2021년 4월 21일 2차 PCR 검사

머리가 묵직하고 관절통이 유독이 심한 아침이었다. 평상시에도 알레르기성 비염으로 고생하였기에 증상도 비슷하여 몸이 많이 피곤한가 보다 생각했다. 겨우겨우 근무를 마치고 4월이지만 제법 뜨거운 햇빛을 받으며 자전거를 타고 퇴근했다.


침대에 널브러져 누웠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체온을 재었더니 38도! 남편에게 사실을 알리고, 아이들은 하교 후에 바로 집으로 오도록 조치한 다음 선별 진료소로 내달렸다.


2021년 4월 22일 정밀검사 후 확진

잠 못 이루는 밤이 지났다. 오전 9시가 훌쩍 지났음에도 보건소에서는 연락이 없었다. 기다리다 지친 우리는 10시쯤 보건소에 직접 연락을 했고, 검사 수치가 애매해서 정밀 검사 중이니 기다리라.. 는 말을 듣고 전화를 끊었다.


 ‘아... 망했구나..’ 


그리고 2시가 넘어 연락이 왔는데 ‘확진자’가 되었다.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다. 오만 사방팔방에 전화하거나 전화를 받아야 했고, 머릿속에서는 오만 상상이 다 펼쳐졌다.


 ‘아 0세 아이들 밥 먹였는데? 어떡하지?’ 


정말 별별 생각에 다 들었다. 그렇게 겨우 정신줄을 부여잡고 회사며 애들 학교, 학원, 관계자에게 모든 조치를 하던 중 아네스가 소리쳤다.


 ‘엄마, 아빠 (코로나) 확진이야?!!!’


우리 부부가 외부 조치로 정신이 없던 차에 아네스 단톡 방에서 일이 좀 있었나 보다. 참 야속하더라. 그 이후로 나는 업무적인 것을 제외하고는 카톡의 모든 단톡방을 정리했다. 두 번째 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아침, 다행히 우리 부부 접촉자는 모두 음성이었다.


우리 아이들까지도...(아직도 미스터리임)


사진출처:아가다의 사진첩 연천생활치료센터에서..


『아무리 감정이 무뎌진 수감자라고 할지라도 분노를 느끼는 순간이 있음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그 분노는 육체적인 학대와 고통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으면서 느끼는 모멸감에서 나오는 것이다.』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164 이시형)


하얀색 방호복! 그리고 모멸감

아이들을 돌봐줄 곳이 없던 우리는 같이 시설에 입소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확진되고 이틀 뒤에 연천에 있는 생활치료센터로 가게 되었다.


입어는 봤는가? 머리에서 발끝까지 오는 하얀색 방호복!


우리 집은 19층이었고, 그걸 입고 엘리베이터를 타야 한다는 것은 코로나 확진보다 더 무서운 공포? 였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묵묵히 그것(방호복)을 입고 밖으로 나왔다. 때마침 엘리베이터가 올라오고 있었는데 차마 ‘내려감’ 버튼을 누를 수가 없었다. 


그 엘리베이터! 18층에 멈췄다. 그것을 본 요셉의 한마디 


“우리 그냥 계단으로 갈까?”


 “층층이 내려가면서 다 보여 줄 바에는 난 그냥 한방에 끝내는 게 좋다고 생각해”

사진출처:아가다의 사진첩

그리고 아무도? 마주치지 않고 토요일 오후 2시 30분에 사설 구급차를 타고 연천으로 갔다. 구급차 안에서 나는 참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직업상 어디 다니지도 못했다. 공원에서 차 한잔 하자는 지인들의 만난도 거절하고 아이들이 놀러 가고 싶다고 해도 그 또한 미루던 시간이 참 어리석게만 느껴졌다.


코로나가 무서운 건...

개인적으로 코로나가 제일 무섭다 생각되는 건 사회적 관계 단절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아이 둘을 키우면서 매년 1회 이상은 독감에 걸린지라 그때도 '혹시 우리 아이가 혹시 숙주? 가 아닐까' 죄인 아닌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는데, 코로나는 정말 그 여파가 어마 무시하더라.


다행히 두 아이는 무사? 했고, 그때의 경험으로 현재는 지인들이 하나둘 코로나에 확진되면 조언 아닌 조언을 한다. 요셉도 그 뒤로 몇몇 센터에서 확진자가 발행하니 그 당시 센터에서 어떻게 조치했는지 자문을 구하는 전화를 한동안 받았다고 한다.


비타민 팍팍 + 타이레놀 + 포로 폴리스가 최고의 궁합

우리는 크게 아프거나 후유증으로 고생하지 않았지만, 한 3개월 정도는 조금만 움직여도 엄청 피곤하거나 무기력했던 기억이 있다. 계속.. 코로나 변이가 많이 발생하는 지라 언제 재감염될 줄 모르니 나는 나만의 처방을 한다.(개인적 견해입니다.)



혹시라도 감기 기운이 있으면 일단 비타민 팍팍 + 타이레놀 + 포로 폴리스가 최고의 궁합이더라!


사진출처:아가다의 사진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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