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수의 법칙
실업급여 수급을 위해
고용노동부 온라인 취업특강을 하나 들었다.
여러 강의 제목 중
‘내적동기를 자극하는 에너지 리더십’이라는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이왕 듣는 거, 에너지가 생기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강의 중에 흥미로운 말이 나왔다.
‘훈수의 법칙’이라는 것이었다.
훈수란 원래 바둑이나 장기를 둘 때
옆에서 보던 사람이 슬쩍 끼어들어
“거기 말고 여기 두세요.”
하고 한마디 던지는 것이다.
강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지나가던 사람이 문제를 해결해 주듯
남의 부하가 내 부하의 문제를 해결해주기도 하고
남의 리더가 내 리더의 문제를 해결해주기도 한다.
조직 안에서 이런 ‘훈수’가 자유롭게 오갈 때
문제 해결 속도는 빨라지고
조직은 더 건강해진다는 이야기였다.
사자 무리를 예로 들었다.
사자가 약 600만 년 가까이 멸종되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유 중 하나도
서로의 영역을 넘나들며
사냥과 위험에 대해 ‘훈수’를 주고받는
집단적 협력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조직에서도 이런 모습이 있다면 참 좋겠다.
나는 잠깐 생각했다.
과연 지금의 조직에서
‘훈수’가 그렇게 순수하게 작동할 수 있을까.
요즘 조직은 대부분
명확한 책임 단위와 성과 단위로 움직인다.
팀이 있고
팀장이 있고
조직별 목표가 있고
평가가 있다.
이 구조 안에서 훈수는
때로는 협력이 아니라
간섭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남의 팀원이 내 팀 일을 해결해 주면
고마운 일이지만
자칫하면
“왜 우리 팀 일에 끼어드나요?”
라는 질문이 생기기도 한다.
남의 리더가 내 리더의 문제를 해결해 주면
멋진 리더십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어떤 순간에는
“그건 우리 조직에서 판단할 문제입니다.”
라는 선이 그어지기도 한다.
훈수는 원래
책임이 없는 사람이 던지는 말이다.
그래서 가볍고
그래서 자유롭다.
하지만 조직은
책임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그래서 훈수는
때로는 불편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말이 완전히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좋은 조직에는
보이지 않는 훈수가 있다.
누군가 막히고 있을 때
슬쩍 와서
“이렇게 해보면 어때요?”
라고 말해주는 동료.
내 팀이 아닌데도
문제를 같이 고민해 주는 사람.
직책과 상관없이
좋은 생각이 있으면
꺼내놓을 수 있는 분위기.
그런 순간들이
조직을 조금 더 유연하게 만든다.
아마 교수님이 말한 훈수의 법칙은
바로 그런 장면을 말하는 것일 거다.
나는 지금
조직 밖에 있다.
그래서 오히려
조직을 조금 떨어져서 바라보게 된다.
예전에는
누가 내 일에 훈수를 두면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내 일이에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속에는
책임감도 있었지만
어쩌면 조금의 경직됨도 있었던 것 같다.
조직은 때로
명확한 책임이 필요하고
때로
느슨한 훈수가 필요하다.
그 둘 사이 어딘가에서
사람들은 함께 일한다.
사자 무리가 정말 그 이유로
멸종되지 않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알 것 같다.
혼자서만 사냥하는 무리는
오래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
조직도 아마
비슷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