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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잉여일기

2022.10.18 (화)

by 박인식

10월 들어서면서 비 오는 날이 많아졌다. 유례없는 가뭄으로 몸살을 앓던 지난여름은 기억 속에서 이미 아득해졌다. 수운이 타격을 입을 만큼 물이 줄었던 라인강도 이미 예전의 위용을 찾은 지 오래되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기름 값도 오르고 가스 공급도 위협을 받아 올 겨울 나는 것이 큰 걱정이 되었다. 어제 독일 정부에서 올 연말에 폐쇄하기로 했던 원자력발전소를 당분간 더 가동하기로 했단다. 도움은 되겠지만 그것으로 다가오는 에너지 대란을 어느 정도나 막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자연의 힘이라는 게 참 무서운 것이 다 죽어가던 마당의 잔디가 비가 내리면서 예전 모습을 거의 회복했다. 잔디가 그렇게 회복된 것처럼 전쟁과 불황으로 드리워진 짙은 구름도 조만간 걷힐 수 있었으면 좋겠다. 희망적인 관측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지난 두 달은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가족과 이웃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는 아이들을 지켜보고 함께 뒹굴었다. 오래 전부터 아내와 함께 가리라 벼르던 베르겐을 다녀오고, 유럽여행의 하이라이트라는 고성에서 묵기도 하고, 오랜 독자로서 저자들을 찾아가 만나기도 했다. 참, 분데스리가 경기도 다녀왔구나. 하지만 무엇보다도 돌아가 다시 무언가에 묶일 일이 없다는 게 그 시간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었다.


덜어내는 삶을 살기를 기도했는데 두 달 동안 이곳에서 지내면서 발걸음이 가볍고 담백해지기는커녕 오히려 화려하고 요란해졌다. 언제 그런 기회가 다시 오겠나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선물처럼 누린 시간을 굳이 일탈로 여길 일이야 있겠나. 선물은 감사히 받고 잘 누리면 되는 것. 잘 누렸으니 그 감사한 마음을 안고 이제 일상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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