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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식전달자 정경수 May 06. 2020

글을 읽는 능력과 읽고 이해하는 능력은 다르다

빠르게 읽으면서 핵심을 파악하고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공 도서관이 드디어 문을 연다고 합니다. 열람실은 아직 이용할 수 없고 책 대출과 반납만 된다고 합니다.

단계적으로 나머지 시설도 이용할 수 있게 되겠죠.


2월 중순부터 도서관이 문을 닫았으니까 거의 석 달 동안 도서관을 못갔습니다.

집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구립도서관이 있고, 도보로 15분 거리에 교육청에서 운영하는 도서관이 있습니다.

대출 권수는 각각 5권, 7권입니다. 한 번에 12권을 빌릴 수 있습니다. 구립도서관은 마지막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에는 2배 대출을 해줍니다. 대출 기한은 2주일, 연장하면 3주까지 볼 수 있습니다.

2월에 대출한 책은 반납 기일이 자동으로 연장돼서 몇 권은 책꽂이에, 몇 권은 화장대에, 또 몇 권은 TV 앞에 있습니다.


대출한 책은 열 권이 넘는데, 석달이나 언제나 볼 수 있는 상태로 있었는데...

읽은 책도 있고 앞에만 본 책도 있고 중간중간 건너 뛰면서 읽은 책도 있습니다.

도서관이 문을 열었고

이제 반납기일이 확정됐으니 '마감효과'가 작동해서 쫙쫙 읽게 되겠죠?  


‘글을 읽는다’는 줄글을 읽는 것을 말한다. 문장으로 이어진 글이 줄글이다. 책도 브런치도 줄글로 이루어진 콘텐츠다. 문서로 설명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 줄글로 쓰기다. 정해진 양식에 개조식으로 내용을 채워 넣는 보고서, 제안서 형태의 문서도 있다. 이런 문서는 표와 그래프, 숫자까지 읽어야 한다.

줄글, 표, 그래프, 숫자는 저마다 읽는 방법이 다르다. 하나의 의미를 표현하는 단위인 문장으로 구성된 줄글을 읽을 때는 주제문, 즉 핵심을 설명하는 문장을 찾아야 한다. 각각의 문장은 저마다 의미가 있다.


정보를 얻기 위해서 글을 읽을 때는 글자나 낱말, 문장을 전부 읽지 않는다.

마들렌을 먹으면서 추억을 소환하는 내용이 나오는 아주 유명한 책,《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가운데 한 구절을 보자.

“이제 우리 집 정원의 모든 꽃들과 스완 씨 정원의 꽃들이, 비본 냇가의 수련과 선량한 마을 사람들이, 그들의 작은 집들과 성당이, 온 콩브레와 근방이, 마을과 정원이, 이 모든 것이 형태의 견고함을 갖추며 내 찻잔에서 솟아 나왔다.”

이 글을 읽을 때 ‘이/제/우/리/집/정/원/의/모/든/꽃/들/과…’처럼 한 글자씩 떼어서 읽지 않는다. 대부분 ‘이제/우리 집/정원의/모든 꽃들과…’ 이렇게 단어 단위, 즉 의미 단위로 읽는다.

의미 단위로 읽으면 한 번에 끊어 읽는 범위가 의미마다 달라진다.

‘이제/우리 집 정원의 모든 꽃들/스완 씨 정원의 꽃들이/비본 냇가의 수련과…’ 이렇게 시점과 장소를 나타내는 ‘이제’ ‘우리 집 정원’ ‘스완 씨 정원 꽃’을 한 묶음으로 읽는다.

언어인지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은 보통 4단어 정도의 의미를 한 번에 인식한다. 속독을 배웠든 배우지 않았든 상관없이 한 눈에 4단어 정도의 의미를 인식하며 줄글을 읽는다. 속독을 배우면 한 번에 많은 단어를 인식하고 빠르게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진정한 ‘의미 단위 읽기’가 아니다.


읽기 단계를 설명하기 위해서, 쟌느 샬이 만든 독서 능력 발달 단계를 천경록 교수가 우리나라 공통 기본 교육 과정에 맞춰서 제시한 독서능력 발달 단계를 살펴보겠다.

천경록의 독서 능력 발달 단계 (참고문헌_한우리독서문화운동본부교재집필연구회 지음, 《독서교육론 독서논술지도론》, (위즈덤북, 2005))


의미 단위 읽기는 고급 독해기인 중학교 1~2학년 수준의 읽기다. 글쓰기 교육에서 불특정 다수가 읽는 글을 쓸 때, 중학생이 이해할 수 있게 쓰라는 것도 중학교 1~2학년에 의미 단위 읽기 능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신문, TV, 인터넷 등의 매체 기자와 작가는 중학교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무난히 이해할 수 있게 글을 쓴다.


의미 단위 읽기는 그냥 글을 읽는 것보다 어렵다. 한국교육개발원에서 한국 성인의 문해 실태를 조사한 자료를 보면 알 수 있다. 국제성인문해조사(IALS)에서 조사하는 문해 능력은 ‘일상적인 활동, 가정, 일터 그리고 지역사회에서 문서화된 정보를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산문, 문서, 수량으로 구분해서 문해 능력을 조사하여 5단계로 수준을 나눴다.

국제성인문해조사의 문해 능력 구분과 단계 (참고문헌_한국교육개발원 지음, 2001년 한국성인이 문해실태 및 O ECD 국제비교조사연구)


가장 최근에 실시한 문해 능력 조사는 2008년에 시행되었다. 이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의 문해 능력 평균 수준은 2·3단계로 나타났다. 일상생활에 큰 지장은 없지만 일상적이지 않은 문서(법령, 길고 어려운 문장, 복잡한 글, 간접적인 추론이 필요한 글 등)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수준이다. 국립국어원 자료에 따르면, 성인의 문해 능력 평균 수준은 2·3단계는 중학생 평균 문해력의 70~80퍼센트 수준에 해당한다.

강병재 지음, 《읽기 과학》, (서감도, 2017), 197쪽


의미 단위 읽기를 영어에 비유하면, 숙어 단위로 읽듯이 단어나 문장이 아닌 의미를 이해하면서 읽는 것이다. 의미를 이해하며 읽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반복 읽기’다. 처음 읽을 때는 훑어보고, 두 번째 읽을 때 꼼꼼히 읽는다. 세 번째 읽을 때 생각하며 읽는 연습을 한다. 반복 읽기에 익숙해지면 빨리 읽으면서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기술적으로 빨리 읽는 속독은 의미 이해 보다 빨리 읽는 행위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빨리 읽는 것과 깊게 이해하는 것은 다르다.


긴 지문을 시험 시간 안에 읽고 문제를 푸는 수험생은 지문에서 빨리 핵심을 파악해야 한다. 속독을 배웠다면 지문을 빨리 읽을 수는 있다. 하지만 빨리 읽기만 하고 핵심을 찾지 못한다면 출제자가 의도한 통합적 추론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

읽기 능력을 향상시키려면 책을 많이 읽으라고 하는데, 많이 읽으면 분명히 도움이 된다. 하지만 학습에 도움이 되는 참고서를 모두 읽기란 불가능하다.

읽은 책의 숫자에 비례해서 이해도가 향상되는 건 아니다. 빠르게 읽으면서 핵심을 파악한 다음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철학자의 고유한 사상에 대한 글을 읽는다면, 철학자가 쓴 원전, 인물에 대한 평전, 비평서, 쉽게 쓴 개론서 등을 읽고 그들이 살았던 시대에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어떤 과정을 통해서 사상을 확립했는지 등을 깊게 생각해본다. 그러면 의미 단위로 읽는 훈련이 저절로 된다.


신문 사설, 고전, 추천도서, 베스트셀러를 많이 읽었다고 깊게 이해하는 능력이 향상되는 건 아니다. 짧은 글을 읽더라도 글쓴이의 의도, 시대적 배경, 주제 등을 깊게 생각하면서 자기가 가진 배경지식을 보태서 글쓴이의 의도·뜻을 생각하는 연습을 하면 의미 단위로 읽을 수 있다.



출처 

정경수 지음, 《핵심 읽기 최소원칙》, (큰그림, 2019), 34~39쪽


참고문헌

한우리독서문화운동본부교재집필연구회 지음, 《독서교육론 독서논술지도론》, (위즈덤북, 2005)

참고문헌_한국교육개발원 지음, 2001년 한국성인이 문해실태 및 O ECD 국제비교조사연구

강병재 지음, 《읽기 과학》, (서감도, 2017), 1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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