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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님 Mar 09. 2023

2023.3.8

230308 #일일일그림


큰아이 35개월 때, 단지내 아파트 1층에 있던 가정어린이집에 처음 가본 날이었다. 엄마가 아직 옆에 있는지 힐끔힐끔 곁눈질하며 선생님 치마 끝단을 만지작거리던 아기 지오의 첫 사회생활이 시작되려는 참이었다. “삐약삐약 병아리~ 음매음매 송아지~” 선생님의 노래에 맞춰 입 앞에 손을 대기도 하고, 집게 손가락으로 뿔을 만들어 머리 위에 대기도 하면서 지오는 눈치껏 율동을 따라하고 있었다. “푸르르르르르 물풀! 따다다다단 소라!” 노래가 끝나자 아기들은 후다닥 엎드려 머리를 숨겼다. 선생님이 “두구두구두구….. 찾았다!”하는 순간 까르르 웃으면서 깨어나기 위해. 엎드린 작은 궁둥이들이 웃음을 참느라 들썩거리고, 햇마늘같은 발가락들이 꼼질거리는 짧은 정적, 갑자기 “우엥…” 지오가 울며 몸을 일으켰다. 비염으로 거의 항상 코막힘에 시달리던 중인데 엎드린 채 답답한 걸 아무리 참고 기다려도 선생님 목소리가 들리지 않자 결국 울어버린 것이었다.


가정어린이집을 졸업하고 5살 때부터는 더 큰 어린이집에 다녔다. 아침마다 즐겁게 일어나 힘차게 뛰어 등원하던 7월의 어느날, 하원 때 만난 담임선생님이 환하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어머님, 지오가 이제 제 앞에서 편하게 앉아요~” 그럼 반년이 되도록 원 안에서 무릎이라도 꿇고 있었던 건가. 이 아이의 얼음이 깨지는 데에 적어도 반년이 필요한 것인가.


방학 내내 개학만 기다리더니 막상 4학년이 시작되고 삼일 연속으로 보건실을 찾았다고 한다. 속이 울렁거리고 토할 것 같아서, 머리가 죽을만큼 아파서 보건실에서 주시는 약 먹고 누워있다 조퇴도 두 번 했다. 새 학기 낯선 교실, 낯선 반 풍경, 저학년 때에 비해 엄하고 까다로운 선생님, 늘어난 학습량… 심정이 이해가 되는 한편, 학교에서는 아파서 고개도 못 들었다면서 집에 오면 잘 먹고 잘 자고 까불고 노는 아이를 보면서 어금니를 꽉 깨문 것도 사실이다.  지난 삼일 동안 지오의 어린이집 시절을 무수히 떠올렸다. 힘들어도 힘들다 말 못하고 꾹 참다 결국 울음을 터뜨리던 빨개진 얼굴을, 7월이 되어서야 겨우 힘을 빼고 늘어뜨렸을 팔다리를. “나 너무 긴장돼요. 잘하지 못할까봐 걱정돼요.” 하는 대신 토할 것 같다고 말하는 아이의 호소를 못 들은 척하지 않으려고, 노엽게 받지 않으려고 다시 이를 꼭 깨문다. 여러 번 심호흡하고 주먹도 꼭 쥐었다 풀어보며 ”나는 괜찮다!“ 외치고 학교로 향한 아이 뒷모습이 자꾸만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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