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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석 May 23. 2020

단어

TEXTIST PROJECT

작가 김훈은 그의 글에 '온전'이라는 단어를 자주 쓴다. '온전'이라는 단어는 세상에서 흔히 쓰이는 '완전'이라는 단어와 'ㅏ' 하나의 차이지만, 느낌이 크게 다르다. '완전'이라는 단어가 '완벽'의 느낌처럼 들리지만 '온전'이라는 단어는 '유지'의 느낌을 준다. 나의 글들에 '온전'이 종종 쓰이는 것은 김훈의 글이 준 영향이다.

 친구 중 한 녀석은 '적확'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적확'하다는 말은 세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단어가 아니다. 오히려 '정확'이라는 단어가 많이 쓰인다. 회사에서 만드는 자료에 '적확하다'는 단어를 쓴 적이 있는데, 오타라고 지적을 받았다. 오타가 아니라 '정확'보다 알맞은 의미임을 잘 설명했다. 지적한 분은 이해하면서도 다른 이들도 오타로 생각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남겼다.
 '적확하다'는 말은 '정확하다'는 말보다 날카롭고 단단하다. 나는 이 '적확'이라는 말이 주는 견고함이 아름답다고 자주 느낀다. '정확하다'는 말은 '바르고 확실하다'는 의미를 주지만 '적확하다'는 말은 그 의미에 '적절하다'를 더한다. '정확하다'는 단어보다 더 정확함을 적확하게 표현하는 단어가 '적확'이다. 헷갈리는 음절과 뉘앙스만큼 영어로는 두 단어를 구분조차 할 수 없다. '적확'이나 '정확' 모두 exact나 accurate 정도로 표현한다. '정확'과 '적확'의 견고한 경계를 가르어 낼 수 있는 단어의 희소성이 나는 좋다.

 누군가만 유독 잘 쓰는 '단어'는 화자의 성향을 보여준다. 어떤 화자가 어떤 단어를 잘 사용한다면 그 단어가 주는 어떤 느낌에 대해 화자가 동질감을 느끼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온전-완전이나 적확-정확처럼 음절이 비슷한 단어들은 서로 병존하기에 더욱 서로의 매력을 극대화한다. 호날두가 존재하는 시대에 메시가 함께 존재하여 둘의 차이를 비교할 수 있고, 둘 모두가 매력적인 선수임을 더욱 크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온전'과 '완전'을 완전하게 구분하여 온전히 느낌을 죽이지 않고 표현할 때, 나는 글이 주는 평온과 만족을 온전히 느낀다. 또한 '적확하다'와 '정확하다'를 정확히 구분하여 적확한 곳에 적확이라는 단어를 썼다고 느낄 때, 그 한 문장이 정확하게 의도를 전달할 것임을 믿고 안심한다.
 희소적인 단어를 많이 아는 것은 세상을 살아갈 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글을 사랑하는 이에겐 미묘한 차이로 문장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아이템이다. 책과 글을 좋아하는 이들이 지속적으로 새로운 책과 새로운 글들을 갈구하는 것은, 목공예 장인이 밀리미터의 단위 나무를 깎는데도 땀을 아끼지 않는 것과 같아 보인다.

 고작 독립출판으로 책 한 권 낸 스스로에게 작가라는 호칭은 여전히 낯설고 부끄럽지만, 한편으로 뿌듯하다. 글에 대한 애정이 붙은만큼 단어와 문장과 책을 더 찾게 된다. 가만히 있는 순간도 사실은 머릿 속으로 문구와 문장을 끊임없이 붙였다 떼었다하고 있다. 단어는 머릿 속에 부유하는 문장들의 모습을 예쁘게 치장해준다. 단어는 그래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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