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onee Jul 22. 2018

1Q84의 세계로

도쿄 산겐자야, 고엔지, 신주쿠, 시부야로 이어지는 하루키 문학산책

이곳에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하루키를 찾아가는 여행》이란 책을 읽다가 생겨난 풀리지 않는 궁금증 때문이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하루키의 장편소설 《1Q84》에 등장하는 비상계단이 실제로 존재한단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저자가 적어둔 주소를 구글 지도에서 검색하여 몇 번이고 들여다보아도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아오마메는 비상계단을 내려와 산겐자야 역에서 전철을 타고 시부야역까지 간다. 그러나 저자가 찍어둔 비상계단 주소는 시부야역에서 1.4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서, 이곳에서 시부야를 가야 한다면 거꾸로 산겐자야까지 거슬러 내려가 지하철을 타는 것보다, 시부야역으로 바로 걸어가는 것이 상식적으로 맞다. 거슬러 올라간다고 해도 산겐자야 보다 가까운 이케지리오하시역이 있다. 이런 깊은 고민(스스로도 왜 이렇게까지 집착하는지 이해가 안 되지만) 속에서  《산책으로 즐기는 무라카미 하루키》란 책을 만났다. 이 책에 소설 속 이야기에 조금 더 가까워 보이는 위치가 담겨 있었다. 어차피 소설 속 가상의 공간이고, 하루키는 분명 실제로 없는 곳이라 할 테지만 여러모로 신경이 쓰여 직접 가보기로 했다. 결국 집착 쟁이는 도쿄 산겐자야역에 도착했다. 


2009년에 발간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에는 두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학원에서 수학 강사를 하면서 소설가가 되고자 하는 덴고와, 스포츠 강사로 일하면서 암살자로도 활동하고 있는 아오마메. 둘은 어린 시절 같은 학교를 다녔고, 각자 1984년과 미묘하게 다른 1Q84년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된다. 그리고 덴고는 후카에리라는 여고생이 쓴 《공기 번데기》란 소설을 고쳐 쓰게 되면서, 아오마메는 암살 의뢰를 받으며, 각자 ‘선구’라는 종교단체와 관계가 맺어지기 시작한다. 




“현실은 언제든 단 하나밖에 없어요.”
ㅡ 산겐자야에서 택시기사가 아오마메에게 건넨 말 
《1Q84》배경, 비상계단


1984년과 미묘하게 다른 1Q84년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되는 도쿄 수도고속도로의 비상계단. 《1Q84》는 주인공 아오마메가 택시를 타고 수도고속도로에서 교통 체증을 만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체증이 쉽게 풀리지 않을 것 같자 택시 기사는 아오마메에게 246번 국도로 내려갈 수 있는 비상계단의 존재를 알려준다. 약속에 늦을 수 없다 생각한 아오마메는 계단을 내려가 전철을 타기로 마음먹는다. 산겐자야역에서 7분 정도 걸어서 도착한 비상계단은 단단히 잠겨 있었다. 소설에서처럼 지진이나 화재가 나지 않는 이상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나와있다. 나는 아오마메처럼 단련된 몸도 아니고, 또 괜한 짓을 해서 머리 아픈 상황을 만들어서는 안 되는 여행자이기 때문에 사진만 꼼꼼히 찍으며 구경을 했다. 이미 그 공간에 한참 서있는 모습만으로도 지나가는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상태. 모두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지나갔다. 한편 이곳에서 마주친 경찰의 제복과 권총이 아오마메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경찰들이 들고 다니는 권총이 리볼버에서 오토매틱으로 바뀐 것을 발견한 것. 이것은 아오마메가 1Q84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음을 암시하는 장치다.  


 

“달은 변함없이 과묵했다. 하지만 더 이상 고독하지는 않다.”
ㅡ 덴고가 고엔지에서 올려다본 밤하늘 풍경
 
《1Q84》배경, 고엔지


저녁 무렵에 찾아간 고엔지는 젊은 사람들이 많고 활기찬 분위기였다. 거리 위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대학생 혹은 20,30대 정도로 젊었고, 가게에 놓인 물건들도 그 정도 연령대의 손님들이 찾을만한 것들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대학생 때 이 근처 재즈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한다. 자신에게 익숙한 공간을 작품에 듬뿍 담은 것이다. 이곳에는 아오마메의 맨션이 있고, 덴고가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공원이 있다. 우린 공원 벤치에 앉아 한참을 기다렸다. 달이 나오기를. 1Q84의 세계에선 달이 두 개나 떠있으니까, 두 개까진 못 보더라도 하나 정도는 보고 돌아가야겠지. 여전히 묽은 푸른색이 맴돌던 하늘 아래에서 벤치에 앉은 후로 한참이 지났다. 주변은 이미 새까만 어둠이 내려앉은 상황. 달은 보이지 않았다. 맑은 날이었기 때문에 달이 구름에 숨어 있을 린 없다. 그렇다면 1Q84의 세계에서 달을 빼앗아간 것은 아닐까? 아 지금은 2018년이니 2Q18년이려나. 


 

“리틀 피플은 정말로 있어요.”
ㅡ 신주쿠에서 후카에리는 덴고에게 조용히 말한다. 


깜깜한 밤. 신주쿠에 도착한다. 세계에서 가장 북적인다고 하는 신주쿠역은 문장으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람이 많다. 그 많은 사람들 사이엔 암묵적인 흐름이 존재하기에 그 흐름을 벗어나는 일은 매우 까다롭다. 역류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다들 어디론가로 매우 바삐 걸어가고 있었다. 조금만 한눈을 팔아도 나침반이 되어주는 남편을 놓칠 수 있다. 하지만 화려한 이 거리는 한눈을 팔기에 좋은 것들을 듬뿍 안고 있다. 어떻게 갈 수 있었는지 신기하게도 기노쿠니야 신주쿠 본점에 도착을 했다. 하루키의 여러 작품 속 주인공들은 기노쿠니야를 즐겨 찾는다. 서점도 마트도 거의 기노쿠니야만 간다. 이제까지 기노쿠니야 서점과 마트가 같은 회사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전혀 관계없는 두 개 회사라고 한다. 어쨌든 《스푸트니크의 연인》의 주인공과 《댄스 댄스 댄스》의 주인공은 기노쿠니야에서 장을 보고, 《1Q84》의 덴고는 기노쿠니야 서점에서 책을 몇 권 산다. 정확히 이곳 기노쿠니야 신주쿠 본점에서. 기노쿠니야 신주쿠 본점은 서울의 교보문고 광화문점과 같은 곳이라 한 번 가면 일단 사고 싶은 책을 한 두 권은 족히 발견할 수 있다. 나도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다. 이번에도 몇 권을 골랐다. 특히 요리책을 눈여겨보았다. 하루키의 소설을 읽다 보면 뭐라도 좀 만들어 먹어겠다는 생각이 들곤 하니까. 배고픔 대비용이다. 덴고는 책을 사고 이곳 건너편에 있는 레스토랑 나카무라야에 가서 후카에리를 만나 화이트 와인과 샐러드, 시푸트 링귀네를 먹는다. 우린 생맥주에 카레우동을 먹기로 했기 때문에 그 일정은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 


“그 일을 깊이 생각하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내겐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 있다.”
ㅡ 아오마메는 시부야역 코인로커에 코트를 넣으며 생각했다. 


 

그러고 나서 기적적으로 확보한 시부야 코인로커에서 짐을 찾아 새벽 2시 비행기를 타러 공항으로 향했다. 아오마메는 자신의 아내를 지속적으로 폭행한 남성을 암살하기 위해 시부야역 코인로커에 짐을 넣어두고 시부야 도부 호텔로 향한다. 이 장면 때문에 “이왕이면 시부야역 코인로커에 짐을 맡길래”라고 하는 나와 “거기에 자리가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거야?”라고 말하는 남편은 한참을 냉랭하게 보냈다. 정말로 그 넓은 역에, 그 많은 코인로커 중 단 한 칸도 비어 있지 않은 듯했다. 30, 40분을 샅샅이 뒤져 겨우 발견한 딱 한 칸. 마침 동전까지 없어서 남편이 그 칸을 잡고 있고 나는 자판기로 뛰어가서 동전을 만들었다. 짐을 다 넣었을 땐 우린 이미 땀으로 뒤범벅되어 있었다.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우리가 썼을 그 코인로커에 아오마메의 코트가 들어갔다 나왔을지도 모를 일인데!



<1Q84>의 세계로 도쿄 여행을 떠나보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할레쿨라니의 피나콜라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