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져보니 벌써 57년이 되어가는 옛일이다. 미아리 공동묘지를 헐어낸 자리에 학교가 하나 들어섰다. 그때 막 의정부 가는 신작로가 학교 앞으로 생겨서 그나마 길가가 되었지, 그 신작로가 아니었더라면 그냥 벌판 끝에 들어선 산자락에 지나지 않을 곳이었다. 첫 신입생을 뽑는다는 시험장은 기둥만 들어선 본관 건물에 얼기설기 합판으로 가린 임시 교실이었다.
입학하고 첫 해가 끝날 무렵이 되어서야 본관 공사가 끝났고 중앙현관에서 운동장으로 내려가는 돌계단이 완성되었다. 중학교 1학년 종업식 날이었던 1968년 2월 21일 한 해 동안 같은 교실에서 공부했던 친구들이 그 계단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담임으로 고생하셨던 김종렬 선생님을 모시고. 가장 키가 컸던 친구 하나를 빼고는 모두 한 울타리 안에 있던 고등학교로 진학해 4회로 졸업했다. 하지만 중학교 고등학교를 모두 거친 첫 번째 졸업생이라는 생각에 우리가 이 학교의 실질적인 맏이라는 자부심으로 살았다.
사진을 찬찬히 뜯어보니 소식을 알고 지내던 친구 중에서 별이 된 녀석이 셋이나 된다. 뭐가 그렇게 급했는지. 전체 52명 중 소식을 알고 지내는 친구들이 반절, 한 해 한 번은 얼굴이라도 보고 지내는 친구들이 그의 반절. 그만만 해도 대단한 일이다. 사실 그 친구들 얼굴 보고 지낸 건 채 십 년도 안 되지 싶다. 은퇴하기 전에는 다 먹고 살기 바빴으니 말이다.
서울 변두리 학교에서 모두들 제 몸 보다 한 치수 큰 교복을 입은 얼빵한 모습의 아이들이 이제 죄다 할아버지가 되었다. 그 중 두 녀석이 독일에서 만나 맥주잔을 기울였다. 학생 때만 해도 외국 나가는 건 벼슬이나 해야 가능한 일이었는데. 그래도 각자의 자리에서 게으르지 않게 살았다. 오늘 만난 건 게으르지 않게 살았던 우리에게 주어진 덤으로 생각하고 고맙게 누리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