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들어 세 번째 안산둘레길.
간밤에 내린 비 탓인지 나뭇잎에서 윤이 난다. 며칠 사이에 아카시아꽃이 온 산을 뒤덮었다. 이 정도면 아카시아꽃 향기가 온 산에 진동할 텐데,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는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맡아도 그렇다. 세월이 모든 걸 바꿔놓는다지만, 꽃향기까지 없어지지는 않을 것인데. 냄새가 나지 않기는 아내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문득 우리가 냄새를 맡지 못하는 건 아닌가 싶었다. 그러고 보니 최근 몇 년 향기를 맡아본 기억이 없다. 하긴 서울로 돌아와 요즘 젊은이들은 왜 말을 우물거리는가 했다. 선명하게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는데, 알고 보니 내가 못 듣는 것이더라는.
나이가 드니 회복되지 않는 고장이 많다. 뛰지 못하는 건 이미 오래되었고, 말도 잘 알아듣지 못하고, 이젠 냄새까지. 그런데 별로 놀랍지도 않고 서글픈 생각도 없다. 그게 섭리려니 하고 살다 보니 그냥 덤덤하다.
그러고 보니 안산둘레길에 쓰레기 하나 떨어져 있는 곳이 없다. 그동안 꽤 여러 번 걸었는데, 오늘 비로소 알아차렸다. 주말이 되면 줄지어 걷다시피 할 정도로 사람이 몰리는 곳인데도 말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세상이 조금씩 나아져 가기는 하는 모양이다. 요즘 여기저기 보이는 꼴사나운 모습도 결국은 없어지지 않겠나.
안산둘레길 한 바퀴 돌고 내친김에 연희동 ‘이품’까지 걸어가 시원한 맥주 한 잔에 군만두로 점심. 1만4천 보. 돌아오는데 낯선 이가 인사를 한다. 오래전에 사우디 스마트 원전 때문에 출장왔던 관계사 직원이었다. 십 년 가까이 흘렀는데, 눈썰미도 좋지.
요 며칠 사이에 사우디에서 보낸 마지막 몇 년을 떠올릴 일이 계속 일어났다. 막막하고 때로는 고통스러웠던 시간. 그런 상황에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뭔가 해보려고 애쓰기는 했다. 그 노력이, 애쓰며 깨져가며 얻은 경험이, 어딘가 쓰일 수 있을 거라고는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 경험이 지금 이처럼 알뜰하게 쓰일 줄 알았으면 힘든 게 덜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