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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가다의 작은섬 Apr 18. 2022

역사는 가정을 하지 않는다. ①

역사 그리고 삶의 의미





『칼을 만난 붓
정도전이 똑똑하다고 여겨지는 게 자신이 갖고 있는 것과 잘하는 것(사상)을 알고 있는 것보다  자신이 못하는 것, 가지고 있지 않은 것(무력)을 잘 알고 있었다는 점이 아닐까 싶어요.』

 (역사저널 그날 20p)



오늘 데일리 필로소피에서 자기 평가에 대해 두려워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정도전은 본인에 대해 스스로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을까요? 그래서 이성계와 만났을까요?


자신의 평가를 토대로 본인 삶에 의미를 발견한 사람일까요? 그랬기에 최초의 조선인으로 역사에 남았을까요?


저 인물의 철학과 신념이 궁금해집니다.


두 책에서 나오는 글에서 나는 의미를 발견해 봅니다.


바로 지금 나에게 필요한 의미 말입니다.


나는 지금 무엇으로 괴로워하고 있는가? 내가 아직 별 볼 일 없는 존재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든 것인가?


나를 치유하고자 시작했던 공부였지만 이제 나도 누군가를 위해 무엇인가 할 수 있을 것 같아 내 안의 틀을 깨고 밖으로 나아갔지만... 부딪쳐보니 본능적으로 내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일까?


안도감이 듭니다.

내가 언제나 책을 읽고 있다는 것이 말입니다.


우리는 가끔 숨 가쁘게 달리는 온 시간이 허무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칼을 뽑았으니 무라도 자를 것 같지만 현실은 녹녹지가 않습니다.


그럴 때면 내가 도대체 무엇을 위해 달리고 있는지 의미를 잊어버려요.


번 아웃..

맞아요.

번 아웃이 초인종을 누릅니다.


번 아웃! 너란 놈 참 잘 만났구나.
이참에 쉬어가면서 나란 녀석 한번 살펴봐야겠구나.


평생 나를 알아가는 것.

그것이 삶이지 않을까 생각해합니다.





『흔히들 역사엔 가정이 없다고 하지만, 』

(역사저널 그날 29p)
『글쎄요. 그게 의미가 없으면 역사학자들이 할 일이 없어집니다. 의미를 찾는 것이 역사학자들의 일이니까요.』

(역사저널 그날 40p)


‘역사엔 가정이 없다’라는 문구가 의미 치료를 공부하는 저에게는 참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빅터 프랭클은 말합니다.

피할 수 있는 시련은 피하되 피할 수 없는 시련에서는 의미를 발견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개인이 살아온 삶, 그 삶 속에 존재하는 수많은 기록들은 어느 누구도 지우거나 바꿀 수도 없습니다.


그 삶의 주인 조자도 말입니다.


그렇다면 개인은 자신의 삶의 역사학자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내 인생에 역사학자가 되어 기쁜 날은 기념일로 슬픈 날은 추억으로, 시련에서는 의미를 발견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정도전의 생각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한다.”』

(역사저널 그날 65p)


음.. 그렇다면 나에게 있어서 ‘우리 집을 위한 정치는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하는 대목입니다.


나를 위해서. 아이들과 남편을 위해서 또 다른 가족들을 위해서. 회사에서는? 그리고 나와 관계되는 모든 사람들에게 어떤 정치를 해야 할까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정치는 무엇일까요?

정치.. 다른 말로 의미를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저는 이들과 웃고 사랑하고 안아주고 마음을 보면서 내 삶을 살아가고자 합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그 선택들이 모여서 역사가 됩니다.

역사를 통해서 결과와 책임의 무게를 배우는 것은 우리 후대의 몫이 아니까 싶습니다.』

(역사저널 그날 103p)


사극을 보면 역사 속 인물들은 무수한 선택을 합니다. 그리고 어떤 선택을 하든 간에 그 책임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갑니다.


크든 작든 모든 결정은 한 가지만 선택해서 실현할 수 있으며 그렇게 결정된 것은 영원히 우리 삶 속에 존재하게 됩니다.


하나를 영원히 존재하게도 만들 수 있지만 또 다른 하나는 영원히 존재하지 않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에 선택은 언제나 근사하고도 두려운 것이라고 빅터 프랭클은 말합니다.


역사에서 존재하는 별것 아닌 선택이 역사 속 풍파를 몰고 오는 경우가 있듯이 우리 삶도 정말 별 것 아닌 선택으로 엄청난 시련을 끌어오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선택에 대한 결과와 책임의 무게를 배우나 봅니다.





『태종의 삶은 과감한 결단과 냉혹한 실천의 일생이었다고 말할 만하다.

그는 정몽주를 격살해 고려 멸망의 마침표를 찍었고, 새 왕조가 개창된 뒤에는 왕자의 난을 거치며 마침내 왕위를 거머쥐었다.』

(역사저널 그날 106p)


빅터 프랭클 의미 치료의 핵심은 내 앞에 놓인 과제를 수행하게 위해 책임을 가지는 것, 이것이 바로 의미 치료의 행동강령이다.


가볍지 않은 선택의 연속에서 그 책임 또한 가볍지 않았거든 이들의 삶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요? 무엇이 이들의 삶을 이토록 정진하게 만들었을까요?


그리고 우리는 이런 가볍지 않은 선택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할 수 있을까요? 가볍지 않은 책임의 무게를 우리는 견딜 수 있을까요?


우리의 삶도 역사와 같습니다. 가볍지 않은 선택 앞에서 우리는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시련을 책임지며 견디어 왔습니다.


우리는 충분히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조선 외교관 「이예」: 1372 울산 태생으로 신분은 아전이었다. 어려서는 왜구에 어머니를 잃고, 또 왜구에게 잡혀가는 자기 상사를 따라가서 구해오고, 정말 왜구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의 심정을 절실하게 느끼고 그걸 해결하기 위해 한평생을 바치신 분 같습니다.』

(역사저널 그날 152p)


개인적으로 나 자신을 치유하고자 상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제가 바라본「이예」라는 인물은 자신의 고통을 너머서 인생(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자신과 같은 시련을 겪는 사람들을 돕는 것으로 한평생을 바쳤구나.


나도 상담자로서 이런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 우리는 역사를 더 정확하게 진단하고 그것을 오늘날의 일본의 변화와 잘 연결 지어 봐야 합니다.』

(역사저널 그날 167p)


우리의 삶도 이와 같은 시각으로 바라봤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삶 속에서 의미 있는 것과 의미 없는 것을 잘 구분하고 현재와 연결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의미를 다가올 미래의 선물로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빅터 프랭클은 ‘인생을 두 번째 살고 있는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지금 당신이 막 하려고 행동이 첫 번째 인생에서 이미 그릇되게 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라고 말했습니다.


역사를 지우거나 변경할 수 없듯이 우리 삶도 바꾸거나 지울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작은 것 하나를 선택할 때도 빅터 프랭클을 말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인사가 만사”라는 말을 자주 쓰잖아요. 그러고 보면 세종 시대가 태평성대일 수 있었던 가장 대표적인 힘도 세종의 용인술, 인사 정책에 있었던 아닐까 싶어요.』

(역사저널 그날 187p)


우리 아빠는 대통령을 욕하지 않습니다. 다만 대통령이 인사 배치를 이상하게 해서 나라가 힘들어졌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말씀하십니다.


우리도 삶에서 친구가 중요합니다. 우리를 스쳐가는 인연 중에 의미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나는 누구를 만나든 객관적 입장에서 배우는 자세로 살아가고자 합니다.





『정소 공주의 죽음 : 세종 재위 6년 (1424) 6월 세종은 열세 살 난 맏딸 정소공주를 병으로 잃는다. 세종은 딸의 시신을 차마 놓지 못한 채 슬퍼했고, 정사를 돌보지 못할 정도로 비탄에 빠졌다.』

(역사저널 그날 233p)

     

네이버 이미지


너의 고운 목소리와 아름다운 모습은 눈에 완연하거늘
곱고 맑은 너의 넋은 어디로 갔단  말이냐.
가슴 치며 통곡하고 아무리 참고 참으려 해도
가슴 아픔을 참을 길이 없구나


세종대왕 제문

     

세종대왕은 자식을 잃은 고통으로 ‘향약 집성방’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삶에서 겪었던 아픔을 백성들이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백성들을 사랑했다고 합니다.


빅터 프랭클은 피할 수 없는 시련 속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시련에 대처하는 우리의 태도! 그것은 우리의 자유 의지로 의미 있는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도 부모 입장에서 자식을 잃은 마음... 감히 상상조차 하기 힘듭니다. 세종대왕님은 견딜 수 없는 시련 속에서 백성들을 한 명이라도 살릴 수 있는 일을 하였습니다.


세종대왕님은 자신의 고통을 넘어서서 향약 집성방을 만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빅터 프랭클이 말한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발견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행복과 시련이 공존하는 것, 그것이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피할 수 없는 시련이 다가온다면 우리는 시련을 맞이하는 태도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언제나 긍정을 선택하시길 바랍니다.



여담 :

저는 몰랐는데요. 세종대왕님의 음력 탄신일을 양력으로 바꾸면 5.15일 이랍니다. 그래서 스승의 날이 5월 15일로 정한 거래요.


지금이라도 알아서 참 다행입니다. 얼른 아네스를 불러서 알려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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