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이 없는 부부는 관계가 소원해지거나 어려워진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다. ‘아이가 부부 사이의 끈이 되어 준다’ 던 어른들의 이야기, 부부 사이에 아이 하나 없이 괜찮겠냐는 주변 사람들의 반응 속에서, 나는 아이 없는 가정에 대한 편견을 갖게 되었다. 아이를 키우며 가정을 꾸려오셨던 어머니들, 젊은 엄마들 모두 내 삶에 우려를 표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정말 아이가 없어서 부부 사이에 큰 문제가 생기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속에 살았다. 아이 없는 가정이 겪는 갈등과 문제들, 그 문제들이 이끌어내는 안타까운 결말이 내 머릿속에는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실제보다 과장되고 왜곡된 불안을 자주 느꼈다. 모두들 하나같이 ‘아이가 없는 부부 생활은 어렵다’ 고 말하고 있었다.
우리 부부에게는 별 다른 문제가 없었음에도 나는 아이가 없다는 그 한 가지 사실 때문에 결혼 생활에 위기를 느꼈다. 남편이 든든히 버텨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여전히 불안과 자책으로 방황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오랜 시간 많은 고비들을 넘기며, 나는 내가 가진 편견을 깨야 했다. 앞으로의 삶에 대해서 고민하며 우리 부부가 내린 결론은 그랬다. ‘아이가 있든 없든 행복하게 지내자.’ 우리 부부는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아이가 생겨도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고, 서로에게 더 잘해주고, 더 잘 지내보자는 쪽으로 의기투합했다.
아이가 없는 삶에서, 우리 부부는 서로에게 늘 언제나 1순위다. 내가 잘해줄 수 있는 사람은 남편뿐이고, 남편 역시 신경 쓸 사람은 나뿐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1순위다. 그러다 보니, 몸이나 마음이 힘들 때 우리는 전적으로 서로를 돌본다. 의무이기도 하지만, 같은 편은 나뿐인데 내가 안 챙기면 누가 챙겨줄까 하는 안쓰러운 마음이 있다.
아이가 없으니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에너지가 좀 더 남아있다. 덕분에 서로에게 말을 좀 더 건네고, 때로는 좀 더 긴 대화도 하고 그래서 서로의 기분이나 생각을 더 잘 알게 된다. 아이를 키우는 집에서는, 성인인 배우자보다는 어른의 손길이 압도적으로 필요한 아이가 당연히 우선순위가 될 것 같다. 자녀들에게 우선순위를 빼앗긴 아빠들의 섭섭함, 딸바보 남편에게 소외감을 느끼는 엄마들의 목소리도 들린다. 물론 우리도 관계 속에서 이런저런 어려움들을 겪으며 살지만, 서로가 1순위에서 밀려났다는 생각은 할 필요가 없다.
아이가 없다 보니, 서로의 마음속에 꽁꽁 숨어있는 어린아이가 나타나도 받아줄 여유가 있다. 내 안에는 제때 표현하는 법을 몰라서 화를 달고 사는 아이, 누리지 못했다고 투덜거리는 아이, 남보다 못하다는 열등 감속에 사는 아이 등 여러 얼굴의 아이가 있다. 가끔 내 안에서 이런 아이들이 출현해도 남편은 외면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받아준다. 떼쓰던 아이는 자기 말에 귀 기울여 주는 어른을 만나면 잠잠해진다. 나는 남편이 힘들어 보이면 남편의 말과 기분을 받아줄 준비를 한다. 힘든 일이 있을 때면 남편의 한숨소리가 달라진다. 그런 순간이 되면, 전부 포용하지는 못해도 남편의 마음을 헤아려보려 애쓴다.
그렇게 서로의 약함을 이해하고 받아줄 수 있는 에너지와 그런 상황에서 방해받지 않고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사실이 참 다행스럽다. 아이가 없는 부부의 삶도 딱히 다르지 않다. 때론 싸우고, 때론 잘 지내고, 서로에게 좀 더 책임감을 느끼고 산다. 좋은 날도, 안 좋은 날도 있지만, 아이가 없다는 사실이 부부 관계에 그렇게 악영향을 준다는 것은 느끼지 못했다. 아이 없는 부부는, 내가 생각했던 삶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괜찮은 삶을 살 수 있는 요소가 많아 보인다. 이런저런 일들로 정신없이 지내다 보면, 이런 내 삶을 망각할 때도 많다. 그러다가, TV에서 나와 동갑인 사람에게 대학생 딸이 있다는 이야기를 볼 때 문득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이 밀려오기도 한다.
부부의 삶을 연결해주는 것은 아이라는 존재 외에도 있다. 우리 부부는 나름의 방법을 터득해 나가고 있다.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고, 가사분담으로 티격태격하며 여느 부부처럼 산다. 아이 없는 삶과 아이가 있는 삶이 같을 수는 없지만, 아이 없는 삶에도 그 나름대로의 행복과 기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