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대지에 뿌리를 단단히 내리는 어린 시절 <유형기>를 보낸다고 한다. 바깥세상과는 상관없이 오로지 자기 자신과의 싸움, <나 지금 유형 기인가?>ㅋㅋㅋㅋ 나무가 한평생을 잘 살아내기 위해 대지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듯 인간도 자신의 삶에 단단히 뿌리를 내려야 삶의 한가운데서 일어나는 다양한 자극속에 이리저리 흔들리더라도 중심을 잘 잡고 살아갈 수 있겠지. 나무도 인간도 유형기를 어떻게 보냈느냐에 따라 <회복탄려성>에서 차이가 나겠지.
<숲=가정>
<한그루의 나무를 살리려면 숲 전체가 건강해야 한다.>라는 말에서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려면 내가 건강해야 하고 내 남편이 건강해야 하고 우리 부부가 건강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 가정이 안전해야 아이들이 그 속에서 건강하게 자라겠지. 항상 나를 돌보자. 나를 돌보는 것이 곧 가정이라는 숲을 건강하게 만드니 기본이 될 테니까.
<우듬지=삶의 의미>
하늘을 향해 쭉 뻗어가는 나무, 해를 향해 나아가는데 충추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우듬지>라고 한다. 우듬지를 통해 나무는 제멋대로 자라는 수형을 통제하고 해를 향해 나아간다고 한다. 우종영 작가는 우듬지가 사람에게는 꿈과 희망일 것이라고 표현했다. 우듬지, 그건 나에게 삶의 의미를 뜻하는 것 같다. 매 순간 수많은 선택 앞에 놓여있는 내가 중심을 잡고 나아가게 하는 힘, 그것은 바로 <삶의 의미>다.
나무처럼
살고 싶다는 글을 쓴 적 있다. 그런데 정말 나무처럼 사시는 분이 계셨네. 나무를 통해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그 의미를 매 순간순간 실천하면 사시는 분, 우종영작가님. 책 잘 읽었습니다. <도서관에서 빌려서 봤지만 꼭 소장해야 하는 책, 삶이 힘들 때, 내 삶의 의미가 흔들릴 때 꺼내보고 싶은 책>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32p>막 싹을 틔운 어린 나무가 생장을 마다하는 이유는 땅속의 뿌리 때문이다. 작은 잎에서 만들어낸 소량의 영양분을 자라는 데 쓰지 않고 오직 뿌리를 키우는 데 쓴다. 눈에 보이는 생장보다는 자기 안의 힘을 다지는데 집중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어떤 고난이 닥쳐도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을 비축하는 시기, 뿌리에 온 힘을 쏟는 어린 시절을 <유형기>라고 한다. 나무는 유형 기를 보내는 동안 바깥세상과 상관없이 오로지 자신과의 싸움을 벌인다. 따뜻한 햇볕이 아무리 유혹해도 주변 나무들이 보란 듯이 쑥쑥 자라도 결코 하늘을 향해 몸집을 키우지 않는다. 땅속 어딘가에 있을 물길을 찾아 더 깊이 뿌리를 내릴 뿐이다.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38p> 한여름 우리의 눈을 기쁘게 하는 형형 색색의 꽃들은 가지가 성장을 멈췄다는 증거다... <중략>... 그런 의미에서 나무는 스스로 멈춰야 할 때를 잘 안다.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 성장했고 욕심을 내면 조금 더 클 수 있다는 것도 알지만 어느 순간 약속이라도 한 듯 나무들은 자라기를 멈춘다. 마치 동맹을 맺듯 <나도 그만 자랄 테니 너도 그만 자라> 하고 함께 성장을 멈추고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결국 나무에게 있어 멈춤은 자기 자신을 위한 약속이면서 동시에 주변 나무들과 맺은 공존의 계약인 셈이다.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50p> 새 생명이 자라기 위해 숲에 빈틈이 필요하듯 우리의 인생도 틈이 있어야만 한숨을 돌리고 다음 걸음을 내딛을 힘을 얻을 수 있다.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56p> 나무의 삶은 결국 버팀 그 자체가 아닐까 싶다... <중략>... 나무에게 있어서 버틴다는 것은 주어진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내는 것이고 어떤 시련에도 결코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버팀의 시간 끝에 나무는 온갖 생명을 품는 보금자리로 거듭난다.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64p> 지나친 욕심으로 무겁게 배낭을 메고서는 절대 멀리 가지 못하는 것처럼 인생도 집착과 욕심을 내려놓지 않고는 진정 원하는 곳에 이룰 수 없다는 단순한 진리였다.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69p> 나무의 육아 원칙은 하나, <최대한 멀리 떼어놓기>다. 자신의 그늘 밑에선 절대로 자식들이 큰 나무로 자랄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까닭이다.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83p> 나무는 죽는 순간까지 해를 바라보며 오직 하늘을 향해 뻗어나간다. 이때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우듬지>다. 우듬지란 나무의 맨 꼭대기에 위치한 줄기를 말하는데 곱게 자라는 침엽수의 경우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자라면서 아래에 가지들이 제멋대로 자라는 것을 통제한다. 우듬지가 구심점 노릇을 해주어서 나무는 자라는 동안 일정한 수형을 유지할 수 있다. 사람의 인생에 부여하자면 꿈이나 희망이랄까. 나무의 우듬지가 아래 가지들을 다스려 가면서 하늘을 향해 뻗어가듯, 사람은 꿈이나 희망 등 살아갈 이유가 있어야만 삶의 크고 작은 문제들을 이겨내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127p> 암벽 위에 자리 잡은 왜소한 나무들이 제 몸집보다 몇 십배는 큰 바윗덩이를 보란 듯 갈라버리는 것이다. 대체 나무는 무슨 힘으로 큰 바위를 두부 자르든 갈라놓을 수 있었을까? 아직 껍질이 채 생기지 않은 여린 나무뿌리 끝에는 흙을 파고들 때 상처가 나지 않도록 보호해 주는 뿌리골무라는 조직이 있다... <중략>... 재미있는 점은 집채만 한 바위를 단번에 가르는 비밀이 바로 이 부드러운 점액질에 있다는 것이다.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137p> 가만히 보면 나무에게 있어 적응은 가진 것을 버리는 데서 출발한다... <중략>... 변화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본연의 모습을 철저히 버리고 그곳에 맞게 적응해 가는 것이다. 더욱이 그냥 적응하는데 그치지 않고 주변의 다른 생명들까지 불러 모아 새로운 생명의 땅을 만든다.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160p> 한그루의 나무를 되살리려면 결국 숲 전체가 건강해야 한다.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173p> 나무가 지난날을 고스란히 새긴 채 죽을 때까지 푸르게 살아가듯, 사람 역시 살면서 몸으로 겪어낸 모든 경험을 아름다운 흔적으로 되살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떤 경험이든 그것들이 쌓여 오늘의 내가 되었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그 어떤 날도 의미 없는 날은 없었다. 한 걸음 내딛고, 한마디 말하는데도 조금은 신중해지는 이유다.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198p> 삶을 목적이란 결국 부단한 변화의 과정을 통해 <나다움>을 찾아가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272p> 우리는 특이한 외양이나 유별난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면 늘 이유를 찾으려고 한다. 별다른 이유가 없다고 말하면 <그럼 왜 그렇게 하고 다니는 거냐>라고 따진다.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292p> 도종환 시인이 말했듯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고, 흔들리지 않고 곧게 서는 줄기도 없다. 나무가 하늘을 향해 높이 자랄 수 있는 것도 바람 앞에 무수히 흔들리며 살기 때문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흔들리지 않으려 너무 애쓰면 오히려 쓰러지게 된다. 그러니 흔들린다고 자책하지 말자. 흔들리되 다시 중심을 잡고 가면 될 일이다. 누구나 그렇게 살아간다. 걷다가 시련 앞에서 무너지고 다시 일어나고 또 걸어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