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평범한 내가 사람을 죽이는 킬링 큐브를 갖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
햇살이 간신히 비집고 들어오는 갑갑한 회의실.
종서와 같은 팀인 연차장, 김대리, 그리고 클라이언트사 차부장이 함께 앉아 있다.
짧은 단발머리를 질끈 묵은 채 무표정하게 브리핑 중인 종서.
[종서] 말씀 주신 사항 이렇게 정리해 보았고요.
PR 보도자료는 융통성 있게 시즌 이슈 따라 조정해서 릴리즈하려고 합니다.
종서의 말을 듣던 클라이언트사 차부장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옆에 앉은 연차장을 향해 답한다.
[차부장] 전체적으로 이견 없는데 PR 일정은 차장님이 다시 한번 정리해주면 좋겠는데.
연차장이 종서를 바라보다 김대리에게 고갯짓을 한번 한 후, 차부장에게 답한다.
[연차장] 네, 부장님.
종서를 사이에 둔 김대리와 연차장의 고갯짓과 시선.
불편한 짓거리를 눈치챈 종서의 손이 무엇이 들었는지 볼록한 바지 주머니 안으로 향한다.
그 안에서 힘껏 주먹을 쥐어보는 종서. 연차장과 김대리를 번갈아 응시하고 연차장에 2초간 시선이 머무르다 마침내 김대리에 멈춘다.
[연차장] 수고하셨습니다. 부장님, 차 갖고 오셨어요?
[차부장] 아니, 서울 교통체증 지긋지긋하잖아요. 택시 타고 가려고 두고 왔죠.
종서가 두 사람의 인사를 자르며 큰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종서] 수고하셨습니다.
평소와는 다른 무례한 행동에 언짢은 표정을 숨길 수 없는 연차장이 종서를 쏘아본다.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는 종서의 시선이
회의실 의자 위 차부장이 깜빡 잊고 놓고 간 서류로 향한다.
건물을 빠져나온 차부장이 반대편에 멈춰 서 있는 택시를 잡으러 서둘러 걷는다.
때마침 정지 신호로 바뀌는 신호등,
다음 약속에 늦지 않으려 차부장은 조급한 표정으로 계속 휴대폰의 시계를 확인한다.
그리고 곧이어 녹색등으로 바뀐 신호.
달려가는 차부장의 뒷모습.
뛰고 있는 차부장을 향해 달려오는 제동 불가의 덤프트럭.
상황을 모르는 김대리가 부장이 놓고 간 서류를 들고 허겁지겁 달려가고 있다.
사고를 예감한 사람들의 놀란 표정 속 끽-
급 브레이크 소리가 도로 한복판에 가득 울려 퍼진다.
그곳에 남은 건 피를 흘리며 쓰러진 처참한 모습의 김대리.
회의실 유리창 너머 서 있던 종서가 사고를 확인한 후 텀블러에 남아 있는 커피를 마저 한 모금 마신다.
사고 소리에 놀란 직원들이 하나 둘 유리창에 붙어 김대리의 사고 모습을 바라보고,
웅성웅성, 어떻게- 하며 저마다 다른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사람들의 야단법석을 뒤로하고 조용히 자리로 돌아온 종서.
자신의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이어폰을 귀에 살포시 꽂는다.
귀를 가득 채우는 에픽하이의 Nocturne.
소설이라기엔 좀 부족하고
대본이라기에도 역시 좀 부족하지만,
그저그런 이야기라도 해보고 싶어 연재를 시작합니다.
- 김안녕