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행군과의 조우 2

소설 연재

by 서인석

의자를 살짝 뒤로 빼서 군인들이 좀 더 안쪽으로 들어올 수 있게 했다. 수백명의 군인들이 방탄모를 벗자 시큼한 냄새 수백개가 한번에 올라왔다. 더운 날이 아니었음에도 그들의 머리와 목덜미는 땀이 뻘뻘 들어차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들은 군장과 총을 풀지 않고, 군장에 등을 기대는 형상으로 앉았다. 총은 그대로 안았다. 군장의 무게는 20kg이 족히 되기 때문에 풀었다가 다시 어깨에 메려면 그게 더 힘들다.


어깨에 녹색 견장을 단 뽀얀 피부의 군인이 주변을 돌아봤다. 그리고 그의 근처에 있는 여드름이 많고 까무잡잡한 밤톨머리 군인을 살폈다. 밤톨머리는 수통을 거꾸로 뒤집어서 입에 대었지만 물은 나오지 않았다.


"야, 엄. 마셔."

녹색견장은 방독면이 들어있어야 할 주머니에서 캔 음료를 꺼내어 건냈다. '엄'이라고 불린 병사는 관등성명을 대고 "감사합니다!"하고 외치더니 감동받은 얼굴로 녹색견장이 주는 음료를 받았다. 녹색견장은 밤톨머리 말고도 주변 다른 동료들을 둘러보며 "야, 괜찮냐?" 등의 말을 건네며 분대원들의 상태를 점검했다.


나는 슬쩍 일어나서 차로 돌아갔다. 초콜렛과 사탕들이 있었고, 2L짜리 물도 넉넉하게 남아있었다. 종이컵 몇 개와 초콜렛, 사탕을 잡히는만큼 챙겨서 의자로 돌아왔다. 내 근처의 병사들에게 초콜렛과 사탕을 적당히 나눠서 건냈다. 한없이 지쳐보였음에도 그들은 큰 소리로 "감사합니다!"라는 말로 답했다.


"뭐야?"

길 안쪽에서 차량을 통제하던 간부가 다가왔다. 아마 웅성거리는 소리 때문인 듯하다. 간부는 상사 계급장을 달고 있었다. 나는 2L 물병을 열고 종이컵에 물을 따라 그에게 건넸다.

"어이쿠. 감사합니다."

간부는 넉살좋게 물을 받더니 그대로 쭈욱 마셨다.

"여기 사시는 분이신가보죠?"

"아니요, 잠깐 나와있습니다."

간부는 수풀 안쪽에 텐트와 차를 보더니 말했다.

"숙영을 여기서 하시는구만. 잘 마셨습니다."

앉아서 쉬던 병사들이 피식 웃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물병을 들어보였다.

"물 없는 사람 있어요? 여기 물 넉넉하니깐 좀 채워가요."

계급이 낮은 병사들은 앉은 채로 녹색견장의 눈치를 봤다. 녹색견장은 앉은 채로 아까의 그 밤톨머리를 먼저 챙겼다.

"야, 엄. 너."

물이 떨어진 듯한 병사들이 슬그머니 팔을 군장에서 빼고 수통을 꺼내려 했다.

"그냥 있어요. 채워줄테니깐, 수통 뚜껑만 열어요."

다시 "감사합니다!"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녹색견장은 쉴새없이 자기 주변의 다른 병사들을 둘러봤다. 수통은 보이는 크기보다 물이 많이 들어가는 편이라서 2L 물병이 쉽게 비었다. 한 병을 더 가져와서 주변 빈 수통들을 돌아가며 채워줬다. 어느새 녹색견장은 자신의 군장을 자리에 풀어두고 총을 등에 맨 채, 다가와서 수통 채우는걸 돕고 있었다.


"야, 이제 없지? 더 채우고 싶어도 이제는 그냥 앞뒤 사람 나눠마셔. 좀만 더 가면 될거야."

"예!"

녹색견장은 가까이 있는 병사의 어깨를 툭 치고 내게 돌아서서 꾸벅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분대장은 물 있어요?"

"예."

하지만 나는 그가 수통을 채우는걸 보지 못했다. 초콜렛을 까먹고 있는 병사들과 달리 그는 먹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따로 몇 개를 건넸다. 그는 다시 감사하다고 했다.

"자, 출발하자! 기상!"

아까 물을 받아간 경광봉 상사가 외쳤다.

"기상!"


군인들이 복명복창하며 꿈틀댔다. 행렬이 지렁이처럼 꿈틀대며 힘겹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녹색견장도 다시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하고는 자신의 군장쪽으로 다가갔다. 그는 자신의 군장을 챙기기 전에, 군장 무게 때문에 힘겹게 일어나고 있는 밤톨머리를 잡아 세웠다. 또 못일어나고 있는 다른 병사들의 팔이나 어깨를 잡아 함께 일으켜 주었다.


나는 아이스박스로 돌아가서 남은 콜라 하나를 가져왔다. 아직 시원했다.

"이봐요, 분대장!"

어느새 자신의 군장을 메고 앞뒤 병사들의 무릎을 털어주던 녹색견장이 돌아봤다. 나는 그의 왼쪽 건빵 주머니에 콜라를 넣었다. 또 남은 사탕을 그의 손에 쥐어줬다.

"마셔요. 그리고 이것도."

"어휴, 감사합니다."


행렬은 천천히 다시 왼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물을 받아갔던 병사들은 모두 나를 보며 "수고하십시오!"나 "감사합니다!"를 크게 외치며 지나갔다. 나는 손을 흔들어주었다.


"수고해요!"나 "건강하세요!" 같은 말을 외치려다 참았다. 괜히 민망한 말을 던지려니 생색처럼 느껴졌다. 녹색견장은 꽤 멀어지고도 뒤로 돌아보고는 나에게 꾸벅 목례를 했다. 그는 손에 쥐어줬던 사탕들을 자기 앞 밤톨머리의 건빵 주머니에 넣었다.



행군 행렬은 한참이 지나서야 후미까지 내 왼쪽으로 사라졌다. 행렬 가장 뒤에서는 지프차가 비상등을 켠 채 따라가고 있었다. 행렬이 지나고 한참이 지나서야 먼지는 슬슬 가라 앉았다. 나는 그제서야 관측장비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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