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이스 Jan 15. 2020

아이 없는 부부의 집은 조용하다.

아이가 없다 보니 집엔 늘 두 사람뿐이다. 남편과 나.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말할 사람이 없어서 하루 종일 말없이 있는 날도 흔하다. 전화보다는 문자로 대화를 하기 때문에 소리를 내지 않고도 살 수 있다. 가끔 마주치는 이웃들은 우리 집이 너무 조용하다며 집에 있는 게 맞냐고 물을 정도다. 그런 조용하던 집에 소리가 나기 시작하는 건 남편이 퇴근한 후부터다. 남편이 집에 와야 우리 집에는 사람 소리가 난다. 게다가 남편은 투머치 토커다. 늘 할 말을 입안 가득 품고 사는 사람이다. 

가끔 투머치 토커와 사는 이 상황을 피하고 싶은 순간도 있다. 나는 조용함을 좋아한다. 집에는 우리 두 사람뿐이다. 피할 방법이 없다. 나는 투머치 리스너가 된다. 나는 원래 말하는 것보다는 듣는 게 더 편하고 좋은 사람이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다 보면 상대방이 “내 얘기만 한 것 같아요.”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런 내가 말 많은 남자와 살다 보니 ‘듣는 능력’은 더욱더 향상되었다. 


보통 부부는 아이들 이야기가 주된 대화의 소재라고 들었다. 아이들에 대한 이야깃거리는 무척 많을 것 같다. 아이들은 매일매일이 다르니까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성장하는 존재니까 아이들을 향해 쏟아야 하는 관심도 매일 달라질 것 같다. 큰 아이들을 키우는 이웃들을 보면 때론 아이들과 치열한 전투도 일어난다. 때론 아이들과 함께 즐거워하는 소리도 들린다. 아이를 키우는 집에서는 참 여러 가지 소리가 난다. 아이들이 뛰는 소리, 노래 부르는 소리, 피아노 치는 소리 다양한 소리가 난다. 또 아이들은 어른들의 주의와 관심을 끊임없이 요구한다. 어른들은 쉼 없이 아이를 봐야 한다. 남편 친구들의 가족들과 다 같이 모였던 날이 있었다. 그때는 미취학 어린이들이 많았다. 어른들의 대화는 중간중간 중단됐다. 아이들을 화장실에 데려가고 물을 주고, 아이들의 질문에 대답하느라 어른들은 대화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아마 집에서도 비슷하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아이가 없는 우리 집은 조용하다. 특별히 다채로운 소리가 없다. 밥 하는 소리,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 간간이 듣는 음악소리들 뿐이다. 다 자란 어른 두 사람에게 매일매일은 비슷하다. 각자 자기 일을 해 나가고 서로에게 쏟아야 하는 관심도 일정하다. 큰 변화가 없다. 필요한 대화는 늘 충분히 한다. 우리의 대화를 중단시킬 존재가 없다. 가끔은 투머치 토커와의 대화를 중단시켜줄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 싶지만, 다른 길이 없다. 늘 충분히 대화하고 자제가 필요할 정도로 깊이 대화에 빠져들기도 한다. 덕분에 나도 말하는 일이 좀 더 편안 해졌다.  

아이 없는 부부의 대화거리는 각자의 관심사다. 남편이 좋아하는 자동차 관련 이야기, 새로 나온 각종 IT 기기들에 관한 정보들 내게는 전혀 감흥이 일지 않는 소재들이다. 그래도 듣는다. 남편은 내게 유일하게 말을 거는 존재다. 그래서 들어준다. 사람 소리가 집안에 스며든다. 썰렁했던 집에 온기가 도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투머치 토커는 가끔 너무 많이 말하기도 한다. 그렇게 들어주다가 지치기도 한다. 그래도 사람이 내는 소리가 반갑다. 


덕분에 나도 남편의 관심사에 한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자동차나 각종 IT기기에 대해서 대략적으로는 알게 되었다. 남편을 통해 내가 모르는 세계에 대해 알게 된다. 남편 역시 내 관심사를 들어준다. 들어줄 수밖에 없다. 집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유일한 존재가 된다.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상대방의 관심사에 대한 지식이 쌓인다. 나는 주로 읽고 있는 책이나 칼럼 이야기를 많이 한다. 덕분에 남편도 내가 주로 읽는 작가들은 알고 있고, 좋은 글은 함께 읽기도 한다.

그나마 서로가 각자의 할 일에 집중할 때면, 우리 집은 다시 조용해진다. 그렇게 다시 우리 집은 소리 없는 곳이 된다. 특별히 집안에 생기를 부여할 만한 일들은 일어나지 않는다. 일상에 큰 변화 없이 또 하루가 끝난다. 밤에는 집안에 소리를 내고 싶어 음악을 틀거나 TV를 켜 놓기도 한다. TV가 꺼지면 우리집은 다시 조용해진다. 그렇게 우리는 또 하루를 마무리한다. 아이 없는 나는 그렇게 조용한 밤을 맞으며 내일을 준비한다. 


이전 13화 아이 없는 여자가 생각하는 '입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