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답게 산다면서 왜 눈물이 날까

평가강박과 나, 나는 지금 어디에

20대 대학생이 나에게 와서 했던 말이 마음에 남는다. ‘다르게 살아도 괜찮아’ 라는 말을 듣고 많은 위안이 되었다고. 다르게 살아도 괜찮은 게 위안이 되는 말이라니. 우리 모두 다르게 생겼고 다르게 사는 게 지극히 당연한데. 어느새 우리들 마음속에 ‘남들과 다르게 살면 안 된다’ ‘남들과 다르면 이상한 거다’라고 여기는 마음들이 자리 잡았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어린 시절 우리는 훈련 받지 못했다. 원래 인생은 남들과 다르게 살아가는 것이라는 이 심플한 사실을. 오히려 남들처럼 살도록 교육받고, 훈련받고, 강요 받아왔다.


‘일찍 일어나야지!

‘공부를 잘해야지!’

‘날씬해야지!’

‘부지런해야지!’

‘긍정적이어야지!’


이런 강요에는 나름의 근거가 있다. ‘여자/남자니까’ ‘학생이니까’ 강요를 주입하는(sender) 사람의 입장에서는 타당한 근거라고 믿으며 얘기한다. 그렇지만 강요를 주입 당하는(receiver) 사람의 입장에서는 억울하다.

‘왜 여자/남자는 이래야해?’

‘왜 학생은 앉아서 공부만 해야 해? 놀고 싶은데?’

‘납득이 안 돼!!’


라고 내 마음 속 한 구석에서는 얘기하고, 나름의 반항을 해본다. 하지만 그 반항은 묵살된다. 그리고 그런 억압의 시간이 반복되면 나는 어느새 주입하는 자, 절대권력을 행사하는 자가 강요하는 메시지에 길들여진 사람으로 성장한다. 타인이 제시한 먼 미래의 이상적 그림을 위해, 현재의 자신을 억누르고 감추도록 강요받은 나는 매순간 자신의 진짜 욕구, 자신의 진짜 모습을 없애느라 애를 쓰다 성인이 되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건 무엇인지 들어보고 살펴보는 질문을 해보지 못한 채, 오로지 의무와 책임만을 강조하는 채찍들을 맞으며 성인이 된 것이다.


어릴 적 수없이 들었던 어른들의 강요는 어느새 내 안의 목소리로 자리 잡았다.

‘일찍 일어나야지!’ → 아직까지 자고 있는 나, 너무 한심해

‘공부를 잘해야지!’ → 공부 못한 내 인생은 망했어. 자기계발만이 살길이야!

‘날씬해야지!’ → 50kg가 넘었어. 너무 창피해. 살 빼야해!

‘부지런해야지!’ → 난 너무 게을러.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

‘긍정적이어야지!’ → 항상 밝아야 돼! 그래야만 사랑받을 수 있어.



매순간 나를 평가한다.


‘지금 나이에 너 그러고 있음 안 되지!’

‘그렇게 하면 안 돼!’

‘이렇게 해야지!’


수시로 나를 채찍질한다. 채찍질은 아주 자동적으로 일어난다. 그 채찍질에 나도 모르게 적응되어왔다. 채찍질이 내 목소리의 전체인 것처럼 그 말을 따라야할 것 같다. 그리고 그 말을 따르지 못하는 나를 발견하면 또 나를 혼낸다. 그렇게 결론은 늘 자책으로 정해져있다.


우리는 쉬는 법도, 잘 노는 법도 알지 못한다. 쉬는 것도, 노는 것도 남들이 하니까, 남들이 잘 쉬어야 한다고, 잘 놀아야 한다고 하니까 나도 따라 해본다. 또 다른 자기계발의 시작이다. 쉬는 것도 열심히 쉬려하고, 노는 것도 열심히 놀려고 한다. 타인의 욕구가 나를 잠식한다. 삶의 가치를 부여해줄 것만 같은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버킷리스트’가 핫플, 핫아이템, 인증 샷으로 도배 된 ‘SNS에서 힙한 곳’이 되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하면 멋져 보일 것 같아서


인스타그램에 보이는 사람들의 빛나는 순간을 나만 안 가진 것 같다. 지금의 나는 너무 초라하다. 그들의 하이라이트, 그들의 하루를 편집한 ‘최고의 순간’과 나의‘가장 찌질한 순간’을 비교하면서 나는 번번이 패한다. 질 수 밖에 없는 싸움, 그 지독히도 헛헛한 시간 속에서 끊임없는 비교를 재생산하며 상실감으로 나를 덧칠한다. 그리고 어김없이 좌절로 결론난다.

‘이번 생은 글렀다.’

눈물이 흐른다. 나 이대로 괜찮을 걸까.



글: Chloe Lee

그림: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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