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미 글 그림
문학동네
2021년 2월 3일
코뿔소 노든은 코끼리 고아원에서 자라난다. 자신이 코끼리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노든은 그곳을 떠나 바깥세상으로 나온다. 혼자 떠돌아다니는 것도 괜찮았다. 원하는 곳을 갈 수 있었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하얗게 빛나는 아름다운 뿔을 가진 코뿔소를 아내로 맞는다. 자연에서 살아가는 게 서툴렀던 노든은 아내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고 아름다운 딸도 얻는다. 아내와 딸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행복했다.
어느 비오는 밤, 인간이 들이닥쳐 노든 가족에게 총을 쏘아댄다. 노든이 어리둥절해하는 사이 아내가 망설임 없이 인간을 향해 돌진하다가 총에 맞는다. 정신이 번쩍 든 노든은 사납게 날뛰어보지만 딸은 이미 죽고 아내는 뿔이 잘린 채 죽는다. 밤보다 길고 어두운 암흑이 찾아온 것이다. 죽은 코뿔소 두 마리 곁에 쓰러져 있는 노든을 발견한 인간은 노든을 데려다가 정성스럽게 치료해 살려낸다. 그렇게 노든은 ‘파라다이스 동물원’의 새 식구가 된다.
그곳에서 노든은 숨을 쉬는 매 순간 화가 나있었고 보이는 모든 인간을 공격하려했다.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코뿔소 앙가부를 설득해 탈출하려하지만 실패한다. 어느 날 앙가부가 뿔이 잘려 죽고 노든도 뿔이 잘린다. 갑자기 전쟁이 일어나 폭격으로 동물원 울타리가 무너지자 노든은 그곳을 벗어난다. 울타리를 벗어나다가 알을 담은 양동이를 입에 문 펭귄 치쿠를 만나고 그와 긴긴밤을 같이 보내며 바다를 향해 걷는다. 그러면서 둘은 ‘우리’가 되어간다.
치쿠가 바다를 찾아야한다고 했지만 노든은 바다가 뭔지 몰랐다. 바다를 보지 못한 건 동물원에서 태어나고 자란 치쿠도 다르지 않았다. 그전 전해 들었을 뿐이었다. 복수를 하겠다는 일념뿐인 노든이 치쿠와 함께 바다를 향하는 건 치쿠가 바다를 만나야 홀가분하게 그의 길을 갈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을 입에 물고 걷던 치쿠는 결국 쓰러져 숨을 거두고, 그 알이 부화해 이 소설의 화자인 ‘나’가 태어난다.
나는 노든의 말대로 죽을힘을 다해 살아남았다. 하지만 살아남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노든은 나를 돌보는 사이 복수에 대한 생각이 희미해진다. 그러다 다시 인간의 공격을 받고, 치쿠를 입에 물고 도망쳐 겨우 살아남는다. 나는 노든에게 복수할 생각을 하지 말고 그냥 나와 함께 살자고 말하고 노든은 소리 없이 운다.
사막을 건너는 동안 노든은 걸음이 많이 느려진다. 어느 밤, 신음을 하는 노든을 깨우려는데 몸이 불덩이 같이 뜨거웠다. 또 다시 인간이 나타난다. 온 힘을 다해 노든을 일으켜 세우려하지만 노든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인간은 노든을 치료하고 곁에 아카시아 잎사귀 한 다발을 가져다준다. 이를 숨어서 지켜보던 나는 사람들이 돌아가자 노든에게 길을 재촉하지만 노든은 그곳에 남겠다고 한다. 내가 같이 남겠다고 하자 “너는 펭귄이잖아. 펭귄은 바다를 찾아가야해” 하며 나를 떠나보낸다.
노든을 떠난 나는 모래언덕을 넘고, 절벽을 수백 번 오르다 미끄러지기를 반복한 끝에 절벽 꼭대기에 올라 눈앞에 펼쳐진 바다를 만난다.
“축축한 모래를 밟으며 나는 바다를 향해 걸어갔다. 내 앞의 바다는 수도 없이 부서지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두려웠다. 하지만 나는 내가 저 바닷물 속으로 곧 들어갈 것이라는 것을, 모험을 떠나게 될 것을, 홀로 수많은 긴긴밤을 견뎌 내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긴긴밤 하늘에 반짝이는 별처럼 빛나는 무언가를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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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라고 한다. 미술 이론을 공부한 루리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그는 그림동화로 상을 받고 동화책에 그림도 그렸다.
다음 번 독서모임에 동화책을 골랐다고 했다. 의외였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는데 그림이 너무 아름다웠다. 어제 다 읽고 주문한 책을 오늘 받아 다시 처음부터 꼼꼼히 살폈다. 어제는 내용을 읽었는데, 오늘은 그림을 통해서 느낌이 깊어졌다. 그림이 단순히 내용을 시각화한 것에 그친 것이 아니라 평면적이던 느낌을 입체적으로 바꾸어 놨다.
그렇기는 한데 이것이 동화가 맞을까 싶다. 동화라면 아이들을 독자로 한 작품이 아닌가. 아이들이 작가의 의도를 읽어낼 수 있을까? 여느 책과는 달리 온라인 서점에 올라온 아이들 독후감이 백 개가 훌쩍 넘는다. 이 책으로 독후감 대회를 열었던 모양이다. 독자들이 올려놓은 리뷰도 삼백 개가 넘는다. 발간된 지 2년 만에 30만부가 팔렸다니 반향이 대단했던 모양이다. 모르기는 해도 아이들에게 읽히려고 그만한 책이 나갔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럴 만큼 곳곳에 생각할 여지를 남겨놓았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동화라기보다는 “동물을 통해 교훈을 말하는” 우화로 분류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노든은 코끼리 고아원을 나오기로 한 선택을 후회하느냐는 물음에 “훌륭한 코끼리는 후회를 많이 하지. 덕분에 다음 날은 전날보다 더 나은 코끼리가 될 수 있는 거야”라고 대답한다. 작가는 그 선택을 “혼자서는 코뿔소가 될 수 없었다. 노든이 코끼리로 살 수 있었던 것은 코끼리들이 있었기 때문이고, 코뿔소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코뿔소들이 있어야만 했다”고 설명한다.
알을 담은 양동이를 입에 물고 다니다 결국은 지쳐 숨진 펭귄 치쿠에게는 윔보라는 짝이 있었다. 뭐엔가 찔려 오른쪽 눈을 보지 못하는 치쿠를 위해 그는 늘 치쿠의 오른쪽에 서서 방향을 잡아주곤 했다. 덕분에 치쿠는 조금 불편하기는 해도 큰 문제없이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습관처럼 “윔보는 늘 치쿠의 오른쪽에 있어야 안심을 했다”.
안심할 사람은 도와주는 사람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어야 할 텐데, 도움을 받아야하는 치쿠가 아니라 오히려 도와주는 치쿠가 안심한다. 베푸는 것은 그것으로 잃는 손해에 비해 얻는 기쁨이 훨씬 큰 가성비가 매우 높은 선택이다. 그것이 되풀이 되면 습관이 되고 습관을 지키지 않으면 안심을 하지 못한다. 습관이 천성에 이르는 것이다. 윔보는 돕는 것이 천성이었던 존재였다.
페이스북에 작년 이맘때 올린 글이 다시 보였다. “난간은 오르막길에서는 힘이 되고 낭떠러지에서는 마음이 놓인다. 혹시 내가 누군가에게 난간 같은 사람이었던 일이 있었나? 지금까지 그렇지 못했다면 앞으로 한 번은 그런 사람이고 싶다.” 돕는 것이 천성에까지 이르지는 못하더라도 습관이 되도록 노력은 해야 하겠다.
작가는 노든의 입을 빌어서 화자인 ‘나’가 끝까지 살아남아야 하는 것은 치쿠와 윔보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바다에 도착하면 혼자 갈 수 있을 것이라는 ‘나’의 대답을 진심으로 대견해하며 “치쿠와 윔보가 자랑스러워 할 것”이라고 말한다.
자식은 자기 인생만 자기 인생으로 여기지만 부모는 자식의 인생까지를 자기 인생으로 여긴다. 그래서 희생을 희생으로 여기지 않는다. 불행하게도 적지 않은 부모들은 그랬기 때문에 ‘자식에게 가장 좋은 길’이라고 생각한 길을 자식이 걷지 않을 경우 자식을 질타하고 심지어 자식으로 여기지 않기도 한다. 부모 생각이 다 옳을 수도 없고 설령 옳더라도 그것이 자식의 행복을 보장하지 못한다. 부모에게 자랑스럽지 못한 자식도 얼마든 행복할 수 있다. 부모의 외면으로 인한 고통만 제외한다면.
사진으로는 작가가 아주 젊어 보인다. ‘부모가 자랑스러워 할 모습’을 언급할 만큼 부모와 관계가 좋아보여서 다행스럽기는 하지만, 왠지 아슬아슬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아이들 독후감에 이 책을 통해서 작가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어린이 문학상 대상에 선정되었다. 아동문학평론가의 호평도 즐비하다. 매끈하고 예쁘고 적절한 교훈도 나무랄 데 없다. 그렇기는 해도 내게는 ‘어린이 문학상’ 수상작이라는 것도 의아하고 30만부나 팔렸다는 것도 의아하다. 작품의 수준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책의 내용이나 수준과 판매부수가 어떤 관계가 있는지 궁금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