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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님 Mar 06. 2023

2023.1.27

종종 아이들에게 사과한다. 당장 할일들이 밀려 옆에서 종알거리는 말들을 귓등으로 넘겨야 할 때, 부르는 소리에 바로 달려가지 못할 때, 태권도 주말미션을 깜박하고 못 올렸을 때, 한번 얘기했던 걸 기억하지 못할 때 등등. 거의 항상 아이들은 “왜 그런 걸 갖고 사과해요 엄마~”하고, 씩 웃는 얼굴 앞에 여분의 미안함마저 스르르 녹아 없어지고 만다. 확실히 아이들의 품은 나보다 넓다. 관대하고 변함없다. 나만 잘 하면 되는데. 잊을만 하면 한번씩 일기장에 등장하는 후회와 자책은 어쩔 수가 없네.


어제 큰애는 그동안 간식을 사줬던 친구들에게 보답하고 싶다며 지갑을 들고 나갔다. 뭘 사먹었냐고 물으니 글쎄 무려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었다는 게 아닌가. 이제 막 열한 살, 생일 전이니 만으로 아홉 살인 아이들이 저희들끼리 가서 컵라면을 골라 계산을 하고, 뜨거운 물을 붓고, 나무젓가락을 쪼개 후루룩 짭짭 맛있게도 먹고 왔다고? 저녁 내내 뿌듯한 표정으로 “역시 컵라면은 밖에서 먹어야 제맛이지” 라는 아이를 보는 마음 한켠이 이상하게 복잡해졌다. 들키지 않으려 마음을 도닥여 숨기고 감췄지만 아마 아이는 느꼈을 테지.


통나무 공주가 자신에게 사과하는 나무로봇 오빠의 손을 잡으며 다독거리는 말이 꼭 아이들이 내게 하는 말같다. “무슨 소리야. 바보같이 별걱정을 다 하네. 당연히 용서하지!”



#1일1그림

#나무로봇과통나무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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