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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님 May 11. 2021

계속 날갯짓할 것!

로스 뷰렉, <포기가 너무 빠른 나비>

최근 허리 통증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심해졌습니다. 몸을 굽히거나 펼 때마다 콕콕 바늘로 신경을 따라 찌르는 것같이 아픈데, 이 통증 때문에 매일 잠을 설치고 머리 감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이 되었습니다. 통증을 없애려면 근육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더군요. 허리가 오롯이 안고 있는 부담을 근육이 나눠서 진다면 훨씬 편안해질 거라고요. 그래서 태어나 처음으로 퍼스널트레이닝이라는 걸 등록했습니다. 우선 재활을 중심으로 진행하겠다는 트레이너의 지도에 따라 허리 상태를 관찰하며 운동 강도를 천천히 조금씩 높였습니다. 첫 주에는 피티가 끝나고 나서도 그리 아픈 줄 모르겠더니, 4주 차인 지난주에는 허벅지가 화끈거리다 못해 불이 붙는 것 같았어요.



이 녀석은 ‘포기가 너무 빠른 나비’입니다. ‘참을성 없는 애벌레’가 자라 포기가 너무 빠른 나비가 되었죠. 다른 친구들과 함께 꽃밭을 찾아 날아가다가 구름에 가려 길을 잃고 혼자가 되었습니다. 바다에서 만난 고래는 친구들의 행방을 묻는 나비에게 “320킬로미터만 더 가면 된다”고 가볍게 말해줍니다. “뭐? 320킬로미터?” 아연해진 나비는 입을 딱 벌립니다.


등 뒤에서 트레이너의 밝은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회원님! 그렇게만 하시면 돼요. 5세트만 더 해 보죠. 20개씩 5세트!” 고작 열다섯 번 앉았다 일어선 것으로 불타오르는 듯한 허벅지를 쥐고 숨을 고르던 저는 나비처럼 눈이 커졌습니다. “네? 20개씩 다섯 번이요?” 나비처럼 입도 딱 벌어졌지만 마스크 덕분에 안 보였을 거예요. 그걸 어떻게 쉬지도 않고 계속하냐고, 그만하고 싶다는 말이 혀끝까지 올라왔습니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어디 운동할 때뿐일까요. 나의 꽃밭을 찾아가는 길에는 굽이마다 포기의 유혹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걸 해서 어디 써먹어? 나보다 잘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너무 힘들다. 눕고 싶다. 잘 못 할까 봐 겁나고 떨려.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만큼밖에 못 왔다니. 또다시 제자리야. 난 절대 못 갈 것 같아. 나비의 말과 표정이 낯설지 않습니다.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가 어이가 없어 웃는 저에게 트레이너는 침착하게 위로를 건넸습니다. “회원님, 저도 그래요. 저도 이 자세 하면 힘들어요. 그래도 계속하셔야 돼요. 그래야 나아져요.”하고. 또다시 제자리라고, 절대 못 갈 것 같다는 나비에게 고래가 말했듯이 말이죠. “절대가 아니라... 아직 못 갔을 뿐이야. 널 믿어 봐.” 어딘가 도착하려면 마음으로 바라는 것만으로는 부족한가 봅니다. 서두를 필요는 없지만 일단 계속 움직일 것. 계속 날갯짓할 것. 그리고 불안에 잡아먹히지 말 것. 제게는 우선 이 말이 필요할 것 같네요. 회원님, 런지하다 안 죽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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