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계발서에 관한 사색을 마무리 지어 준 신입은 무엇이 되었을까
책장을 살펴보니 읽을만한 책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일과 관련된 책이 많은 데다 2019년, 당시의 질문으로 구입했던 책에는 흥미가 없어졌다. 산책하고 되돌아오는 길에 서점을 한번 들러봐야겠다. 책을 읽지 못하게 되면서 서점도 가지 않게 되었는데 정말 오랜만에 서점 나들이를 가는 거라 괜히 설렌다.
서점이란 놀이터에 있는 그네 같은 존재로 심심하면 가서 앉는 그런 공간이다. 서점에 들어서는 순간의 느낌은 마치 우주에 떠 있는 별 들과 함께 둥둥 떠 있는 거 같다. 서점에 수많은 책이 꽂혀 있고 그 수많은 책에는 지은이가 있다. 그들은 별 같았다.
그 수많은 별에 말을 걸어 보는 그런 행위는 결국에 기억을 찾아가는 것만 같아서 멈출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그렇게 하나둘 연결점을 찾아 한 권 두 권 나에게로 올 때 우주로 번져가는 영혼을 마주했다.
그런 공간에 다시 발을 디딜 수 있게 되어 많이 들뜨고 두근거렸다.
서점을 거닐고 있으니, 기분이 새롭다. 함께 일하던 사수의 책도 한번 들춰보고 이 구역 저 구역 틈틈이 살펴보며 구경 또 구경하고 있자니 어느새 별로 흥미 없는 구역에 서 있었다. 요즘의 자기 계발서를 살펴보면서 이게 다 무슨 소용일까 싶다. 자기 계발서를 읽는 시간에 차라리 고전이나 인문학, 주역, 명리학, 물리학 그도 아니면 차라리 소설을 읽는 게 훨씬 도움이 될 텐데 아직도 자기 계발서는 핫하다.
소장하고 싶을 만큼 심장 두근거리는 저자의 책이 자기 계발서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저자의 욕망이나 출판사의 탐욕이 우주의 한 공간을 차지하는 별이 되기에는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이란 걸 깨달았는데 그 깨달음이 있었던 지난 일이 떠올랐다.
때는 한 다리가 부러져 절뚝거리면서도 여전히 잘나가는 본부장으로, 그날도 내 통장에는 많은 돈이 한 번에 들어오던 그런 보잘것없던 하루 중, 일과를 마무리하고 빈 사무실에 홀로 앉아 있을 때였다.
"본부장님처럼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요?"
모두가 퇴근한 줄 알았는데 신입이 아직 퇴근을 안 한 모양이다. 평소 다이렉트로 다가와 이런 질문을 하는 팀원은 없는데 그 용감함에 '꺼져'를 시전 하지 않고 신입을 응시하다 대답했다.
"나처럼은 될 수 없어"
이 말에 어떤 대답이 돌아오는지에 따라 대화가 길어질지 짧아질지 알 수 있다. 빈 사무실의 아늑함을 방해받았기에 대화가 짧아지기를 바랐지만, 신입은 대답했다.
"아, 질문을 정정할게요. 본부장님처럼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해요?"
대화가 길어질 것 같지만 짧게 둘러쳐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하루 일과는 오후 10시에 마무리되었지만, 혼자만의 시간과 독서를 해야 하기에 아직 개인적인 일과는 끝나지 않음이다. 해서 자기 계발서 몇 권을 던져주고 서둘러 도망가야겠다 생각했지만, 신입의 눈은 맑았고 그 눈이 흐려지길 원치 않았다.
사무실의 구석진 공간에 가 앉으며 신입을 향해 말했다.
"자, 양반다리 하듯이 이렇게 앉아 봐" 신입은 시키는 대로 맞은편에 앉았다.
적막한 사무실 한편에 마주 앉아 천천히 내가 말했다.
"돈도 많이 벌고 성공하는 방법에 두 가지가 있다고 치자. 첫 번째는 공(功)을 들여야 하는 데 그 공(功)에 들이는 시간을 예측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결과물을 얻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장담할 수 없어. 그렇지만 성공하면 큰 부를 이루고 선한 영향력을 타인에게 줄 수 있을 만큼 힘이 생겨. 두 번째는 엄청 빠르게 부를 얻는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인데 간단해. 영혼을 갉아먹고 팔면 돼. 그리고 몰락은 예정되어 있지. 어느 쪽을 선택할래? 참고로 나는 후자야"
맑은 눈이 움찔했는데 그다음 말을 이어가고 싶지 않아졌다. 전자든 후자든 딱히 이야기하고 싶은 분야가 아니다. 애초에 자기 계발서나 던져 줄 것을 왜 이러고 있는지 책망했다. 그렇지만 마음 한편에는 신입이 전자라 말하길 원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내 예상과 다르게 맑은 눈 신입은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다 대답했다.
"생각해 보고 대답해도 될까요?"
그래, 나중에라도 자기 계발서를 던져줘야겠다 생각하며 다음을 기약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신입이 또 질문했다.
"그런데 왜 바닥에 앉아서 이야기하신 거예요?"
이런 건 알아서 생각하고 말면 되지 왜 물을까 싶지만 다정함과는 거리가 먼 내가 배운 친절함으로 대답했다.
"눈을 동등하게 맞추고 영혼과 마주하려 했지, 굳이 할 만큼 가치가 있단다."
그저 그런, 세상 사람들이 좋아할 법한, 통장에 돈 꽂힘이 아주 크던 그런 날에, 신입이 또 모두가 퇴근한 늦은 밤에 내 자리로 와서 말했다.
"저번에 말씀하셨던 방법 중에 전자를 선택하고 싶어요."
아, 골치 아파졌다. 당연히 후자를 선택하겠노라 당당히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또 빈 사무실 아무 곳 한편에 마주 앉아 말했다.
"굵은 줄기만 이야기해 줄게. 다음은 네가 알아 가는 거야. 가장 기본은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거야. 그리고 책을 읽어. 아무거나 막 읽지 말고 선별해서 읽도록 해. 자기 계발서는 모든 책을 다 읽고 정말 읽을 게 없다 할 때나 읽어. 악연에서도 배움은 있는 것처럼 자기 계발서에도 이러면 안 되는구나 하는 정도의 배움은 있을 거야. 또 운동해. 간단한 산책과 전문성을 갖출 수 있는 취미적인 운동 두 가지를 하는 거야. 늦은 밤 돌아다니지 말고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자. 세상 모든 만물을 분별하고 구분해서 좋은 것만 취해 자신에 주는 거야. 그리고 뇌를 마음에 접촉해. 마음은 누구에게나 그저 존재하기 때문에 뇌 관리가 중요해. 제2의 뇌는 장인데 장 관리 또한 해야 해. 그래서 배출을 잘해야 하는 거야. 근데 음, 여기선 이것들을 할 수 없으니 이만 퇴사하렴."
퇴사라는 말에 신입의 눈은 왕밤만 해졌고 맑았던 눈이 흔들렸다. 충분하지 않은 이 말에 신입이 무엇을 생각할까 싶어서, 혹은 잘 못 된 길로 생각이 갈까 싶어 덧붙여 주었다.
"자, 따라 해 봐. 손을 양손으로 벌렸다 가슴 앞으로 모았다. 천천히 이렇게 해봐" 신입이 따라 했다.
"에너지가 모아져 조그마한 공이 만들어지면 팔의 방향을 위아래 옆 대각선으로 옮겨가며 기를 모아도 돼"
신입이 따라 하면서 기를 느꼈는지 눈이 더 왕밤만 해졌기에 또다시 정보를 나누었다.
"집중해서 기(氣)를 느껴봐. 그리고 온 우주에 떠 있는 좋은 기운을 모아 네가 가져. 그럼 흩어지지 않을 부와 성공도 따라오게 되어 있어. 그럼 또, 사람들도 따르게 될 거란다."
신입의 눈을 보고 있자니 한마디 한마디 덧붙임을 해주고 싶었다. 이 어린 친구가 지구를 예쁘게 만들어 가는 데 한몫해 주길 바라는 소망을 담아서.
"자, 이런 말 많이 들어 봤을 거야. 몸과 마음과 영혼 또는 의식, 잠재의식, 초 의식 아니면 이드와 에고와 슈퍼에고 그리고 에너지, 물질, 반물질이라든지 종교에서는 성부, 성자, 성신,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 이런 삼위일체의 표현은 만물이 움직이는 방식을 말하는 건데 너 또한 마찬가지고 네가 삼위일체가 되었을 때 공간의 여기와 저기 그리고 빈 곳에서 자유로울 수 있지. 음, 특히나 삼위일체 중에 인간이 제일 많이 하는 생각과 말 그리고 행동에 신중할 필요가 있어. 참고로 나의 강력한 삼중은 독서, 산책, 음악이야."
나눠 준 보람 있게 신입이 물었다.
"그런데 본부장님은 왜 후자예요?"
손에 모인 탱탱볼 같은 에너지 공을 통통 튀기며 대답해야 할까 고민했지만, 영혼을 마주했으니 정직하기로.
"난 부와 성공을 선택한 적이 없어. 그래서 후자야"
서점을 둘러보는데 자기 계발서 중 눈길이 가는 작가를 마주했다.
베스트셀러가 된 자신의 책을 바라보면서 이 책에 열광하는 작금의 세태에 작가는 남몰래 눈물 흘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가짜가 판치는 세상 속에서 진짜는 가짜인 척 많이 하기에.
가짜인 척이 진짜처럼 보이는 세상이지만. 가짜인 척이 맞는다면 진짜처럼 보여서 헛헛할 마음이 빛으로 채워지길 소원했다. 하고 싶지 않았을 '가짜인 척'이 '진짜'로 보이는 멋진 마술은 오로지 그 작가의 희생에 욕망 한 스푼 정도 들어가지 않았을까 싶기에. 그리고 그 작가의 희생으로 세상은 한층 맑아졌을지도 모르니.
집으로 되돌아와 일과 관련된 책을 정리할까 싶어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그리고 책을 분류하면서 그 신입은 뭐 하고 살까 떠올렸으나 큰 부를 쌓고 있다는 그 이후로 알 길은 없다. 그렇지만 퇴사를 선택한 그 용기라면 분명 잘살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게다가 퇴사를 준비하면서 컨설팅을 몇 차례 더 진행해 주었는데 흡수력이 좋아 내가 아니었어도 잘 될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또한 평정심이 좋아 큰 부를 이뤄도 한순간에 잃지 않고 유지하고 있을 것이다. 돈은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는 사람을 좋아하니까. 그러니 모든 일에 크게 기뻐하지 말고 크게 슬퍼하지 말자. 모든 일이 그저 그리되었을 뿐이다. 나의 암도 마찬가지다.
신입과 원하는 삶을 이뤄나가는 방법에 대해 에너지를 나누며 나 또한 자기 계발서에 대한 사색이 명확하게 마침표를 찍었기에 신입을 진심으로 마주한 행위에 선물을 받은 셈이다. 방법 같은 것은 없으며 우리는 자연의 일부로 그저 꽃이 피었다 질 수 있는 땅과 햇볕과 씨앗만이 주어질 뿐이란 걸 신입과 난 그날에 동의했다.
맞다, 자기 계발서에 손을 계략과 함께 덧대던 그때, 그래 그때부터 글자만을 읽기 시작한 거다. 독서가 멈추던 시점은 육체의 병듦이 아니라 혼(魂)이 멈추던 시점이다. 그 시작점이 어디서부터, 무엇으로 비롯되었는지 기억해야겠다. 찾고 있는 존재는 그곳에 잠들어 있으리라.
그리고 이런저런 생각을 내려놓고 책 앞에 앉아 에너지 공을 만들어 보았으나 아쉽게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앞으로 탱탱볼처럼 탱탱한 에너지 공(功)을 크게, 아주 크게 만들어 볼까 한다.
'일단 독서를 한번 해보겠습니다'는 '일단 산책을 한번 해보겠습니다' 의 2편입니다.
이어지는 글이니 혹시라도 산책 시리즈, 1편을 읽지 못하셨다면 먼저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iteuljaesu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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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내해 드립니다. 연재하는 동안 독자분들께 안내 사항이 있을 때를 대비하여 인스타그램을 개설하였습니다. 브런치 스토리의 글 목록이 아닌 인스타를 통해 안내해 드리는 것에 관한 설명도 있으니 한번 참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또한 무더위에 태풍 소식도 있으니, 안전에 유의하시고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있을재수 | 브런치스토리 작가(@iteuljaesu) • Instagram 사진 및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