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시각 JR기차에서는.
오타루 결혼식장까지 오신 길이 얼마나 고되었는지 식장에서 기다리던 우리는 잘 알지 못했습니다. 당시 긴박하고 초조했던 상황을 신랑의 선배가 자세히 글로 적어 보내주었습니다.
글을 읽으며 몇 번이나 울고 웃었는지 모릅니다.
나리타에서 신치토세까지는 1시간 10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벌써 7시 가까워진 시간에 마지막 남은 한국돈인 2천 원으로 감자칩을 사 먹었다. 원래 현찰을 잘 안 갖고 다니기는 하였다. 비행기 안에서 현찰로 음식을 사 먹는 상황이 되자 천 원 한 장이 아쉬웠다. 전날 지갑에 있던 만원을 쓴 게 너무 아쉬웠다. 비행기는 어느새 착륙을 시작하였다. 이번에는 정말 착륙을 할까. 폭설과 눈보라가 아직도 있지 않을까. 갖가지 걱정이 들었다. 비행기 안의 모두가 그러한 걱정을 하였다. 부디 안전히 착륙하기를.
다행히 큰 시간 소요 없이 비행기는 무난히 착륙을 하였다. 한참을 활주로를 달려 비로소 비행기가 멈췄다. 하루 종일 그토록 오고 싶었던 이곳에 우여곡절에 착륙을 하니 정말 신기했다. 난 분명 삿포로행 비행기표를 샀고 삿포로에 향하는 비행기를 탔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삿포로에 갈 수 있다는 생각을 비웠었다. 이렇게 무사히 삿포로에 착륙을 하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비행기를 나와 공항으로 통로를 이동하면서 얼핏 바깥을 보니 그야말로 눈의 나라였다. 아직도 채 치우지 못한, 아니 아직도 쌓이고 있는 눈이 곳곳을 하얗게 뒤덮고 있었다. 짐을 찾는 곳에 오니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일행과 이야기를 하였다. 신부의 동생과 친구들이 탄 항공편은 우리보다 나리타에서 늦게 출발하여 아직 도착하지 않은 듯하였다.
오타루로 가는 JR을 타기 위해 이동하면서 그의 아버지는 대단히 마음이 급해 보였다. 앞에 느긋하게 가는 관광객들을 제치고 빠르게 앞으로 걸어갔다. 유달리 공항의 통로가 길게 느껴졌다. 그러나 무심하게도 긴 통로 끝에 마주한 것은 폭설로 인해 모두가 JR만을 타기 위해 끝이 안 보이도록 길게 늘어선 줄이었다. 비행기 어렵게 타고 이렇게 내렸는데 아직도 오타루까지 갈 길이 멀겠다는 생각에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일단 JR 티켓을 사야만 하였다. 자판기 앞에 서니 삿포로행과 오타루행 티켓이 팔리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만 엔 지폐를 넣으며 가족과 나, 그리고 Y의 티켓을 사주셨다. 긴 줄의 맨 뒤로 가니 앞이 보이지 않았다. 언제쯤 열차를 탈 수 있을까. 그는 오타루 역 앞의 이자카야를 빌렸다고 한다. 피로연이라도 너무 늦지 않게 가야 할 텐데.
플랫폼으로 서니 어느 게 오타루로 가는 것인지 분간이 쉽지 않았다. 삿포로행만 있고, 또한 어느 게 급행 인지도 알 수 없었다. 마음이 급하니 모든 게 당황스러웠다. 각자 짧은 지식을 서로 이야기하며 간신히 삿포로행 일반 열차 자유석에 탔다. 구글 맵에는 나오는 급행이 왜 안 보이는 건지도 모르겠고 모든 게 생각한 것과 많이 달랐다. 열차는 모든 역에 하나하나 서면서 천천히 갔다. 폭설로 JR 또한 지연되면서 평소보다 많이 느리게 간 듯하였다. Y와 같이 의자에 앉았는데, 엉덩이가 따뜻해지는 게 이내 잠이 몰려올 것 같았다. 배가 고파서 초콜릿을 계속 먹었다. 열차의 창 밖에 하얀 것이 휘몰아치는 게 설마 눈보라일까, 먼지 때문에 창이 뿌연 것이 아닐까 하였는데, 시간을 두고 보니 엄청난 눈보라가 몰아치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본 적도 없는 눈보라였다. 그의 막냇동생이 메신저를 통해 "형, 엄마가 형 사진 보고 싶대" 하면서 결혼식 사진을 보내달라고 하자 그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의 사진을 보내줬다. 아마도 색시 모습이 이뻐 죽겠었나 보다. 열차는 어느새 삿포로에 도착하였다. 앉아있으면 그대로 오타루로 가는 열차편도 있다고 구글에서 보았는데, 모두들 내리니 따라 내렸다. 인터넷에서 본 대로 계획대로 되는 게 하나 없었다. 삿포로 역 플랫폼에 내리니 철도가 온통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다가오는 열차는 얼마나 험한 눈보라를 헤치고 달려왔는지 기관차가 흡사 사람 얼굴이 눈으로 뒤덮인 듯하였다. 오타루 역 기차가 언제 있냐고 더듬더듬 물었는데 역무원이 마치 이 차가 막차 이기라도 한 듯이 이야기하였다. 이미 사람으로 가득 찬 열차였는데 정신없이 끼어 탔다. 공항에서 삿포로에 올 때와 달리 이번 열차는 사람으로 가득 차서 서서 가야 하였다. 문가에 간신히 서 있었는데 문이 한번 열릴 때마다 시베리아 벌판 같은 바람이 쌩하고 들어왔다. 이번에도 모든 역에 서는 열차였다. 오타루로 가는 길은 흡사 강남역에서 2호선을 타고 신촌역까지 가는 길 같았다. 노선표도 초록색이고 참 길고 지루한 게 그 시절이 떠올랐다. 그나마 Y와 이야기하면서 가니 시간이 덜 고통스럽게 흐른 듯하였다.
일행들의 모습을 보면서 오늘 하루를 돌이켜보니 참 기묘한 조합의 일행이 서로를 의지하면서 여기까지 온 것 같았다. 나는 만약 그의 가족과 함께 이동하는 것이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왔을까. Y는 나를 만나지 않았다면 이처럼 험난하고 복잡한 길을 알아서 잘 찾아갔을까. 그의 가족은 아들 친구들인 우리와 가는 것이 아니었다면 결혼식에 제시간에 가지 못하게 된 상황에서 정신이 무너지지 않고 이렇게 끈기 있게 올 수 있었을까. 참 다들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며 누구 하나도 빠져서는 안 되는 조합을 만들어 왔다. 덕분에 긴 시간 여정을 그나마 덜 고통스럽게 이동하였다. 삿포로에서 오타루로 가는 길에 어느 순간 그의 아버지께서 비행기에서 내린지도 벌써 3시간이 다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10시를 넘었었다. 비행기 시간만 몇 시간을 소요한 줄 알았는데, 실은 비행기에서 내린 뒤에도 굉장히 긴 시간을 보낸 것이었다. 그러나, 비행기에서 보낸 시간과 달리 열차에서의 시간은 그처럼 고통스럽게 시간의 경과를 느끼지 못하였다. 불확실성이 해소되었고, 이제는 확실히 갈 수는 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아버지는 비행기에서 내리고 다 온 줄로만 생각했는데 아직도 끝이 나지를 않는다는 생각이 들면서 열차에서 급격히 컨디션이 떨어지신 듯하였다. 급기야는 구토 증세가 있다며 매 정거장에서 열차 문이 열릴 때마다 열차 밖으로 나가서 찬 바람을 마시고 다시 열차에 타기를 반복하였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열차는 오타루에 다가갔다. 오후 10시 50분이 되어 오타루 역에 도착하였다. 오전 10시 10분 비행기를 놓친 이후로 12시간이 넘게 고생을 한 끝에 도착한 것이었다.
마침내 오타루 역에 내리니 너무 반가웠다. 눈으로 뒤덮인 기차 앞에서 기념 촬영도 하였다. 플랫폼을 나가니 역사에 그와 장인이 나와 있었다. 반갑게 우리 일행을 맞아주셨다. 항상 보던 같은 국적의 친구를 이렇게 이국에서 만나니 색다른 느낌이었다. 그는 무척 들뜬 듯하였다. 역사를 나서니 눈이 매섭게 몰아치고 있었다. 온 세상이 하얗고 인적이 드물었다. 역사 앞에 넓은 도로의 사거리가 있었지만 차도 없고 사람도 없었다. 사거리 앞에 나와 Y가 묵을 호텔이 있었고 길 건너에 피로연 장소 이자카야가 있었다. 그는 아버지의 짐을 대신 들으면서 아버지에게 바닥이 매우 미끄러우니 조심하셔야 한다는 말을 반복하였다. 눈의 나라가 너무 신기하여서 나는 어린아이처럼 신이 난 나머지 연신 카메라를 찍어댔다. 눈으로 뒤덮인 횡단보도를 건너 피로연 장소 이자카야에 도착했다. 마침내 안전한, 아늑한 공간으로 들어간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