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있을재수 Aug 01. 2023

일단 독서를 한번 해보겠습니다.

함께 하실래요?


2019년 아픔의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아픔을 오롯이 느끼고 있던 그때, 책이 내 손을 떠났다.



책을 읽는 것은 생에 가장 중요하고 즐거운, 아니 그 이상이었고 어쩌면 전부였을지도 모른다. 독서는 나의 낙(樂) 중 하나다. 책은 평온이었고 유일한 벗이었기에 시간을 나노 단위로 쪼개 생활하며 2~3시간밖에 잠을 못 자던 시절에도 책을 손에 놓지 않았다. 아득해진 세월 속, 항상 책을 읽었고 독서를 통해 숨을 쉬었다. 맞다. 독서는 내 숨이었다. 숨 같은 책을 읽지 못하면서 기(氣)가 막혔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기가 막혔기에 책을 읽을 수 없게 된 것인가. 숨을 쉴 때 나오는 기운을 기(氣)라 하니 무엇이 먼저든 의미 없다.


책이 내 손을 떠나던 그때를 곰곰이 떠올려 보면 읽히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한 글자 한 글자 알알이 부서져 앞장으로, 다시 앞장으로 되돌아가 다시를 반복하면서도 이상하다 생각지 못했다. 다만 '많이 피곤한가' '집중이 안 되네' 정도로 정리하면서 책을 손에 놓지 못하고 부서진 한 글자 한 글자를 조합해 베갯잇 밑으로 넣으면서도 처음 접하는 상황에 무감각해지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책은 없어서는 안 될 별 같은 존재라 잃는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책은 어지러움과 울렁거림, 구토와 함께 한 글자도 아닌 모음과 자음으로 조각 나 머리에 톡톡 부딪히며 내 손을 떠났다. 





책을 읽지 못한 지 8개월 정도 되었을 때 병명을 알게 되고 병원에 입원하면서도 짐가방에 책을 넣었다. 수술하면 책을 제일 먼저 읽어볼 참이다. 분명 읽힐 것이다. 



수술 2일 차, 무엇인가 잘못되었다. 책이 읽히지 않는다. 회복 기간이라 그렇지, 반드시 시간이 지나면 읽을 수 있을 거다. 아직 피 주머니도 안 땠는데 너무 성급했다. 



수술 1개월 차, 한 글자도 읽히지 않는다. 무엇인가 단단히 잘못되었다. 한 글자 한 문장도 읽히지 않는다니 이상하다. 억지로 읽을라치면 멀미하듯 어지럽고 울렁거려 구토가 난다. 머리도 깨질 듯 아프다. 


                     

수술 6개월 차, 집에 되돌아 침대에 누워 책도 음악도 없는 공간에 누웠다. 그렇게 시간도 없고 별도 없는 적막 속으로 들어갔다. 철저히 혼자인 고독 안에서 본인인지 때론 타인인지 혹은 신인지 모를 대상과 마주하는 시간도 더러 있었지만 대부분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하는 날이 많아 가끔은 말이란 걸 할 수 있을까 싶어 아파, 배 아파를 제외한 다른 언어를 떠올려 봤으나 생각나지 않는 날이 많았다. 그럼에도 대체로 물음이었고 어쩌다 답을 하는, 그러다가 침묵을 통해 시간과 공간의 영원을 보기도 하는, 그런 날들이 나쁘지 않았다. 벙어리가 되든 무지렁이가 되든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세상 적막한 공간에서 세상 시끄러운 마음이 공존하는 그곳은 고요롭고 고요로운 고요, 그 자체인걸.





1년 차 어느 날, 책이 읽고 싶다. 책장을 열고 책을 살펴보다 2019년 구매했지만 읽지 못했던 책들을 꺼내 보았다. 그때 그 시절의 질문들이 빼곡히 들어 있는 책들이 답을 구하지 못한 채 또 내 손에서 던져졌다. 그래. 던져버렸다. 꺼져버려. 



2년 차 어느 캄캄한 새벽, 분명 잠을 자고 있었던 것 같은데 잠을 자고 있던 게 아닌 듯 눈이 살며시 떠졌다. 그러다 번개가 치듯 생각이란 걸, 아니 문장 같은 게, 아니 그림으로 보여지듯 IQ라는 것을 떠올렸다. 지능이 낮아졌을까. 삐걱거리는 몸을 일으켜서 오랜 시간 방치되어 켜지는지 안 켜지는지도 모를 컴퓨터를 켜고 IQ 테스트를 했다. 낮아졌다. 무려 18점이 낮아졌다. 지능이 낮아지면 기억을 더 못 하게 될까. 이 와중에 호기심을 발견했다. 아직 궁금한 게 있다니 마치 살아있는 거 같다. 순간 신났을까. 다음 테스트를 해봤다. 아파, 배 아파 말고는 하는 말도 없었기에 '안녕하세요''수고하셨어요' 등 소리 내어 말해 보았는데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무지렁이가 되었다. 



무지렁이 3년 차, 넷플릭스(TV) 밑에 책이 한가득 있다. 넷플릭스가 이토록 서글펐나. 눈만 떴다 감았다 하는 그 와중에도 책이 한가득한 책장을 보면서 넷플릭스와 함께하는 듯 아닌 듯 눈은 책장을 보면서 마치 링의 귀신처럼 책장 앞으로 가 앉았다. 한 권을 빼서 페이지를 넘겨 보았다. 좋다. 이 종이가 뭐라고 좋다. 그렇지만 깨질 듯한 두통과 함께 책은 던져졌다. 





2023년 3월 봄날, 원지의 하루를 보면서 종종 웃었던 그 어느 날, 책이 미친 듯이 읽고 싶어져 이대론 안 되겠다 싶은 그런 날, 독서 커리큘럼 안내문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검색해서 찾은 것이 아니라 핸드폰만 열었다 하면 자꾸 눈에 띄었다. 신기하게도 그 안내문은 원지의 하루를 보려고 유튜브를 열면 떴고 네이트루스 인스타를 염탐하려면 관련 내용이 떴다. 그렇게 읽지 않고 10번 정도 패스하다 관련 내용을 살펴보게 되었을 때 [기록하는 사람들]를 구독하기 시작했다. 


주 3일 ZOOM으로 1시간 독서 후 한 줄 평을 댓글 창에 적으면 되는데 타인의 시선을 방패 삼아서 그 1시간 동안 책을 던지지 않고 붙잡고만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기에. 물론 글쓰기 하루가 포함된 커리큘럼이지만 그냥 끄적이면 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을 하면서 한 치 앞을 모르는 여정은 시작되었다. 그것도 멋대로 글쓰기 커뮤니티를 독서 커뮤니티로 오해하면서.



첫날부터 책을 던졌다. 한 줄도 읽지 못하고 올라오는 구역질을 참지 못해 화장실만 들락날락하다 1시간을 채우지 못하고 중도에, ZOOM에서 서둘러 퇴장했다. 게다가 약 먹는 시간과 독서 시간이 겹쳐서 졸음과의 싸움도 시작되었다. 정신이 약을 이기기엔 한없이 나약하다. 살면서 커뮤니티에 참여해 본 것이 처음인데 아쉬웠고 나름의 큰 용기가 사그라드는 순간이다. 


타인과 함께하는 공간에서 하다가 말다가 제대로 참여하지 못하면 양심에 어긋난다 생각했다. 그것도 제 발로 직접 찾아가 이 커뮤니티에 참여하겠노라 했는데 민폐 끼치고 싶지 않았다. 이토록 타인의 시선이 있으니 함부로 책을 던지진 않을 것이라 믿었는데 육체적인 한계를 어찌하지 못하고 염치가 없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한 주가 흘러가고 꾀를 내었다. 온종일 책을 읽고 덮고, 머리 아프고 울렁거리다 책을 읽어보다 덮고, 메슥거리고 읽다 덮다 반복해 한 줄을 찾았다. 처음으로 한 줄 평을 ZOOM 채팅창에 올렸다. 물론 1시간 동안에 읽은 건 아니지만 책을 읽지 못하게 된 이후로 처음으로 해보는 구체적인 노력이었다. 타인의 시선을 이용해 책을 던지지 않고 꼬박 하루가 걸려 한 줄 평을 적었더니 작은 성취가 생겼다. 



그렇게 책은 손에서 던져지지 않았다. 한 글자 한 글자 알알이 부서져 다시 앞장으로 넘어가야 하는 일이 반복되어도 책을 덮고 숨을 고를지언정 던지지 않았으며 한 문장, 한 단락, 한 장, 두 장 앞으로 나아가는 페이지가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한 시간이었고 어느새 충만했다. 





그렇게 단출한 날들 사이, 꽃 같은 어느 날 산책을 시작하게 되면서 '글쓰기'에 대한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했으나 아득한 정신과 육체의 미비함으로 무엇을 선뜻 선택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이미 정해져 있는 답을, 내면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미래를, 수면 위로 꺼내 올리는 작업을, 하기로 선택했다. 그 작업은 독서하면서 찬찬히 그리고 깊이 진행할 심산이다. 그것은 오래전 잃어버린 기억과 연결되어 있으리라 믿고 있기에.


봄날의 끝자락을 지나 초여름인 지금, 여전히 책을 오랫동안 집중해서 읽어 내려가지 못하지만, 머리가 깨질 듯 아프거나 울렁거리고 메슥거리는 증상은 완화되었다. 이처럼 아직 글자만을 읽고 있는 형편이지만 책 읽는 것은 계속될 거다. 왜냐하면 독서를 통해서 만나야 할 존재가 있기 때문이지. 그 여정 또한 이제 시작되었다. 






2023년, 초여름날에






'일단 독서를 한번 해보겠습니다'는 '일단 산책을 한번 해보겠습니다'의 2편입니다.

이어지는 글이니 혹시라도 산책 시리즈, 1편을 읽지 못하셨다면 먼저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iteuljaesu

그리고 

라이킷 & 댓글 남겨주시면 기운이 납니다 :-)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