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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Jul 09. 2023

독일에 맥주 마시러 가자

배상준

제이앤제이제이

2018년 3월 10일


이슬람 종주국인 사우디에서는 술과 돼지고기를 엄격하게 금한다. 돼지고기를 가지고 있다가 적발되면 벌금을 무는 정도지만 술은 대단히 엄격해서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 추방 사유가 된다. 그렇다고 술이 전혀 없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다만 상당히 비쌀 뿐이다. 서울에서 삼사 만원이면 살 수 있는 위스키가 사오십 만원이나 된다. 그러다 보니 포도주스로 포도주를 담그고 누룩을 가져다가 막걸리를 담가 마시기도 한다. 그런데 맥주는 제대로 만들어지지도 않고, 그렇다고 위스키처럼 몇 십 만원이나 들여서 마실 수도 없는 노릇이니 사우디에 살면서 가장 아쉬운 것이 바로 맥주이다.


사우디 국영항공은 승객들에게 술을 주지 않는다. 사우디 국영항공이 아니라고 해도 사우디 영공을 벗어나기 전에는 술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휴가 때 항공기에 탑승하면 영공을 벗어나기를 기다려 맥주를 주문해 마시곤 했다. 그리고 공항에 내리면 소시지에 맥주부터 한 잔 들이킨다.


그렇게 맥주에 한이 맺히다 시피 해서 독일에 사는 아이들 보러 가면 돌아오는 날까지 맥주를 입에 달고 산다. 언젠가는 맥주 스무 가지를 마시고 오겠다고 작정을 하고 사우디로 돌아오는 공항에서 스무 번째 맥주를 마신 일도 있다. 그런 기억이 있으니 <독일에 맥주 마시러 가자>는 제목만으로 이 책을 읽을 이유는 충분해졌다. 이 책은 외과의사인 저자가 오로지 맥주를 맛보기 위해 8일 동안 독일 14개 도시를 여행한 이야기이다. 독일의 맥주와 음식과 도시와 문화에 대한.


“16세기 무렵 유럽의 밀 생산량이 빵을 만들기에도 충분하지 않을 정도가 되다 보니 바이에른 공국의 빌헬름 4세는 밀로 맥주 만드는 것을 금하고 대신 보리와 홉과 물로만 맥주를 만들라는 ‘맥주순수령(麥酒純粹令, 라인하이츠거보트)’을 공포한다. 지금도 독일에서 만드는 몇몇 맥주는 이 주조법을 따르고 있는데, 바이에른의 전통 맥주인 필스너, 쾰른의 쾰슈, 뒤셀도르프의 알트비어가 이에 해당한다.”


언젠가 독일에서 맥주 스무 종류를 마실 때 사실 뭐가 뭔지도 몰랐다. 흑맥주처럼 보이는 탁하고 짙은 색을 띄는 것도 있었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마시는 맑고 가벼운 느낌의 맥주도 있었다. 우리와 달리 맥주를 만드는 것이 자유로우니 맥주가 다양한가보다 생각했지 그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뉘는지도 몰랐다.


맥주의 종류


저자에 따르면 맥주는 크게 10도 정도 차가운 온도에서 맥주 통 아래쪽에서 발효하는 하면발효맥주 라거와 20도 전후의 상온에서 맥주 통 위에 둥둥 떠서 발효하는 상면발효맥주 에일로 나뉜다. 찾아보니 맥주를 분류하는 방식이 이보다 다양하고 복잡하더라마는,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 보면 대체로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다.


“상면발효맥주는 에일 말고도 쾰른의 쾰시, 뒤셀도르프의 알트비어, 그리고 베를린의 베를리너 바이세가 있다. 이 중 베를리너 바이세는 보리만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밀이 50% 이상 포함된 밀맥주(바이젠)이다. 밀맥주는 효모를 거르지 않아서 탁한 노란색을 띄는 헤페 바이젠과 효모와 부산물을 깨끗하게 여과해 수정처럼 맑은 크리스털 바이젠으로 나뉜다. 크리스털 바이젠은 효모와 부산물을 모두 걸렀으니 맛이 깔끔하지만 그렇다고 바이젠의 향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에일은 향이 좋은 반면 빨리 발효되기 때문에 탄산이 적고 청량감이 떨어진다.”


“하면발효맥주인 라거는 차가운 온도에서 천천히 발효하기 때문에 탄산이 많고 깔끔하며 향보다는 청량감이 우선한다. 우리가 즐겨 마시는 하이네켄이나 버드와이저 같은 대기업의 맥주들이 라거이다. 라거 맥주를 상상하면 샤워를 막 마치고 냉장고를 열고 한 캔을 뚝 따서 꿀꺽꿀꺽 마시는 장면이 떠오른다. 에일 맥주는 샤워 후 마시는 느낌보다는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음식을 한 입 먹고 나서 천천히 들이키는 장면이 떠오른다.”


저자는 상면발효맥주와 하면발효맥주를 하나씩 맛보며 설명을 이어나간다.


“하면발효맥주 라거의 대표주자로는 필스너를 꼽는다. 필스너의 원조는 체코이다. 프라하 남서쪽에 있는 플젠 시민들은 18세기까지만 해도 유럽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탁하고 어두운 색깔의 에일 맥주를 마시고 살았다. 맥주 품질도 한결같지 않고 냉장고가 없었으니 자주 상하기도 했을 것이다. 1842년에 지금까지 그곳에서 만들어 온 걸쭉하고 어두운 맥주와 전혀 다른 황금빛 깔끔한 맥주를 만들었다. 때마침 투명한 유리잔이 대중화 되었는데, 투명한 유리잔에 담겨 흰색 거품을 품은 황금색의 필스너는 사람들 사이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쾰른의 쾰시 맥주는 상면발효맥주이다. 에일 효모를 사용해 발효시키지만 라거처럼 10도 전후의 차가운 온도에서 장기 숙성시켜 에일 맥주 마실 때 느껴지는 과일향도 은근히 올라오면서 라거의 특징인 깔끔함이 훨씬 돋보인다. 필스너보다 밝은 황금색이다.”


“베를린의 베를리너 바이세는 밀(30%)과 보리(70%)를 함께 사용하는 밀맥주이다. 알코올 발효와 함께 젖산 발효도 함께 일어나기 때문에 신 맛이 난다. 알코올 도수는 3%로 누구나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다. 신 맛을 싫어하면 달달한 시럽을 타서 빨대를 꽂아 주스처럼 마시면 된다.”


오래 전에 베를린 포츠다머플라츠에 있는 소니센터에서 독특한 맥주를 마신 일이 있다. 길고 좁은 나무 판에 그저 한 모금 정도 담은 맥주잔을 일곱 갠가 일렬로 담아서 내온 것이다. 한쪽 끝에는 흑맥주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짙고 걸쭉한 맥주가 담겼고 차례로 맑아지다가 반대 쪽 끝에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시는 맑은 맥주가 담겼다. 같은 맥주 통에서 뜬 것이지만 뜬 위치가 모두 달라서 그렇다고 했다. 당시 가졌던 느낌으로는 짙고 걸쭉한 맥주가 에일이고 맑은 맥주가 라거 같기는 하다만, 에일과 라거가 한 통에 담길 수는 없는 일이지 않겠냐. 그래서 베를린에 다시 갈 이유가 생겼다.


맥주에 얽힌 이야기


“맥주는 기원 전 4천 년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해 그리스, 이집트 문명을 지나 유럽 전역으로 전파되었다. 하지만 맥주는 주로 포도주가 자라지 않는 추운 지역에 사는 게르만 민족이 만들어 마셨다. 그래서 오랜 세월 동안 와인은 고급술이고 맥주는 야만인들이 마시는 싸구려 술이라고 생각했다. 바이에른을 비롯한 독일 남부 지역은 맥주보다 와인을 만들던 곳이어서 오래 전부터 맥주를 만들어 왔던 독일 북부 지역에 비해 맥주 만드는 기술이 부족했다. 이곳 귀족들은 독일 북부의 맛좋은 맥주를 수입해 마셨는데 그 돈이 만만치 않자 빌헬름 4세의 손자인 빌헬름 5세가 양조장을 만들었다. 그곳이 1589년에 세워진 호프브로이하우스이고 여기서 라거가 출발했다.”


“옥토버페스트는 이름 그대로 10월에 열려야 하지만 지금은 9월 셋째 주 토요일부터 10월 첫째 주 일요일까지 16일간 열린다. 원래 10월에 열리던 것을 날씨가 좋은 9월로 앞당긴 것이다. 옥토버페스트는 바이에른 왕국의 황태자 루드비히와 작센의 공주 테레지아의 결혼을 축하해 1810년 10월 12일에 열린 경마대회에서 시작되었다. 1회 대회가 인기를 끌자 몇 종목이 추가되어 미니올림픽처럼 열리게 되었는데, 이 행사에서 맥주를 팔기 시작한 것은 1880년대부터이고, 그러다가 언젠가부터 맥주축제로 바뀐 것이다. 루드비히 황태자는 유명한 관광지 노이슈반슈타인 성의 주인이었다.”


맥주라면 병맥주와 생맥주로만 구분할 줄 알았고 맥주가 이토록 다양한 모습을 지닌 줄은 몰랐다. 저자는 맥주 이야기와 함께 독일 음식 이야기도 풀어놓는다.


“독일 사람들은 소고기보다 돼지고기를 많이 먹는다. 독일은 소, 양, 염소를 키우기 위한 목초지가 충분하지 않았던 반면 참나무 열매인 도토리가 충분했기 때문에 돼지를 많이 키웠다. 먹을 것이 귀해서 돼지를 도축하고 나서 가죽을 제외한 모든 부위를 버리지 않고 먹었다. 그래서 소시지나 슈바인학세 같은 음식이 발달했다.”


음식 이야기가 나왔으니 음식과맥주의 궁합이 빠질 수 없다.


“햄버거와 필스너는 궁합이 아주 훌륭하다. 치맥이나 피맥도 마찬가지다. 기름진 음식을 먹고 입 안의 기름기와 양념의 강한 향을 날려버리는 데는 필스너, 페일 라거 같은 라거 맥주가 제격이다. 베를리너 바이세는 커리 부어스트와 함께 먹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카레 소시지라는 뜻을 가진 이 음식은 베를린의 대표적인 길거리 음식으로, 양념을 끼얹어 준다는 점에서 우리의 순대볶음과 비슷하다.”


적지 않게 독일을 드나들었으니 독일 맥주도 꽤나 마셨다. 하지만 맥주를 들이킬 때 어딘가 모자란 듯한 느낌이 들어 의아하고 아쉽기도 했다. 저자는 독일 맥주는 탄산이 생각보다 많지 않고 우리처럼 차갑게 마시지도 않는다고 말한다. 우리가 유난하게 탄산을 많이 넣고 차갑게 마신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맥주에 들어있는 탄산은 술을 만드는 과정에서 자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라 일부러 넣는다는 말인가?


맥주를 마시면 살이 찐다는 속설에 대해 저자는 다른 견해를 피력한다.


“알코올은 살찌는 것과 별 상관이 없다. 하지만 맥주를 많이 마시면 살이 찌는데, 이는 맥주에 포함된 당분 때문이다. 맥주에는 기본적으로 5% 내외의 알코올이 들어 있고 그 외에도 단백질, 당분, 미네랄이 함께 들어 있다. 맥주 1리터에는 당분이 3~5% 들어 있는데, 이는 편의점에서 파는 유리병에 든 스타벅스 커피 한 잔의 열량과 같다. 열량이 같은데도 불구하고 스타벅스 커피는 살이 안 찌는데 맥주를 마시면 살이 찌는 것은, 먹는 양이 다르기 때문이다. 누가 커피 서너 잔을 한꺼번에 마시겠는가.”


결국 맥주를 마셔서 살이 찌는 게 아니라 맥주를 ‘많이’ 마셔서 살이 찐다는 말이다. 아니 그 좋은 맥주를 어떻게 한두 잔으로 그칠 수 있느냐. 말인지 방구인지.


마지막으로 상식 하나.


“맥주집을 호프집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1980년대 OB맥주가 대학로에 OB호프라는 맥주집을 연 것이 시초였다. OB호프는 맥주의 쓴 맛을 내는 홉(hop)에서 따온 것이 아니라 마당(court)을 뜻하는 호프Hof에서 따온 말이다. 맥주 한 조끼 하자고 할 때 조끼는 손잡이가 있는 잔을 뜻하는 저그jug라는 영어에서 비롯된 말이다. 저그보다 작은 잔을 머그mug라고 한다.”


알고나 쓰시라.


잘 알지도 못하고 익숙하지도 않은 주제를 다룬 책을 보느라 고단했는데, 이 책 덕분에 잠시 희희낙락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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