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색다른 달콤함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상상도 못 한 연출로 재치가 넘치는 영화예요. 감동은 물론이구요.
재치와 감동이 넘친다면 일단 흥행도 순조롭게 했을 것 같은데요? 어떤 작품일까 기대가 됩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개봉관이 적었어요. 극장에서 빨리 내려버리기도 했고. 많은 분들이 모를 수도 있었겠지만 요즘은 뭐, 모바일에서 어플 이용해 관람하시는 분이 얼마나 많아요. 입소문 타고 인기를 끌어서, 주연 배우가 한국에 초대되어 오기도 했었죠. 잔잔하면서도 꽤나 획기적인 작품이랄까요. 연출이 몹시 흥미롭습니다.
요즘 워낙 연출이 독특한 작품들이 많으니, 얼마만큼 흥미로운지 일단 집중해보겠습니다. 지난번 독특한 연출로 이야기 나누었던 미셸 공드리의 <무드 인디고> 보다도 더 독특한가요?
오. 어떤 면에서는 교집합을 찾을 수도 있겠네요. 미셸 공드리가 과감하게 기발하면서도 타당성 있다면, 오늘 작품은 그에 비하여서는 조금 조심스럽게 기발하다고 해야겠죠. 어쨌든 궁금하지 않나요? 오늘 밤 로맨스 극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죠. 시간대는 바로 오늘 밤이고, 장소는 극장이죠. 이 것만으로도 실은 충분히 로맨틱한데, 굳이 ‘로맨스’ 극장이라고했단 말이죠? 극장에서 오늘 밤에 대체 어떤 로맨틱한 일이 벌어지는 거죠?
일단 주인공은 영화감독이 꿈인 켄지라는 청년입니다. 켄지는 현재 영화의 조감독을 맡아 허드렛일까지 하면서 열심히 배우고 있어요. 영화감독이 꿈이니 당연히 영화 보길 좋아할 것이고 그래서 자주 가는 단골 극장도 있죠. 그곳에서 옛날 흑백영화 필름을 꺼내서, 직접 영사기를 돌려 영화를 보곤 합니다. 오늘도 켄지는 여전히, 이 오래된 단골 극장으로 가서 좋아하는 흑백영화를 보려고 해요.
영화 <오늘 밤 로맨스 극장에서> 스틸컷_이미지 출처: 구글
켄지가 늘 기다리는 시간이고, 오늘도 여전히 그 극장에 갔다면, 굳이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던 그곳에서, 오늘! 평소와 다른 일이 벌어진 거로군요?
그렇죠. 바로 오늘 특별한 사건이 생기게 되죠. 어떤 일이 생기냐. 오래된 극장이라 사람들 발길이 끊어진 지 오래라, 옛날 영화 필름을 보유하고 있어 봤자, 관객이 보러 오지도 않고, 또 필름 시대가 아닌 디지털 시대이다 보니, 필름과 영사기조차 소장할 필요가 없게 된 극장 주인이, 단골 켄지에게 옛 필름들이 어딘가로 가게 되었노라, 통보를 하게 됩니다.
영화 <오늘 밤 로맨스 극장에서> 스틸컷_이미지 출처: 구글
오래된 영화를 사랑하던 켄지에겐 너무 서운한 말이었겠는데요? 영화의 낭만 중에 필름과 영사기를 빼놓을 수 없잖아요. 좋은 일이 생길 줄 알았더니 웬 날벼락이죠?
서운했죠. 켄지는 아쉬워하며 마지막 남은, 자신이 좋아하던 필름을 꺼내 영사기로 돌립니다. 정말 오래된 흑백영환데, 거기 나오는 주인공 미유키라는 예쁜 여주인공을 켄지가 좋아해요.
영화 <오늘 밤 로맨스 극장에서> 스틸컷_이미지 출처: 구글
살면서 영화나 드라마 속 주인공 때문에 잠 못 이루던 때가 한 번씩은 있지 않습니까. 켄지도 흑백영화 속 미유키에게 그런 감정을 느낀 걸까요.
그랬나 봐요. 켄지는 툭하면 오래된 극장에 와서 그 영화를 꺼내어 미유키를 만나곤 했는데, 이제 그 필름이 어딘가로 떠나 기억 속에서만 남게 된다는 사실을 마음 아파해요. 현재가 아닌 역사가 된다는 사실이 서글펐던 거죠. 아무도 없는 극장에 혼자 서운한 감정에 빠져 스크린 속 미유키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영화 <오늘 밤 로맨스 극장에서> 스틸컷_이미지 출처: 구글
그날따라 스크린 속 정말 아름다운 미유키의 웃음이 마치 켄지를 진짜로 바라보며 웃어주는 것처럼 느껴지죠.
영화 <오늘 밤 로맨스 극장에서> 스틸컷_이미지 출처: 구글
정말 나를 바라보는 것 같네? 떠나기 전 아쉬운 마음에 더욱 그렇게 보이는 건가.
켄지는 좋기도 하고 아쉽기도 해서 그 모습을 미소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영화 <오늘 밤 로맨스 극장에서> 스틸컷_이미지 출처: 구글
그때 갑자기 극장이 정전이 되어버리고, 상영관이 암흑에 휩싸이죠.
아, 이건 아닙니다. 심상치 않은 전개예요. 공포영화였던 건가요? 분명히 로맨스 극장이라고 하셨는데요? 객석에 관객이 혼자 있는 상영관에서 난데없이 정전이라니, 로맨스 치고는 너무 섬뜩하지 않습니까.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상황에 켄지도 당황합니다. 다시 전기가 들어오고 주변을 돌아본 켄지는 화들짝 놀라고 말죠.
영화 <오늘 밤 로맨스 극장에서> 스틸컷_이미지 출처: 구글
설마 아니죠? 영화 속 여주인공 미유키가 스크린을 빠져나왔다거나 그런 일은 아니겠죠? 만약 그렇다면, 저는 TV 속에서 진짜 나왔던 공포영화 링을 떠올리게 될 거 같은데요.
켄지가 흑백영화를 보고 있을 때, 예쁜 미유키가 자주 켄지와 시선을 마주치는 거 같지만 그건 흑백영화 속 설정일 수도 있고, 켄지의 착각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영화 속 미유키는 정말로 스크린 안에서 객석을 본 것이 맞고 어떤 이유로 스크린 밖으로 나와버리게 되어 그 시점에 정전이 되었던 거예요.
영화 <오늘 밤 로맨스 극장에서> 스틸컷_이미지 출처: 구글
뭐죠? 공포영화가 아니라면 판타지 영화인가요?
저도 그저 극장에서 벌어지는 조금은 훈훈한 스토리겠지, 생각하고 이 영화를 만났는데 그렇죠, 판타지에 가깝죠. 하지만 던져주는 주제는 너무도 현실적이었어요. 미유키가 켄지에게 말하죠.
오래된 나를 찾아주는 건 너뿐이야.
영화 <오늘 밤 로맨스 극장에서> 스틸컷_이미지 출처: 구글
우리는 현재 스스로 인지도 못할 정도로 컬러가 난무한 시대에 살고 있잖아요. 그런데 영화 속에서 나온 미유키는 이런 컬러 세상에서 온 몸이 흑백인 채 나타나요. 재밌는 기법으로 미유키만 흑백으로 움직이는데 영화 보실 때 신기하고 흥미로우실 거예요.
영화 <오늘 밤 로맨스 극장에서> 스틸컷_이미지 출처: 구글
영화는 바로 이 흑백과 컬러로 우리에게 크게 두 가지를 시사합니다. 하나는 말 그대로 잊혀가는 흑백영화 혹은 오래전 영화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죠. 또 하나는 결국 현실로 나온 켄지가 눈앞에 나타난 미유키와 진짜로 사랑하게 되지만, 켄지가 손만 대면 미유키는 사라진다는 설정이 있어요. 오래된 과거는 추억이기에 정말로 아름답게 남아있고 미련이 남죠. 그러나 결국 과거를 손에 잡을 수는 없는 것이라고, 냉정한 결론을 주는데요, 흑백인 미유키를 너무 사랑해서 현재의 컬러 옷을 입히는 켄지와, 사라지기 싫어하는 미유키와의 러브스토리를 통해 현재를 살아야 하는 나와 과거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나에 대해 한 번쯤 짚어보게 되죠. 닿을 수 있는 현재의 사랑과 닿을 수 없는 시간의 사랑은 그 방법이 달라야 함도, 나아가 내 현재, 내 과거에 대해 새로운 정돈과 철학을 가슴에 새겨보게 합니다.
영화 <오늘 밤 로맨스 극장에서> 스틸컷_이미지 출처: 구글
가볍게 웃으며 보다가, 영화 결말쯤 문득 손 내밀면 닿을 것만 같은 내 소중한 추억들을 향해 손을 뻗게 되는 작품이며, 그 즉시 영화는 내게, 과거는 돌아오지 않아. 그러니 가슴으로 간직만 해, 라며 단호히 나를 내쳤죠. 그렇게 인정하게 되었다고 할까요. 아무리 아름다워도 과거는 과거라는 것과 절대 되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인정하는 게 사실이라면 한 가지는 과감히 버릴 수 있겠죠? 미련 말이에요. 더 이상 미련은 깔끔히 버리되, 버린 미련만큼 열정을 다해 소중한 추억들을 간직하리라고 다짐할 수 있었죠. 오늘 밤 로맨스 극장에서.
영화 <오늘 밤 로맨스 극장에서> 스틸컷_이미지 출처: 구글
가볍게 듣다가 큰 깨달음을 얻네요.
돌아보면 지난 과거는 참 아름답게 느껴지죠
하지만 현실과 과거가 한꺼번에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은
씁쓸하지만 인정해야만 하고
또 과거에만 매이면 앞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것도 이미 이론적으로나마 우린 매우 잘 알고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