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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스 Jan 23. 2020

아이 없는 여자는 이해받고 싶다.

남자나 여자나 누구든 이해받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 나를 먼저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그런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관계는 어그러지고 깨어진다. 이해받고 싶은 욕구는 욕망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강력하다. 이해받고자 애쓰고 노력하고, 이해받지 못해 좌절하고 낙담하기도 한다. 나에게 가장 강력한 욕망도 이해받고자 하는 욕망이다. 


특별한 배려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함께 웃을 수 없는 대화의 소재가 너무나 분명한 내 상황을 조금만 생각해 주셨으면 할 뿐이다. 예를 들면 임신이나 출산 둘째 임신 불임 같은 단어는 대화의 소재로 내 앞에서 언급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임신, 출산 같은 단어가 나와 대화하는 사람의 입에서 나올 때, 듣는 내게는 수류탄이 날아오는 것 같다.


명절에 시댁에 갔다가 들은 이야기다. 어머님 친구분의 며느리가 임신을 하셨 단다. 수류탄이 날아온다. 작은 내상을 입는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너무도 생각지도 못했는데 덜컥 아이가 찾아왔다고 한다. 두 번째 수류탄을 맞는다. ‘생각지도 못한 갑작스러운’이란 의미의 단어로 아이의 태명을 지었다고 한다. 태명이 너무 재밌고 엉뚱하다며 어머니는 두 번 세 번 말씀하시며 호탕하게 웃으셨다. 남편과 나는 웃지 못했다. 지뢰를 밟은 것 같다.

친정에서도 상황은 별로 다르지 않다. 친정 엄마는 일가친척들의 결혼과 임신 출산에 대한 소식을 늘 내게 업데이트해 주셨다. 너무나 순조로운 임신과 출산 돌잔치 둘째 임신 같은 소식들이 내게 들려왔다. 종종 그 아이들의 사진이나 걸음마 동영상이 내 카톡에 들어올 때도 있었다. 아군인 줄 알았는데 적군이다. 어차피 지뢰밭을 피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아이가 없는 내 상황이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토록 긴 시간을 이렇게 보냈으니 핫이슈는 아닌 것이 분명하다. 나도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고, 여전히 내 마음이 가끔은 심하게 흔들리기도 한다는 걸 어른들 앞에서 내색하기도 어렵다. 임신하고 건강한 아이를 출산하는 일은 정말로 경사스럽고 축하받을 만한 일이다. 그런데 축하는 할 수 있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웃는 것은 아직 어렵다. 아무렇지도 않게 축하를 해줄 수 있기는 하지만, 그러려면 많은 에너지를 써야만 한다.


나는 좀 예민하고 성격이 모난 편이다. 게다가 그런 감정들을 넉넉히 버터 낼 체력도 많이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이것저것 삼키지 못하는 말들이 여전히 있다. 앞으로 나이가 더 들고 혹여나 이 모난 마음이 약간은 깎여 나가는 기적이 일어난 다면 모를까 쉽게 달라질 것 같지 않다. 어떤 말을 들어도 포용할 수 있는 성숙한 사람이 되기를 꿈꾸지만, 변화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내 힘으로 안된다면, 그 힘을 빌려올 수는 없을까. 어떤 말들이 날아와도 내 멘탈을 지켜주는 그런 갑옷 같은 건 없을까. 

 

가족들만이라도 이런 내 마음을 이해해줬으면 좋겠는데 아마 어려울 것 같다. 이해받고 싶어 하는 내 마음이 좀 포기해줬으면 좋겠는데 그 역시도 잘 안된다. ‘이해받는다는 것’이 지나치고 헛된 기대라는 것을 알지만, 그 기대를 내려놓지 못한다. 담담해지고 싶은데 아직도 내 마음은 가끔 전쟁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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