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댄스 댄스 댄스⟫ 배경여행 2. 마카하 가는 길
더할 나위 없이 쾌적한 드라이브였다. 우리는 카 라디오의 볼륨을 크게 틀고, 창문을 활짝 열어젖힌 채, 해안을 따라 뻗은 고속도로를 시속 120킬로미터의 속력으로 달렸다. 모든 곳에 빛과 바닷바람과 꽃 향기가 가득 차 있었다.
ー 무라카미 하루키, ⟪댄스 댄스 댄스⟫ 중에서
⟪댄스 댄스 댄스⟫ 배경여행 1편 : https://brunch.co.kr/@istandby4u2/115
유키의 엄마는 천재 사진작가로 무언가에 꽂히면 딸이 함께 있단 사실을 완벽히 잊어버린 채 어디론가로 떠나버리는 사람이다. 엄마 아메의 무신경함에 소녀 유키는 늘 상처를 받아왔다. 주인공 ‘나’는 삿포로 돌고래 호텔에서 유키를 처음 만나게 되는데, 그때 역시 유키는 아메가 훌쩍 카트만두로 떠나버려 홀로 남겨진 상태였다. 그러다가도 갑자기 자신에게 딸이 있단 사실이 떠올라 유키를 찾는 엄마. 유키와 주인공이 하와이에 가게 된 것도 아메가 갑자기 유키 생각이 났기 때문이었다.
엄마를 만나러 가는 유키와 주인공의 길을 따라가는 드라이브. 차들로 빼곡한 와이키키 시내에서는 ‘이곳이 종로와 무엇이 다른지’ 알 수 없었고, 조금씩 외곽을 향해 달려가자 ‘이곳은 강변북로가 아닌가’ 생각했다. 이러한 풍경 끝에 해변도로로 진입하니 이제야 하와이에 온 듯하다. 지금부터가 제대로 된 드라이브다. 왼편에 펼쳐진 에메랄드빛, 푸른 빛깔, 남색 바다 위엔 보기만 해도 탐스런 구름들이 하늘다운 파란 하늘에 두둥실 떠 있었다. 유키를 내팽겨둔 채 외팔이 시인과 함께 마카하 부근 시골집을 하나 얻어 살고 있는 유키의 엄마. ⟪댄스 댄스 댄스⟫를 읽으면서는 그녀를 감싸고 있는 풍경이 어떨지 쉽사리 상상되지 않았기에 무척이나 기대를 안고 가는 길이었다.
드라이브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왼쪽 차로가 차들로 꽉 막혀 있었다. 시계를 보니 오후 2시 반. 하교시간이다. 아이들을 데리러 간 부모들의 차들이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던 것이다. 누가 하와이에 살고 있고 누가 하와이에 잠시 머무는 사람들인가 도무지 알 수 없었던 와이키키 풍경에서 벗어나 이곳에 오니 조금은 생활의 향기가 느껴졌다. 바로 앞차가 비상등을 켜고 잠시 차를 세우기에 기다려 주었다. 커다란 차는 이미 아이들과 물건들로 가득 찬 상태. 한 아이가 운전석을 향해 소리를 친 후, 옆에 있던 친구는 막 열린 트렁크 문 안으로 몸을 잔뜩 웅크리며 들어갔다. 그러고서는 방금 전 소리를 지른 아이가 트렁크 문을 닫고 뒷좌석에 오른다. ( “엄마 00이 트렁크에 타고 가도 돼?”라고 물어본 것이었구나) 하루 이틀 해본 솜씨들이 아닌 듯 호흡이 척척 맞아서 차가 비상등을 켜고 잠시 멈춘 뒤 다시 출발하기까지 소요된 시간은 거의 10초 남짓. 하교하는 학생들과 그들을 데리러 온 부모들을 한참 동안 보고 있으니 하와이에 백인이 참 적구나 싶다. 혹은 이 마을의 특징일까. 실제로 위키피디아에 찾아보니 마카하는 오아후섬내 다른 지역보다 하와이 원주민들과 다른 태평양 섬에서 온 주민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이라고 한다. 개발이 많이 되어있지 않아 마카하 북쪽에는 마을도, 식당도, 주유소도 없다. 마을이 끝나가고 북쪽을 향해가자 오른편에 솟은 산들(마카하 밸리)이 더욱 선명해졌다. 이 산들은 이곳 오아후가 (다른 섬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화산섬임을 실감하게 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골짜기는 깊고, 토양은 척박해 보였다. 한편 왼쪽에 펼쳐진 바다 위 뿌려있는 다이아몬드 같은 햇살들은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는다.
좌우로 펼쳐진 환상적인 풍경 사이에 눈길을 끄는 장면들이 한동안 이어졌다. 지저분한 천막이나 폐차가 모여 있고 그 사이사이 테이블 하나에 의자들이 둥글게 모여 있다. 머리가 헝클어진 사람들이 드문드문 앉아 있기도 하다. 늘어진 줄에 티셔츠들이 걸려 있기도 하고, 찌그러진 냄비 같은 가재도구들도 널려있다. 노숙자들의 모여 사는 곳이었다. 지붕은 없지만 이토록 아름다운 바다를 앞에 두고 사는 사람들. 지상낙원이라 불리는 하와이의 진짜 얼굴이었다.
다시 ⟪댄스 댄스 댄스⟫ 이야기로 넘어와서. 아메와 함께 살고 있는 딕 노스는 주인공을 만나자마자 호놀룰루가 얼마나 번잡하고 시끄러운지 질색이라 이야기한다. 아메와 딕 노스가 마카하 부근에 자리를 잡은 이유는 단지 조용함 때문이었다. 유키와 엄마가 시간을 갖는 동안 딕 노스는 주인공에게 “주변에 근사한 해변이 있다”며 안내한다. 둘이 해변에 누워 차가운 맥주 여섯 병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해변. 우리는 관광지의 요란스러움이 없으며 볼품없는 나무들이 자라고 모래사장도 울퉁불퉁해서 하와이 분위기가 나지 않는 해변을 찾아보기로 했다. 마카하 부근에는 작은 해변이 몇 곳 있었는데, 모두가 한결같이 인적이 드물고 물빛은 근사했다. 마카하 비치 파크는 마을과 인접해 있어 소설의 묘사와 거리감이 있어 보였다. 물론 주변에 픽업트럭이 몇 대 주차되어 있고, 가족끼리 나온 사람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단 묘사와는 정확히 닮아 있다. 소설 속 해변을 찾아 돌아다니며 가장 마음에 든 해변은 요코하마 베이란 곳이었는데, 도로가 끝나는 지점에 펼쳐 있었다. 모래들이 부드럽고 깨끗하고, 바다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물론 딕 노스와 아메가 살고 있는 곳과는 다소 떨어져 있어서 이곳보단 와이아나 부근 비치가 더 이야기에 가까울지 모르겠다. 어찌 됐든 딕 노스는 해변에 앉아 아메의 사진에 대해 이런 말을 한다.
“그녀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이따금 두려워지는 때가 있어요. 자신의 존재가 위태로워지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토록 압도적이에요. 저 dissilient*라는 말을 알고 있어요?”
ー무라카미 하루키, ⟪댄스 댄스 댄스⟫ 중에서
나는 요코하마 베이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아메의 사진이 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했다. 너무나 아름다워 두려운 모습. 자신의 존재가 위태로워지는 느낌.
*여물어서 터지는, 탁 터지는 [벌어지는], 열개하는(봉선화의 씨 따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