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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있을재수 Sep 28. 2023

너와 나의 관계는 무엇으로 남으리

(3-2부) N의 스치는 시선은 찰나의 순간으로 영겁(永劫)에 남았지



"영화 보는 내내 자던데 내용은 어떻게 알았어?"


!


" ...그게 ... " 지난번에 혼자 봤다 말하지 않았는데 , 이런.


말하려다 말고 바닐라라떼를 쭈욱 들이키고 있으니, N이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일어났다.


이야기할 충분한 시간은 있었지만, 굳이 알리고 싶지 않았을 뿐인데 거짓말을 한 듯한 찜찜함이 남았다. 보이지 않지만, 관계의 선을 분명하게 긋고서 서로의 자리에서 서로의 시선만을 교환하는 이 관계가 나쁘지 않다.


물론 안다. 일이 이렇게 되었다는 설명을 N에게 하면 간단하다. 신은 양심의 모습으로 인간과 함께하시기 때문에 모든 인간과 한시도 떨어질 수 없다 했던가. 그런 의미에서 나의 양심도 어찌 된 상황인지 설명해 주는 게 옳다고 한다. 그렇지만 스스로의 멸망, 침묵을 가장 한 거짓말을 선택했다. 진실을 나눌 타이밍에 나누지 않는 것 또한 거짓말의 일종이며 이러한 소소한 침묵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감을 넓힐 뿐이고 관계에 진전은 제로에 가깝다.


서로의 시선은 항상 다른 곳을 향해 분주하지만, 이따금 마주치는 그 찰나의 순간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시점이었고 그렇기에 훗날 그 지점에 N의 시선도 불가피하게 남으리란 걸 알지도 못했다.



벌써 어둑어둑해진 거리에 N과 나란히 걷고 있는데 N은 오늘따라 이 상점 저 상점 다 들어가며 들락날락하고 있었고 난 이미 지칠 대로 지쳐서 앉을만한 곳이 보이면 앉아 있기 바빴다.


"J아, 이거 어때? 엄청 편할 것 같지 않아?"


N이 질문을 100번 정도 한 것 같다. 이제 창의적으로 할 대답도 없어서 "어, 그래."로 일관된 답변을 하고 있기에 눈치 없는 곰팅이도 '아, 재가 많이 힘들구나' 하며 눈치를 챌 법도 한데 악마 N은 끝을 향해 가고 있다.


"직원이 이거 없다는데 다른데 들러봐야겠다."


뱁새눈이 찢어질 대로 찢진 데다 양쪽 끝이 있는 힘껏 위로 올라가 내려올 생각을 안 하는데 N은 신경 쓰지 않는 듯하다. 그래도 잘못 한 게 있어 참기로 했으니, 끝까지 참아볼까 하는 와중에


다리가 안 움직인다. 맞다. 오늘 하루 종일 걸었고 활동량이 상당했다. 그래서일까. 욱신거리며 다리가 마비 온 듯 꼼짝을 안 해서 손으로 다를 위로 아래로 흔들어 보며 N에 말했다.


"N아, 다리에 힘이 없고 만지면 아파. 왜 이러지.."


N이 흔들거리는 다리를 보더니 일으켜 세워주려 다가와 팔을 뻗어 나의 양팔을 죽 당겼으나 일어날 수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나란히 앉아 있게 되었고 시간이 제법 흘렀는데도 나아지지 않자, N이 내 앞으로 와 업히라며 등을 보이며 앉았다. 무슨 짓인지 모르겠어서 등을 뻥 차야 하나 잠시 고민했지만, 미국은 밤이 다가올수록 위험해지기에 빠른 귀가를 선택해야 했다.


택시를 콜 할 수 있는 곳까지 이동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N의 등에 업혀 생각했다.


N이 귀하게 여기던 책의 시선은 설국열차를 본 소감하고 닮았다고.

열병을 앓던 그 시간에 극적으로 내 삶에 등장한 N은 선택해서 꾸역꾸역 가고 있는 그 길이 아닌 다른 길로 되돌아가라고 신호를 주기 위해 보내진 하늘의 사람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럼에 서먹함을 유지하겠다고. 또한 마음을 나눠 발전된 관계(친구)가 되기 전 안녕이라고.


그러는 사이 공중에 뜬 듯한 편안함에 정신은 아득해지고 꿈결에 N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가족보다 나은 타인도 있는 법인데 그걸 모르는 거 같다."


'그래서 알고 싶지 않다는 거야. 가족만큼 좋은 타인일 수 없으니까.'


대답을 삼키고 서로 가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 없는데 어찌 알았지 하는 의문이 들었으나 택시 타는 곳이 아닌 숙소까지 걷는 N을 모른척하니 그날 밤의 달빛은 밝고 밝아 마치 태양의 빛 같았다.  어둠 한 점 없도록.





카페에 앉아 기억을 향해 걷다 때론 그저 응시했으며 또다시 걷곤 했다. 그러고 있자니 그 당시 책을 통해 알고자 했던 답은 N이 가지고 왔으며 함께 하는 시간 동안 N을 통해 찾고 있는 답을 보여주고 있었음을


이제서야 알아채고 이제서야 느끼며


'미국으로 부름'은 기시감을 통한 대화였고 이것은 지난 세월 속, 독서로 비롯된 연속성에 의한 가속도로서 일생일대 가장 중요한 축복이었음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맞다. 독서를 통해 만나던 존재는 이 지점에 분명히 없었는데 훨씬 오래전부터 지속해 왔기에 속도가 붙어 독서를 멈췄음에도 독서가 아닌 독서인 듯 독서 아닌 곳에서 하늘의 보호는 계속되고 있던 셈이다.


30대를 진입하며 선택했던 '삶'에 의해 독서가 아닌 그저 책 읽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수정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지만, 온 마음을 다해 거부했던 그 평화로웠던 날들에 기억의 시선이 멈추었다.


그렇다. N을 스치고 지나쳤던 그 찰나는 영겁에 남았고, 하나의 점처럼 남겨진 찰나의 지점에 서서, 관계에 대해, 마음을 나눠 발전하는 관계들에,


'잘 부탁해, 안녕'이라고 인사를 해보았다.


한평생 그 무엇도 필요하지 않던 자, 그래서 관계하지 않던 자, 그곳의 '지금'에 서 있노라니

필요를 향해 손을 뻗기 시작하는 '지금'과 하나의 점으로 겹쳐져 '관계'부터 시작해 보면 어떻겠냐고 N이 알려주고 있는 듯하다.



시공간의 마술 때문일까, 집으로 되돌아오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또한 다가오는 한 치 앞이 여전히 캄캄한 어둠임을 초여름이 끝나가는 6월을 마무리하면서도 인지하지 못했다. 어쩌면 모르지 않았을지도. 나아가기로 했으니 멈추고 싶지 않았을지도. 그저 마음이 성급했는지도.




소소히 주어진 중요한 메시지를 모른 척 지나치지 말라, 침묵의 일종으로 파괴적 성질이 강하다.




천천히, 한걸음, 차근차근 움직이며 필요에 다가서야 함을 모르지 않았지만 다급했으며 세련되지 않은 지혜로 인해 또다시 자신을 위태롭게 만들고 있었다.








'까치야, 안녕'






'일단 독서를 한번 해보겠습니다'는 '일단 산책을 한번 해보겠습니다'의 2편입니다.

이어지는 글이니 혹시라도 산책 시리즈, 1편을 읽지 못하셨다면 먼저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iteuljae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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