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예 한 몸이 되어 버리는 건 어때요

아네테 멜레세, <키오스크>

by 숨님

올가는 아주 아주 오랫동안 키오스크에서 살면서 일해 왔습니다. 단골손님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그는 항상 친절하고 다정하죠. 저녁이 되면 올가는 키오스크 안에서 간식을 먹고 잡지에서 멋진 석양 사진을 오려 문 뒤에 붙이며 아쉬운 마음을 달랩니다. 키오스크 밖으로 나갈 수가 없거든요.


어느 저녁, 아이들과 함께 이 책을 읽고 있을 때였어요. 별생각 없이 책장을 넘기려는데 아이들이 이상하다는 듯 물었습니다. “왜 못 나가요?” “그러게. 왜 못 나갈까? 문이 좁아서?” 저는 좀 당황했습니다. 여러 차례 그림책을 읽었지만 한 번도 올가가 키오스크에서 나갈 수 없는 이유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쉽지는 않겠지만, 나가려고만 하면 방법이 없지는 않았을 겁니다. 주위에 도움을 청하거나, 몸이 반쪽이 되도록 체중 감량을 하거나, 아예 벽 한쪽을 터버릴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올가는 그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꼭 끼어 옴짝달싹 못 한 채 키오스크 벽 한쪽의 창만큼만 세상을 보면서. 바다를 물들이는 환상적인 노을을 변기인지 카우치인지 모를 곳에 앉아 사진으로만 보면서요.





파트타임으로 일하기로 한 지금의 직장에 나가지 않은 지 몇 달이 흘렀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상담을 받으러 오겠다는 사람이 많이 줄기도 했을 테지요. 친구는 “그러지 말고 나가는 요일을 늘리든지 다른 곳에도 지원해보라”라고 했지만, 저는 손사래를 쳤습니다. 내가 일하는 날을 늘리면 아이들 하교 후 일정을 챙길 사람이 없다면서요. 저 역시 나가려고만 한다면 아마 방법이 없지는 않을 겁니다. 근처에 부모님도 계시고, 뭣하면 아이들 학원을 줄일 수도 있고요. 하지만 저는 이렇게 집을 주 무대로 살고 있습니다. 아이들 일정 사이사이 짬을 내 겨우 책을 읽으며, 착실히 커리어를 쌓아가는 친구들의 소식을 듣고 부러워만 하면서요.


어떤 계기로 인해 올가는 움직이게 됩니다. 그리고 한 번 움직이기 시작한 그는 몇 차례 당황스러운 순간에도 동요하지 않고 그저 둥실둥실, 흐름에 몸을 맡겨요. 벽과 함께 편안하게 물살에 몸을 맡긴 올가. 시야를 좁히고 행동을 제한하던 키오스크의 벽은 이제 올가와 한 몸이 된 것처럼 보입니다.


나를 제한하고 가두는 벽은 무엇일까요. 변화에 맞닥뜨리고 싶지 않은 마음, 익숙해진 일상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 어쩌면 엄마로서 가지는 일말의 책임감일 수도 있겠네요. 벽과 하나가 된 내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겁 많고 결단력 부족한 나와 그런 내가 지금 처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상상해 봐요. 나의 한계를 끌어안고 조금씩 움직여 보려는 것.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지만, 그저 흐름에 몸을 맡기고 무릎 위에는 꿈 한 조각 펴 놓는 것. 어쩌면 그런 것이 진짜 ‘지금-여기에 사는 방법’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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