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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tzMe Jan 14. 2021

사울의 아들

무비에게 인생을 묻다. 45

사울의 아들. 아버지와 아들의 인생을 만나볼 수 있는 시간인가요?

아들을 제대로 만날 수 있을 것 같진 않구요, 존 더 코만도였던 한 남자 사울을 만나보도록 할게요.


           

존 더 코만도. 2차 세계대전 때 나치 수용소에서 끔찍한 업무를 맡아야만 했던 유대인 포로들을 존 더 코만도라고 칭하죠?

다른 유대인에 비해 체력이 좋다는 이유로, 학살당하지 않는 대신 일을 했던 사람들이죠. 주로 아우슈비츠 수용소 가스실 시신 처리를 했던 사람들이에요.



홀로코스트가 20세기 인류 최대 치욕적 사건으로 꼽혀서인지 이때를 다룬 영화가 꽤 많이 있죠. 유명한 쉰들러 리스트부터 해서 말입니다.       

대부분의 영화가 생존자들 이야기라면 오늘은 오직 존 더 코만도의 이야기예요. 등장인물의 범위가 오직 존더 코만도라고 좁혀진 만큼 스토리가 구체적이에요. 장소도 가스실이나 그들의 막사에서만 주로 촬영됐죠.             



전반적으로 긴 스토리가 있다기보다는 존 더 코만도로 살아가는 삶의 일부분을 구체적으로 볼 수 있다는 건가요?

강제수용소 사건은 워낙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이 영화에서 학살이나 유대인들의 고난에 초점을 두진 않습니다. 조금 더 고차원적인 고통을 다뤘다고 할까요. 헝가리 작품인데요, 부산 국제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발견하고는, 숨겨두고픈 빛나는 보물 하나를 집으로 안고 오는 느낌이었죠.  <사울의 아들>은 19세 이상 관람이 가능해요. 수용소 내의 생활이 처참서 19세 이하에겐 더 크게 상처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영화 <사울의 아들>_이미지 출처: 구글


더 고차원적인 고통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하시니, 두렵기도 하면서 다른 영화들과 어떻게 다를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가장 먼저는 영상의 비율인데요. 우리가 극장에서 보는 스크린은 영상의 가로세로 비율이 16:9예요. 그런데 이 영화는 4:3 그러니까 평소 보시던 화면보다 좀 더 정 사각형에 가까운 비율이죠.

16:9와 4:3의 차이_영화 <스포트라이트>와 <사울의 아들> _ 출처 :구글

거기다 주변 풍경보다 인물의 얼굴을 크게 확대해서 담아내는 클로즈업 기법을 많이 사용하여 영화 보시는 내내 아주 갑갑한 느낌이 들 거예요. 이것은 감독이 의도를 갖고 고집하게 된 비율이라고 합니다.          



영화 속 장소가 가스실과 막사 정도만 나온다고 하셨으니까, 수용소에 갇힌 그 답답함을 살리려고 4:3을 의도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정확합니다. 관객이 영화 보는 내내 그 갇힌 갑갑함을 함께 느끼라고, 찍을 때도 최대한 밀착하여 클로즈업만 따는 식으로 답답함을 의도했다죠. 감독인 라즐로 네메스와 촬영감독 마티야스 에르델리는 촬영 전 하나의 규칙을 정했다고 해요. 카메라는 항상 주인공 사울을 따라다니며 그의 시야, 청각, 실제 범위를 벗어나지 말 것.

영화 <사울의 아들> 스틸컷_이미지 출처: 구글

그래서 관객은 장면 중 거의 대부분을 클로즈업된 사울의 얼굴만 볼 수 있구요, 사울의 뒤로 수 십 차례나 별 것 아닌 듯 흐릿하게 스는 시신 더미를 무심히 보게 되죠. 그러나 화면이 잔혹함을 무심히 훑는 사이, 사울 근처에서 들려오는 슬픈 아우성, 총성, 가스실 둔탁한 기계음을 리얼하게 들려오고, 관객 역시 그 소리를 화면에 시선 빼앗겼을 때 보다 더 리얼하게 마치 사울과 함께 있는 듯 듣게 되죠. 영화 보는 내내 함께 갇혀버린 듯한 두려운 압박감에서 벗어날 수 없으실 거예요. 특히 가스실 학살 장면이 어느 영화보다 리얼합니다. 그냥 제가 그 자리에 서서 보는 느낌이죠. 놀라지도 않고 무표정하게 물건 치우듯 능숙한 존 더 코만도들을 볼 때 그날의 충격을 고스란히 공포로 느낄 수 있으며, 뭐랄까요. 마음이 무척 아픕니다.

   

영화 <사울의 아들> 스틸컷_이미지 출처: 구글



존 더 코만도들은 그런 일을 할지언정, 일단은 현재 생존했다는 것에 의미를 둬야 했겠죠? 그 일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그들 역시 학살될까 두려우니 기계적으로 일했던 것 아닐까요.

그렇죠. 극한 상황에선 생존을 위 사람이 저토록 감정 없는 기계가 되는구나 싶어 슬펐습니다. 실제 존 더 코만도들은 일하면서 자신의 가족이나 지인들의 시신도 발견했답니다. 그때마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처리해야 했다고 합니다. 나치의 학살과 가장 밀접해 있는 위치였기 때문에 대부분 최대 1년 안에 그들도 증거인멸을 위해 제거되었다죠. 그리고 그들을 제거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후임으로 뽑힌 같은 민족, 다음 존 더 코만도들이었습니다.



이런 비유가 옳을지는 모르겠지만, 공포체험도 열 번 귀신 이야기보다 귀신의 집 체험 한 번이면 말이 필요 없는데, 그런 맥락에서 어쩌면 이 영화도 한 편체험 영화라고 해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이미 우주가 배경인 영화 <그래비티> 이후 최고의 체험 영화라는 평도 있는걸요. 주인공 사울은 여느 날처럼 일합니다. 그러다가 가스실 무더기로 쌓인 시신 더미 속에서 아직 생존한 남자아이를 발견하게 됩니다.

영화 <사울의 아들> 스틸컷_이미지 출처: 구글


이미 감정도 잃어버린 듯 무표정하고 기계처럼 일만 하던 사울이, 이날만큼은 멈칫합니다. 잠시 망설이던 사울이 어떻게 도와주지 못하는 사이, 확인하러 온 독일군이 꿈틀대는 아이를 발견하고는 즉시 확실한 사망 상태로 만들죠. 군인이 자리를 뜨자 사울의 마음에 변화가 생겼나 봅니다. 갑자기 사울이 아이 시신을 몰래 챙기며 이 영화가 시작돼요. 사울은 아이의 장례를 치러주기 위해, 갇혀있는 사람들 중 랍비를 찾기 시작합니다.

영화 <사울의 아들> 스틸컷_이미지 출처: 구글


심장이 죄어오네요. 들키면 큰일 나지 않습니까?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는데, 여태까지 안 그러다가 유독 그 아이만 장례를 치러주려는 이유가 혹시 제목이 사울의 아들인데 정말 사울의 아들이었던 건가요?

처음엔 사울이 사람들에게 아들이라고 주장을 하죠. 그러나 진짜 아들이 맞다는 증거는 영화 내내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동료들 중 장례 기도를 해줄 수 있는 랍비를 찾게 되고 시신을 숨긴 사실을 안 몇몇 동료가 다른 동료마저 위험해질까 사울을 말리기도 합니다.

영화 <사울의 아들> 스틸컷_이미지 출처: 구글

영화가 진행될수록 진짜 아들 맞아? 하는 의문이 생기지만, 진짜 아들인지 아닌지 결국 한 번의 설명도 없죠. 중요한 것은 단지 사울이 필사적으로 아이의 시신을 숨기고 어떻게든 장례를 치르려고 한다는 거죠.



좋은 영화는 관객을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는데, 친 아들이든 아니든, 아이의 존재 자체에 의미를 담은 것은 아닐까 싶네요.

당시에는 학살당한 시신을 화장한 후에 강에 뿌렸다고 합니다. 유대인의 시신조차 흔적 없이 없애려 했던 나치의 지시였다는데요. 사울은 역사에서 민족 자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느꼈던 거죠. 그리고 후대에 자신들이 존재했음을 알릴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로 이 아이를 묻어주려 한 것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 <사울의 아들> 스틸컷_이미지 출처: 구글

자신이 죽으면 스스로의 시신은 어떻게 못 하지만 아직 일할 수 있을 때, 아이를 묻어서 아이의 시신이 뼈라도 남아 후대에 전해지길 소망하는 간절한 마음이랄까요. 근원적인 인간의 존엄성을 담은 이 내용에 감동받아 해외 영화제에서 대부분의 상을 휩쓸고 특히나 '이 상을 받은 영화는 작품성이 우수하여 묻지 않고 봐도 된다.'는 훌륭하다는 상이 있죠. 바로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인데요, 역시나 <사울의 아들>이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받게 됩니다. 영국 BBC에 올해의 위대한 영화로 채택되는 등, 훌륭한 찬사는 다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훌륭하고 의미 있는 작품입니다. 일기나 당시 기록물을 독일군 몰래 땅에 파묻는 장면도 나옵니다. 그토록 자신들의 흔적을 남기고자 노력했던 당시 많은 사울들이 있었기에, 결국 홀로코스트라는 사건이 묻히지 않고 지금의 우리에게까지 전해질 수 있었던 것 아닐까요.

영화 <사울의 아들> 스틸컷_이미지 출처: 구글

 이 영화는 반드시 보셔야 하는 영화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아두셨다가 꼭 만나시길 바랍니다. 아, 이미 아시겠지만, 존 더 코만도가 입은 옷에는 등 뒤에 가위표가 있죠. 이 가위표의 의미는, 혹시 존 더 코만도들이 도망갈 때를 대비, 아니면 그저 사살을 할 때라도, 움직이는 대상을 보다 신속하고 정확하게 명중시키기 위한 일종의 사격용 과녁이라 해야 할까요?

잔혹한 그들 눈에는 존엄성을 가진 한 인간이 한 장의 과녁으로 보였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네요.

마치 게임인 듯.


영화 <사울의 아들> 스틸컷_이미지 출처: 구글

사울의 아들.

아들이란 단어가 중의적 의미로 사용된 것이군요.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존재에 대한 의미를 남기려 했던 사울처럼

우리도 인생에서 무엇을 남기고 싶은 지 돌아보는 의미 있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네요.

헝가리 영화. 4대 3의 비율로 우리를 함께 수용소 내부 존 더 코만도의 외침 속으로 밀어 넣은 영화.

<사울의 아들> 소개였습니다.

 



author, SuJ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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