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이건 이랬으면 좋겠다.’ 같은 상상 정도는 누구나 하는데, 정말 상상하는 것마다 현실로 이루어진다면 기가 막히게 신나겠는데요.
그래서 지금 어떤 상상을 하고 계시죠? 뭐, 일단 됐고, 1939년 제임스 서버의 단편소설 <월터 미티의 은밀한 생활>이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됐어요.
제임스 서버 <월터 미티의 은밀한 생활>
혹시 월터라는 사람의 직업이, 지속적으로 상상을 해야만 하는 작가나 예술가일까요?
보통 사람이에요. 월터는 어느 잡지사에서 작가들 사진을 관리하는 포토에디터로 16년째 일을 하고 있죠.
똑같은 업무로 16년째요? 그야말로 성실한 캐릭터군요.
원래는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게 꿈이었어요. 하지만 영화 포스터엔 이런 로그 라인이 적혀있죠.
해본 것 없음, 가본 곳 없음, 특별한 일 없음.
결국은 현실에 충실했던 거죠.
특별한 사람이고 싶었지만, 직장 일 이외엔 해본 것 없던 월터니까, 잠깐씩 탈출구 삼아서 여행 가는 상상도 해보고 이런저런 상상도 해보고 그랬나 봐요?
그것보다 상상을 조금 더 했죠. 보통 취미라고 하면, 대부분 문화생활을 즐긴다거나, 운동 같은 것을 말하는데, 월터는 취미도 상상 특기도 상상이에요. 상상 속에서 도시도 구하고, 사랑하는 여인 앞에서는 로맨틱한 남자도 되었다가, 직장 상사를 주먹으로 날려버리기도 하는데요, 이런 상상 장면과 영화의 후반부에 상상이 진짜 현실이 되는 장면 때문에 제작비가 무려 9천만 달러나 들었다고 해요. 벤 스틸러가 감독도 하고 직접 주연까지 맡았는데 바다에 뛰어드는 씬에선 물탱크를 사용하면 리얼하지 못할까 봐 헬기에서 직접 바다로 뛰어내리기까지 하는 등 상상도 못 할 장면이 많아서 볼거리도 많은 영화입니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제작비가 9천만 달러요? 우리나라 돈으로 천백억 가량인데, 그 정도로 상상 장면이 중요했던 건가요?
중요했죠. 이 영화가 직장인들에게 정말 많은 위로가 되는 내용입니다.
인생 영화라고 평해 주신 분들이 정말 많은 작품인데요, 벤 스틸러 감독은 현실에 찌든 직장인을 위해서, 주인공의 상상을 더욱 크고 통쾌하게 그렸다고 하죠. 유명한 영화들을 오마주 하기도 했고, 나중에 상상이 현실이 된 장면의 리얼함을 위해, 직접 몸을 아끼지 않고 촬영하기도 했어요.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장면도 컴퓨터 그래픽 대신 각 나라를 전부 방문했다고 하니, 그래서 굉장한 광경들을 작품 속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영화는 평범하던 월터에게 위기가 오면서 시작되죠. 요즘은 잡지도 온라인 잡지로 보니까, 종이 잡지가 폐간의 위기에 처하게 된 건데요, 마지막 폐간 잡지에 실리게 될 사진의 원본 필름이 사라져 버리고 없는 사건이 생기게 됩니다. 유명한 사진작가 숀이 보낸 25개 필름 중에 <삶의 정수>라는 제목의 마지막 필름이 사라진 건데요. 월터의 상사는 그것을 못 찾으면 당장 퇴사하라고 하죠.
그래도 16년이나 수고한 직원에게, 사진 한 장 못 찾으면 퇴사를 하라니 뭐가 그렇게 가혹합니까.
안타깝게도 그게 바로 사회인 겁니다. 월터에겐 청천벽력이죠. 매번 일 할 때마다 작든 크든 위기가 와도 상상 속에서 상사에게 펀치 한 방 날리고 스트레스 풀면 그만이었는데, 16년간 한 번도 상상 못 한 퇴사 위기가 온 거죠. 툭하면 상상으로 스트레스를 풀었던 월터는 이 일 만큼은 상상으로 해결할 수 없음을 인지하죠.
그렇게 필름을 보냈다는 사진작가 숀을 만나기 위해 집을 떠나 여정에 오르게 됩니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특별한 사람이 되는 상상은 했으나, 실제로는 현실에만 안주했던 월터가, 처음으로 16년간 머물렀던 곳을 떠나 직접 여정에 오르는 거네요. 그야말로 상상만 하던 것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군요.
그렇습니다. 월터는 실제 여행이 상상에 비해 너무나 힘들어서 놀랍니다. 자신이 찾으러 가고 있는 사람, 즉 숀의 직업이 사진작가이다 보니, 자취를 따라가는 동안 독특한 곳은 다 가게 되고, 정말 아름답다는 곳도 다 거치게 됩니다. 그린란드, 아일랜드, 히말라야, 아프가니스탄을 거치게 될 뿐 아니라, 바로 눈 앞에서 볼케이노를 경험하기도 하고, 흰 눈이 덮인 산, 깊은 바닷속, 안 가보는 곳이 없게 되죠.
여행을 못 가서 답답하신 분들은 이 영화 속에서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보며 또 위로를 받겠네요.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자연경관 못지않은 절경이라는 감상평도 많죠. 월터는 마침내 숀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숀은 원본을 갖고 있지 않았죠. 필름을 인화한 사진을 오래전에 월터에게 보냈었노라고 이야기하죠. 필름의 원본이 없는 숀에게서 더 이상을 기대할 수 없었던 월터는 이미 사진으로 보냈었다는 숀의 말에 기억을 더듬어 보는데요. 어렴풋이 오래전에 사진 하나를 지갑에 넣고 다니던 게 기억났고, 이 여행 시작하면서 그 지갑을 버린 것도 기억이 났죠.
저런. 그렇다면 결국 사진은 못 찾는 거네요? 삶의 정수라는 사진이 궁금했는데, 긴 여정도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는 건가요.
절망에 빠진 월터가 긴 여정을 거꾸로 결국 원점인 집으로 돌아왔는데, 부쩍 수척해진 월터에게 엄마가 휴지통에서 주웠다며 자신의 낡은 지갑을 내밀죠. 그렇게 삶의 정수라는 제목의 사진은, 돌고 돌아 결국 자신의 집에서 찾게 되는 겁니다. 사진을 보고 월터가 놀라죠. 왜 놀라게 될까요? 이 사진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이기 때문에, 제가 더는 알려드릴 수가 없을 것 같고, 대신 영화를 꼭 보시길 바라겠습니다.
영화 속에 명장면이 많지만 그중 하나를 알려드리면, 하얀 눈이 덮인 설산에서, 눈 표범이 나타나기만 애타게 기다리며 긴긴 나날 동안 카메라를 세팅해둔 숀 앞에, 어느 날 진짜 눈 표범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숀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지 않는 거죠. 조급해진 월터가 왜 안 찍는 거냐, 얼마나 오래 이 순간을 기다렸는데,라고 이야기를 해요. 그러자 숀이 이렇게 이야기하죠.
어떤 땐 안 찍어. 정말 아름다운 순간이 오면 카메라로 방해하고 싶지 않아. 그냥 그 순간에 머물고 싶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