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tti Dec 02. 2019

안심과 등심의 온도차

가격보다 질을 따지는 사람과, 가격 대비 질을 따지는 사람의 만남



지난달 빼빼로 데이에 남편이 꽃을 한 아름 사 왔다.

남편이 꽃을 선물한  작년 프러포즈하던  이후로     개월 만이다. 사실   상업적인 기념일 챙기는 것을  좋아해서 이번에도 그냥 넘어가겠지 싶었다. 하지만 이번 빼빼로데이는 웬일인지 나도 마음이 동해서 낮시간 짬을 내어 빼빼로 모양 초코스틱을 구워놨던 차였다.


집에 들어올 시간이 지났는데도  오길래  지하철 파업을 하는가 싶었는데, 남편이 현관에 들어서면서  뒤에서  커다란 꽃다발을 꺼내 내게 건넸다. 꽃을 보고 함박웃음이 나면서도, 순간 ‘ 정도 크기면.. 얼마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표정을 스캔한 남편은 ‘가격은 묻지 말라.’ 단박에 못을 박았다. 하지만 나는 추측할  있었다(!) 남편 용돈 받는 날이   25, 빼빼로데이는 11. 그리고 남아있던 용돈 금액이 15 원가량. 다음 용돈일까지 남은 2주간의 담배값이  7 원이라고 가정했을  남은  8 . 남편은  금액 안에서 제일 비싸고   샀을 터였다.


여러 정황으로 추측컨대..  5 ?    





연애 시절에 남편은 꽃 선물을 거의 안 했다. 기념일에는 귓불이 두터운 내게 맞지도 않는 작은 링 귀걸이라던지, 백화점 1층에 전지현이 모델이어서 방문했다는 그 브랜드에서 무려 40만 원가량의 아주 실오라기처럼 얇은 팔찌, 목걸이 등을 사 왔다. 혼자 매장에 방문하고 고심했을 성의가 너무 고맙고 귀여워서 늘 교환하지 않고 사용했었는데(링 귀걸이는 귓바퀴 가장자리에 피어싱 대용으로 사용하는 등), 결국 중국 출장 다녀오면서 사온 50만 원가량의 푸른색 복조리 백으로 화룡점정을 찍었고, 나는 결국 한 소리를 하고 말았다.    


오빠, 푸른색 복조리 백은‥. 어느 색 옷에 메야할지 모르겠어요. 다음부터는 사기 전에 나한테 얘기 좀 해줘요.



   

이 한 마디에 크나큰 상처를 받은 남편은 이후 금전으로 선물을 대신했다. 회사에서 나오는 보너스 지급을 내 생일 즈음으로 맞춘다던지 하는 방법으로 내가 좀 더 편안히(?) 돈을 쓰게끔 유도했다. 하지만 큰 금액의 물건을 턱턱 사면서 살아보지 못했던 나는, 오히려 금전으로 받은 선물을 더더욱 못썼다. 2주째 통장에 돈을 넣어두고만 있는 나를 보다 못한 남편이 생일날 근처 백화점과 아웃렛으로 데리고 가서는 예쁜 코트들을 보여주며 제발 비싼 코트 한 벌만 사자고 애원을 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아. 역시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100만 원이 적힌 코트의 택을 보니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나는 남편이랑 술 마시고 취해서 물 마시다 옷에 물도 자주 흘리고, 주차된 차 틈을 지날 때도 먼지가 묻으면 탁탁 털고 마는 사람인데 100만 원이라니. 하루가 멀다 하고 가슴팍에 물을 주게 될 코트가 100만 원 이라니.    

결국 나는 다른 매장에서 30만 원가량의 코트 두 벌을 골랐고, 역시 디자인보다는 가격 대비 질 좋은, 가성비 괜찮은 것들로 골랐다. 그 매장에서 코트를 입어보는 내내 남편은 입이 잔뜩 나와서는 다음 주에 나를 데리고 이 백화점을 또 오겠다고 했다. 나는 정말 괜찮은데.        




남편과 살면서 가끔 이런 내 모습이 일반적이지 않은 걸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남편과 나는 아주 다른 환경에서 자랐다. 남편은 무엇을 사더라도 가격보다는 질이 우선인 사람이다. 꽃다발 하나를 고를 때도 제일 크고 예쁜 것(본인 안목 기준), 스테이크를 먹을 때도 비싸지만 본인에게 가장 맛있는 부위인 안심을 고른다. 반면 나는 뭔가를 살 때면 늘 가격 대비 질을 따진다. 예뻐서 사는 것이 아니라, 가격이 싼데 괜찮네? 하는 것들을 사야 합리적인 소비를 한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그리고 늘 내 마음에 들었던 것들은 생각했던 가격보다 비쌌다. 스테이크를 먹을 때도 사실 안심을 좋아하지만 가격 대비 양이 많은 등심을 선택하게 된다. 나도 모르게.


이런 나를 보며 남편은 돈을 더 많이 벌면 내가 편하게 쓸 수 있을 테니 본인이 더욱 노력해야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이건 평생을 가도 안 고쳐질지도 모른다는 걸. 뼛속 깊이 가성비를 따지는 이런 습성은 오랜 기간 내가 처해있던 환경과 부모님에게서 물려받은 유전병이라는 걸.     






결국 이번 빼빼로데이에 받은 꽃다발 가격을 남편에게 묻지 않았다. 이제 남편이 선물하는 팔찌를 인터넷을 뒤져 가격을 찾아보지도 않으려 한다. 남편이 내게 줄 선물을 바가지를 몽창 쓰고 사 왔더라도 함빡 웃으며 받아보려고 한다. 서른 즈음돼서 늦게나마 깨달은 건,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는 선물은 가격보다는 그 선물을 고른 사람의 시간, 정성, 마음을 봐야 한다는 거다.


그러니까 여보, 보너스로 받은 돈도 좋지만 이제는 시간 내서 꽃 한 다발, 아니면 예전처럼 팔찌 같은 것도 좋아. 오빠가 고르는데 들인 시간과 정성을 정말 기쁘게 받을게. 보너스는‥. 원래대로 연말에 받자구.





매거진의 이전글 스스로 선택한, 나의 첫 번째 가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