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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식전달자 정경수 Apr 06. 2020

맥락을 읽는 방법(1)

기자가 쓴 기사보다 로봇이 쓴 기사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

토요일에 선거 공보물이 우편으로 도착했습니다. 

정당 후보 소개와 공약, 과거에 어떤 일을 했는지, 지역을 위해서 한 일은 무엇인지 등

어떤 정당 후보 공보물은 여러 페이지로 구성되었는데 아래쪽이 붙어있었습니다. 

공보물을 재단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있었던 거 같은데요.

유권자가 읽으라고 만든 건지, 검수하지 않고 이대로 보낸 건 문제가 있는 거겠죠. 


업무용 문서를 쓰는 방법과 절차에 관해서 책을 쓰고 강의하는 제가 보기에는 

후보자의 매력을 보여주는 맥락, 유권자의 시선을 끄는 논리를 찾긴 어려웠습니다. 

어쨌든, 누가 당선되든 공보물에 나온 공약을 지켜서 모든 국민이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주시면 더 바랄 게 없겠네요.  


로봇이 사람을 대신해서 기사를 쓰는 시대다. 주제를 입력하면 관련된 사건 기록과 그 일이 일어난 배경과 결과, 통계, 사후에 일어난 일까지 조사해서 내용을 작성한다. 인터넷으로 보는 스포츠 기사는 로봇 기자가 쓴 글이 상당히 많다.


속보와 편집 기사 작성에 로봇 기자를 활용한 지 벌써 수년이 지났다. 2014년 3월 LA에 2.7 규모 지진이 발생했을 때 지진 속보를 가장 빨리 알린 매체는 〈LA타임스〉다. 지진이 발생했다는 정보가 지질조사국으로 전송된 지 10분도 지나지 않아서 진원지와 진도 등의 정보를 담은 기사를 내보냈다. 이 기사는 퀘이크 봇(Quakebot)이라는 로봇 알고리즘이 작성했다. 퀘이크 봇은 지진이 발생한 위치, 시간, 현황 정보를 미리 만들어둔 문장 구조에 따라 배치하고 지진이 발생한 지역의 지도를 첨부해서 온라인으로 기사를 내보낸다.


영국 〈가디언〉에서 발행한 무료 종이 신문 〈더 롱 굿 리드〉는 로봇이 기사를 쓰고 편집한다. 로봇이 쓴 기사에 헤드라인과 사진을 배치해서 신문을 만든다. 〈더 롱 굿 리드〉에는 〈가디언〉에 실린 기사 가운데 댓글, 리트윗, 좋아요 등을 기준으로 로봇이 기사를 선정하고 편집한다.

AP통신사에서 수익 보고서 관련 기사를 작성하는 ‘워드 스미스’는 1초의 9.5개의 기사를 작성한다. 알고리즘에 따라 기업의 수익 보고서에 기초해서 기사를 쓴다고 해도 굉장한 속도다. 워드 스미스는 정보를 취합해서 보고서를 만드는 기능 외에 데이터 분석 기능도 갖추고 있다. 작성한 기사를 사람들이 얼마나 관심을 가질지에 대해서도 예측한다.


읽는 사람의 관점에서 로봇 기사에 더 높은 점수를 준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로봇 기사가 더 높은 점수를 받은 가장 큰 원인은 기사의 맥락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기사를 쓰는 속도, 분석하는 정보량 등을 기준으로 보면 인간 기자는 로봇을 따라갈 수 없다. 감성과 저널리즘은 인간만의 고유 영역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로봇 기자가 쓴 기사와 인간 기자가 쓴 기사를 전문가들이 비교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일반인과 기자를 대상으로 온라인 조사를 실시한 결과, 기사를 쓴 주체를 묻는 질문에서 정답률은 일반인 46.1퍼센트, 기자 52.7퍼센트로 나타났다. 로봇이 쓴 기사를 인간이 쓴 기사와 구별할 수 없었고 로봇이 쓴 기사를 로봇이 썼다고 하면 평가가 좋아진 반면, 기자가 썼다고 하면 평가가 나빠졌다.


로봇이 쓴 기사를 인간이 쓴 기사와 구별할 수 없었고 로봇이 쓴 기사를 로봇이 썼다고 하면 평가가 좋아진 반면, 기자가 썼다고 하면 평가가 나빠졌다.
로봇이 기사를 썼다는 사실을 알고 기사를 평가한 결과는 더 놀랍다. 일반인은 로봇이 쓴 기사에 다섯 개 평가 항목 가운데 세 개 항목을 높게 평가했다. 높은 평가를 받은 항목은 신뢰성, 명확성, 특이성이었고 기자가 쓴 기사가 로봇 기사보다 높은 평가를 받은 항목은 정보성, 전문성이었다. 기자들이 평가한 결과는 신뢰성을 뺀 나머지 항목에서 로봇이 쓴 기사에 더 높은 점수를 줬다.

구자윤 기자, [“같은 기사라도 로봇기사, 인간기사보다 평가 좋아“], 〈파이낸셜뉴스, 2015.9.8〉


기자가 쓴 기사보다 로봇이 쓴 기사를 높게 평가한 이유는 편견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사가 비판과 감시 기능을 하는 측면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지만, 알고리즘을 구성하는 방식, 즉 설정에 따라 로봇도 편견이 들어있는 기사, 사회를 비판하는 기사를 쓸 수 있다.


읽는 사람의 관점에서 로봇 기사에 더 높은 점수를 준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로봇 기사가 더 높은 점수를 받은 원인은 기사의 맥락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인간 기자의 글쓰기는 훈련을 통해서 완성된다. 다른 사람이 쓴 기사와 글, 책을 읽으면서 나름의 글쓰기 방법을 습득한다. 로봇 기자도 글쓰기 훈련을 한다. 로봇 기자도 바로 기사를 쓰지는 못한다. 로봇 기자는 머신러닝을 통해서 기사 쓰는 방법을 익힌다. 

머신러닝은 이세돌 9단과 대국을 치른 알파고로 인해서 널리 알려졌다. 기본 데이터에 기초해서 시행착오를 거치며 새로운 방법을 깨닫는 학습법이다.


알파고는 머신러닝의 한 종류인 딥러닝을 통해서 ‘프로 기사’의 대국 내용에 기초해서 훈련하고 수천만 번의 바둑을 두면서 학습했다. 로봇 기자의 글쓰기 훈련도 알파고가 바둑을 훈련하는 방법과 비슷하다. 프로 기사들의 대국 내용을 기초로 훈련한 것처럼 로봇 기자는 유명한 작가가 잘 쓴 글, 요점이 확실한 기사, 논리적인 기사를 바탕으로 글쓰기를 배운다. 


잘 쓴 글, 요점과 논리가 확실한 기사로 학습한 로봇 기자의 글은 단락 사이의 관계와 흐름, 즉 맥락이 확실하다. 인간 기자도 글의 시작과 끝이 논리적으로 연결되도록 쓰지만 로봇 기자만큼 수많은 자료를 검색할 수 없고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과 수집한 정보에 기초해서 쓰기 때문에 자료를 참고해서 논리를 만드는 데 한계가 있다.



출처

정경수 지음, 《핵심 읽기 최소원칙》, (큰그림, 2019), 27~30쪽

참고문헌

구자윤 기자, [“같은 기사라도 로봇기사, 인간기사보다 평가 좋아“], 〈파이낸셜뉴스, 201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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