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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님 Mar 06. 2023

2023.2.21

부모님, 남편과 아이들까지 여섯 명이 국립중앙박물관 합스부르크전에 다녀왔다. “줄 서지 않으셔도 돼요! 편한 순서로 관람하시면 됩니다!” 중간중간 들리는 안내요원들의 외침에도 어쩐지 모두 줄을 서서 관람하고 있는 분위기. 꼭대기에 뭐가 있는지도 모른 채 위로 올라가려고 애쓰는 애벌레들처럼 줄 끝에 뭐가 있는지 모르고 서있다보면, 내 손바닥 반 만한 금 세공 접시나 금을 붙이고 조각을 해 넣은 조개껍데기(역시 손바닥만한) 같은 걸 볼 수 있었다.  


오디오 가이드도, 역사 지식도 전무한 채 흐린 눈으로 벽면에 붙은 설명을 더듬더듬 읽으며 합스부르크 왕가의 초상화를 보던 중, 화려한 그림 앞에 발이 멈췄다. 흰 살결에 발그레한 볼, 두둑한 뱃살, 인물 주변은 온통 꽃으로 장식한 게 근엄하고 어두운 다른 초상화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옆에 있던 큰아이에게 말했다. “지오야, 이 사람 술 잘 마시게 생겼다…” 들으라는 지오는 오디오 가이드에 정신이 팔려 반응이 없는데, 앞에 서 있던 아주머니가 뒤를 돌아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친 아주머니 마스크 사이로 풋, 못 참겠다는 듯이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러고는 불콰한 아저씨 그림을 한번 쳐다보고, 다시 나를 한번 돌아보고 하며 큭큭큭.


큰아이는 내게 전시 중인 모든 작품의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했는데, 민망함에 급히 걸음을 옮기느라 저 아저씨 초상화만 있는대로 흔들려 버리고 말았다. 지금 찾아보니 <페르디난트 2세 대공>이란다. 내가 찍은 사진에서는 볼 수 없지만, 제대로 된 그림을 보면 발그레한 볼의 홍조마저도 하트로 보이는 분이다. 분명히 반주를 즐겼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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