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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토록 Sep 15. 2022

첫 월급은 단돈 50만 원

누구에게나 입사 첫날에는 설렘이 가득하다. 본격적으로 사회인이 된다는 마음에 자존감도 한껏 올라간다. 입사 첫날, 10시까지 출근인 나도 조금은 여유로운 마음으로 한 시간이 넘는 출근길이 왜 그리 가볍기만 한지.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4호선 혜화역 지하철역에서 내려 ‘낭만의 공간’으로 알고 있던 마로니에 공원을 지나가는 게 내게는 꿈같은 현실이었다.

  

“음… 이제 이곳이 내 나와바리군”


마로니에 공원 안팎이 지금처럼 바닥이나 조경이 멋스럽게 잘 다듬어지지 않았던 때다. 그럼에도 주변 풍경 하나하나가 나는 다 마음에 들었다. 앞으로의 내 인생은 이곳에서 제대로 날개를 펴겠구나. 멋지게 꿈을 펼쳐 보자. 이런 생각에 출근길 내내 마음이 몽글몽글, 그저 좋았다.


드디어 사무실에 도착.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데 열리지 않았다. 뭐지? 오늘 휴무인가. 이상하다. 분명 오늘부터 출근하라고 했는데… 그때 계단을 오르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실장님의 얼굴이 나타났다. 내가 제일 빨리 출근한 것이다.


실장님은 창가 쪽 자리 하나로 나를 안내해 주셨다. 아직 자리 세팅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책상은 정말로 텅 비어 있었다. 업무용 컴퓨터는커녕 책꽂이 하나 없이 빈 책상만이 덩그러니. 멀뚱멀뚱 한참을 앉아 있는데 어찌나 멋쩍던지. ‘이럴 줄 알았으면 읽을 책이라도 하나 가져오는 건데…’


그나마 나를 반겨주는 여직원이 한 명 있었다. 나보다 딱 한 달 입사가 빨랐던 세 살 어린 그 친구가 내가 놓쳤던 채용 공고 때 입사한 소위 공채 1기의 사원이었다. 당시 사무실 직원들이 인맥을 바탕으로 구성이 되었기에 그 친구는 공채 1기, 나는 공채 2기에 해당했다. 의미 없는 구분이지만 꼭 집어 말하자면 그렇다. 새로운 직원을 맞을 준비가 전혀 안 된 상황에 놓인 내가 안쓰러워 보였나 보다. 이따금씩 말을 걸어주어 고마웠다.


“아직 분위기가 조금 그렇죠? 조만간 정리가 될 거예요. 그냥 편히 앉아 계세요”


몇 시간이 지나고서야 그간의 공연 자료가 모아진 파일을 건네받았다. 보니까 딱히 나에게 업무를 인수인계할 분도 없었다. 또 딱히 시킬 것도 없는 그런 분위기. 흠… 앞으로 나는 무슨 일을 하게 될까. 사람이 필요해서 뽑은 건 맞나?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보다 낫겠지. 받은 파일을 천천히 살펴봤다. 그간의 공연 기사들이 스크랩되어 있었다. 공연 제작 배경과 그간 진행되어온 과정들이 나와 있는 일종의 공연 소개서였다.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나서 실장님이 부르셨다. 계약하자고.


휴일은 주에 한 번, 제작부라 공연이 없는 월요일이 휴무란다. ‘흠… 나 주일에 교회 가야 되는데…’ 채용 공고 때부터 주말에 근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항이 있었기에 토를 달 순 없었다. 다행히 주말엔 오후 출근이라 예배 참석은 가능하겠다 싶었다.


그다음 문제는 급여였다. 월급이 100만 원도 되지 않았다. 각오는 했지만 그래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아쉬운 숫자였다. 인턴으로 일할 때도 이보다는 많았는데 어째 정직원 월급이 더 적을 수가 있나… 거기에 수습 기간이 3개월. 그 기간에는 50만 원이란다. 왔다 갔다 차비하고 밥 사 먹고 핸드폰 비 내면 끝이겠다 싶었다. 다행히 식대는 회사 제공이었다. 계약 진행에 나선 실장님도 겸연쩍어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급여 협상에 관한 어떤 여지는 없어 보였다. 돈이 적다고 일을 안 할 건 아니었기에 아쉬운 마음은 조금도 내색하지 않은 채, 알겠다고 말하며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나는 그저 ‘이 바닥이, 공연업계가 이토록 힘든 곳이구나, 그래 회사가 돈을 벌면 좀 올려주겠지. 일단 일을 시작하는 게, 기회를 잡는 게 내게는 더 중요하니 돈엔 연연하지 말자, 돈이 목적이었다면 애초에 이 바닥에 마음을 둬선 안 됐지. 그래 돈은 나중에 생각하자.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으니 일단은 내 용돈벌이하는 것에 만족하자’라는 마음이었다. 당시에는 몰랐다. 아빠 회사가 부도 위기에 놓여 있었는지, 머지않아 파산하게 되어 집도 절도 없는 신세가 되어버릴 줄은.


더 가관은 수습 기간 50만 원을 급여일에 맞춰 제대로 받은 적이 첫 달 딱 한 번 뿐이라는 사실이다. 첫 급여라고 신경을 써 주신 거였다. 바로 다음 달부터 그 50만 원마저 나오지 않았다. 회사에는 정말 돈이 하나도 없던 것 같다. 계획에도 없이 본의 아니게 회사에 적금을 붓기 시작했다. 만기일은 모른 채. 다른 직원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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