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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가다의 작은섬 Aug 21. 2024

<트라우마는 어떻게 유전되는가>

셀프가족치료(2024.07.31. 수)



올 2월부터 상담을 받고 있다. 이 책은 상담사 선생님이 추천해 줘서 읽게 됐다. 아프게 읽었다. 아파하면서 읽었다. 과거를 볼 수밖에 없는 책을 읽다 보면 해결되지 않은 과거를 떠안고 사는 나의 삶이 좀처럼 나아질 수 없을 것 같아 두렵다.


보고 싶지 않아도 봐야 할 것 같아, 힘이 날 때마다 들여다보려고 하는 나의 과거. 과거를 생각하면 부모님이 떠오르고 내 안에 숨 죽여 웅크리고 있는 응축된 덩어리를 마주 보게 된다. 왜? 나는 왜 계속 보고 싶지 않은데 보려는 걸까? 이렇게 살면 안 될 것 같아서? 아니면 죄책감 때문에? 이런저런 이유가 뭐가 필요해. 종국엔 내 마음이 편하지 않기 때문에 들여다보면 편해질까 하여 그 끈을 놓지 못하는 거지. 실낱같은 희망을 품는다. 책을 읽고 글을 쓰다 보면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이해'하면 좀 편해질 것 같아서 꾸역꾸역 책을 펼치고 글을 쓴다.


힘들게 책을 읽었지만, 역시나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하고, 화도 나고, 억울하고, 짜증 난다'


우습다. 나는 과거부터 얼기설기 엮인 문제로 힘들어하는 걸까. 아니면 계속해서 주렁주렁 열리는 문제로 힘든 걸까. 부모님과 나 사이에 산제 된 문제는 과거가 아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오는 진행형이다. 가족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은 과거에 발생한 상처가 치유되지 않아서 힘들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과거의 문제가 현재로 계속 이어지기 때문에 더 힘들다. 아무리 노력해도 달라지지 않고 문제는 계속해서 폭탄 터지듯 빵빵 터진다. 책에서는 '부모와의 화해는 필수다'라고 말한다. 부모와의 단절된 관계양상이 나도 모르게 무의식 상태에서 현재 내 삶 곳곳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반드시 화해하는 것이 무의미한 고통을 멈춘다고 말한다. ㅎㅎ 누가 그걸 모르나...?! 문제는 끝나지 않고 이어지는 삶이다. 고통으로 이어지는 삶은 서로의 삶을 망가트리고 폐허로 만든다.


책을 다 읽었다고 말하니 상담사 선생님이 어땠냐고 물어본다. 난 솔직히 말했다. 뜬구름 잡는 것 같다고. 저자는 말한다. 트라우마는 '3대'에 걸쳐 유전될 수 있고, 내가 모르는 사돈에 팔촌, 이웃에게 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그래 그럴 수 있겠다 싶다. 문제는 나다. 난 과거에 부모님과 나 사이에 있었던 일로 생겨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똥 빠지게 노력했다.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 과거에 있었던 일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과거 사건으로 부모님을 원망해 봤자 달라는 게 있거나 혹은 내 삶이 나아진다면 골백번이고 원망했겠지. 하지만 달라지는 건 아~무겠도 없다.


그래, '가난하게 태어난 건 내 잘못은 아니지만, 죽을 때까지 가난한 건 내 잘못이다. 화목하지 않은 가정에서 태어난 건 내 죄가 아니지만 내 삶이 화목하지 않은 건 내 잘못이다'라고 빌게이츠가 말했다. 부모님이 선택하고 책임지며 살았던 삶을 지금 순간까지 비난하고 싶지 않다. 그땐 그들도 그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산 세월일 테니. 다만, 부모님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 때문에 내가 아직도 힘들다는 것이다. 이건 과거도 아니고 현재 발생하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래서 난 항상 답 없는 문제를 열심히 풀고 있는 것 같다. 이젠 더 이상 그 문제를 풀고 싶지 않을 뿐이다.


이젠, 움직이지 않는 마음을 억지로 움직이고 싶지 않다. 지금까지 억지로 움직여온 것만으로 충분하다. 부모님과 내가 어떤 관계에 놓여있던, 트라우마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던 나는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




트라우마는   어떻게 유전되는가/마크 월린/정지인/심심/교양심리/352p


외면을 보는 사람은 꿈을 꾸고, 내면을 보는 사람은 깨어 있다._카를 융

29p 핵심언어 접근법 : 마음속 가장 깊숙한 곳에 도사린 두려움을 나타내는 특유의 단어와 문자. 미해결 상태로 남은 트라우마의 근원으로 안내하는 실마리다. 신체감각, 행동, 감정, 충동, 질병이나 질환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39p 과거는 결코 죽지 않는다. 심지어 지나가지도 않는다._윌리엄 포크너


101p 핵심언어를 알아내는 법 : 자기가 느끼는 가장 깊은 공포감을 묘사할 때 사용하는 강렬하거나 절박한 단어가 바로 자신의 핵심 언어다.


139p 핵심 언어 지도의 네 가지 도구 : 핵심 불평, 핵심 묘사어, 핵심 문장, 핵심 트라우마


176p 부모와의 화해는 필수다. 온화하게 마음을 열고 부모와의 사이를 가로막던 과거사를 떨쳐내야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고통의 무의미한 반복이 멈춘다.


177p 분노의 단어 밑에는 슬픔이 겨울잠을 자고 있다. 슬픔 때문에 죽지는 않지만, 분노 때문에 죽을 수는 있다.


244p 부모와 관계를 단절하면 도리어 부모의 부정적 특성을 무의식적으로 떠안을 수 있다. 해결책은 부모를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것, 그동안 거부해 온 그들의 특징을 의식하는 것이다.


245p 단 한 가지라도 따뜻한 이미지를 찾아 그것을 깊이 받아들이면 부모와의 관계를 바꿀 수 있다.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현재는 바꿀 수 있다. 관계를 다르게 받아들여야 하는 존재는 부모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245p 틱낫한은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화가 나 있다면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화해의 마음을 찾아야 한다. 이것이 행복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다.' 화해는 내면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이다. 부모와의 관계는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달려 있지 않다. 그것은 내가 무엇을 하느냐의 문제다. 변화는 내 안에서 일어난다.


268p 어린아이였던 자신을 위로하는 문장, '이제 내가 널 보살펴줄 거야. 다시는 그런 감정 속에 혼자 있지 않아도 돼. 내가 널 안전하게 지켜줄게. 나를 믿어' '네가 외롭고 두려울 때 결코 너를 혼자 두지 않을게, 대신 여기에 손을 얹고 네가 다시 평온해질 때까지 너와 함께 호흡할게'


299p 시인 릴케는 관계를 유지하는 일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썼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인간의 가장 어려운 과제다. 다른 모든 것은 그 일을 위한 준비일 뿐이며 그것은 궁극적이고 최종적인 시험이자 증명이다'


301p 부모와 함께 지냈지만 불행했다면, 부모가 진심으로 자식의 행복을 바라더라도 부모를 향한 무의식적 충성심이 부모보다 더 행복해지는 것을 막기 때문이다. 또한 마음껏 생동감을 표현할 수 없는 분위기 속에서 자란 사람은 '행복'할 때면 죄책감을 느끼거나 불편해한다.


319p 부모와의 관계는 삶에 대한 은유다. 부모에게 많은 것을 받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대개 삶에게도 많은 것을 받았다고 느낀다. 부모에게 많이 받지 못했다는 느낌은 삶에서도 받는 것이 적다는 느낌으로 옮겨간다. 부모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았으면 삶에서도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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