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tti Dec 01. 2019

스스로 선택한, 나의 첫 번째 가족

유기견 A




밤 사이 A가 세 군데나 오줌과 똥을 지려 놓았다.

자고 일어나서 처음 맞는 풍경(혹은 밟는 것)이 똥과 오줌인 경우, 심지어 잠이 마저 깨지 않은 상태인 경우에는 순간적으로 화가 치민다. 보통은 투덜거리며 주섬주섬 치우고 말지만 오늘은 달랐다. 우리 집 강아지 A는 원래부터 실수가 잦았지만, 요즘은 패드에 제대로 용변을 보는 일이 거의 없었다. 남편과 나는 아침마다 번갈아가며 용변을 밟고 슬리퍼를 세탁하는 일상을 보내던 차에 오늘 아침, 세 군데나(큰 실수는 심지어 여러 군데에) 실수를 하는 일이 생긴 거다.




반복되는 실수에 지친 나는 심호흡을 두어 번 하고 A를 A의 방, 즉 A가 용변 보는 베란다가 있는 방에 두고 방문을 닫았다. 평소 같았으면 문을 긁고 낑낑댔을 A가 오늘은 가만히 있다. 한 공간에 패드와 A를 둘이 두는 방법. 결혼 후 처음 이사 왔을 때 썼던 방법이다.

그때도 중구난방으로 한 달 넘게 영역표시를 하고 돌아다니던 통에 다용도실에 패드를 두고 다용도실이 있는 방을 아예 A의 방으로 정했었다. 그리고 바로 훈육이 불가능한 밤에만 우리와 분리하여 A방에서 재웠다. 반경이 좁아지니 A는 자연스레 패드가 있는 자리를 기억하고 그곳에 용변을 봤다. 이후 한 사흘은 잘 지키다 또 하루 한 번은 실수를 하고, 계속 그런 식이었다. 좀처럼 잡히지 않는 A의 배변습관에 서서히 지쳐갔다.




A는 내가 대학시절 데려왔던 유기견이다.

마트에서 장을 보는데, 마트 내 동물병원에 큼지막하게 '유기견 있음'이라고 써져 있었다. 그 당시 나는 본가에서 키우던 강아지를 잃어버렸다는 소식을 듣고 한창 찾으러 다니던 차였다. 아빠의 주사와 폭력으로 급하게 집을 나왔던 그 이튿날. 돌아오지 않는 나를 새벽 내내 현관 앞에서 기다리던 강아지가, 아침에 할머니께서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던 찰나 현관 틈으로 튀어나갔고 연로한 노모는 잡을 수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나를 찾으러 떠난 그 여정이 빌라 바로 앞 도로에서, 그것도 나간 지 1분 만에 빠르게 달려오던 트럭으로 인해 끝났다는 걸 가족들은 몇 년 후에나 내게 알려주었다. 그 당시 아직 살아있는 것으로 알고 있던 나는, ‘유기견 있음’이라는 글자를 보고 혹시 우리 강아지가 아닐까 싶은 마음에 홀린 듯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갔다.



'딸랑'

하는 소리에 열댓 마리의 강아지가 우르르 문으로 달려왔다. 어떤 강아지는 벌떡 일어서서 내 무릎을 긁고, 어떤 강아지는 기쁜 나머지 제 꼬리를 잡으려는 듯 빙글빙글 돌다 혀를 쭉 빼고 헥헥 웃었다.

손길 한 번이나 받을까 싶어 저마다 나름의 어필을 하던 강아지들 사이로, 의자 밑에서 웅크린 채 미동도 않고 엎드려 있는 강아지 한 마리가 보였다. 털은 누덕누덕 멋대로 엉켜 있고, 엉망으로 자란 눈 사이 털은 분홍색 고무줄로 성의 없이 묶여 있었다. 그마저도 눈꺼풀의 털은 다 빠져 있었다. 혹시 저 아이가 유기견이냐고 묻는 내 말에 간호사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맞다고 했다. 벌써 세 달째 아무도 데리고 가지 않아서 센터에 보낼 참이란다.

사람이 들어와도, 문 소리가 나도 미동도 않던 아이가 A였다.




데려온 첫 날.


이후로 그 병원에 두 번을 더 찾아갔다. 눈에 밟히지만, 강아지를 혼자 키울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 방문에도 A는 딸랑 소리에 문을 쳐다보지 않았다. 다만 내가 다가가 쭈그리고 앉아 조심스레 들어 A를 품에 안으면 가만히 안겼다. 다른 강아지들이 옆에서 나를 긁어대면 낮게 으르렁거릴 뿐이었다. 그 낮은 짖음의 의미가 뭘까, 혹시 나를 알아보는 걸까 하던 의문이 세 번째 방문에 풀렸다.

세 번째 방문 때, '딸랑'소리와 함께 내가 들어서자 역시나 의자 밑에서 홀로 잠을 청하던 A가 불현듯 고개를 번쩍 들고 문을 쳐다본 거다. 마치 누군가를 기다렸던 듯이. 그리고 나와 눈이 마주치자 꼬리를 살살 흔들었다. 왜 이제 왔냐는 듯이.




그 길로 나는 A를 데려와서 함께 살았다.

오갈 데 없는 건 너나 나나 똑같은 처지인데, 우리 잘 살아보자.

내가 널 지켜줄게, 너도 내 친구가 돼 줘.라는 뜻으로 붙인 이름 Atti.




A는 이제 나와 산 지 10년이 되어 간다. 다행히 남편은 A를 사랑한다. A가 내뿜는 악취를 개의치 않고 번쩍 안아 동그란 이마에 입을 맞춘다. A는 피부에 불치병이 있어 씻긴 지 두 시간만 지나도 악취가 나기 시작하고, 한 달에 약 20만 원가량의 피부약과 값이 비싼 가수분해 사료를 먹어야 한다. 데려온 지 이틀 만에 피가 날 정도로 긁는 A를 보고 알게 된 사실이고, 이 예쁜 아이가 유기견이 된 이유가 조금이나마 짐작이 갔다. 요즘은 눈마저 좋지 않아 안약을 아침저녁으로 넣어줘야 눈을 덮은 눈꼽이 어느 정도 가신다. 대학 다닐 때 아르바이트를 쉴 새 없이 한 것도 A의 병이 이유였다. 하지만 집을 비우는 시간이 길수록 A를 위한 일이지만 결국은 A를 혼자 두게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고, 결국 여동생을 불러 함께 살았다. 그렇게 A는 내 20대를 함께 했고, 30대와 결혼생활도 함께 하고 있다.




이렇게 글로 나열해 놓으니 참 미안한 마음이 든다. 비할 수 없겠지만 부모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기도 하다. 호기롭게 데려와서는 잘해주지도 못한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바닥에 흩뿌려진 각질 때문에 하루 두 번씩 청소를 할 때, 집에 들어서면 코에 확 닿는 악취 때문에 미간이 찌푸려질 때, 10년간 매일같이 바닥에 한 실수들을 처리할 때. 불현듯 이 모든 게 버겁다는 생각도 들게 하는 너지만,


세상에 덩그러니 혼자 뿐인 것 같던 20대. 나를 둘러싼 모든 조건이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만 같을 때, 악착같이 일을 하고 세상을 살아야 할 이유가 되어줬던 A. 조그마한 원룸에서 A를 끌어안고 울기를 수십, 수백 번. 그때마다 늘 곁에 있어준, 내가 스스로 선택한 첫 번째 가족.


오늘 그렇게 방에 두고 나오면서 마음이 참 안 좋았다. 내 작은 강아지. 얼른 집에 가서 힘껏 안아 줘야겠다.


오늘은 마루에 이불 깔고 함께 자자. 우리 셋이.




안녕?


매거진의 이전글 오빠, 우리 아이 낳지 말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